수필

[스크랩] 산행(山行)

최만섭 2015. 9. 28. 16:27

                                                     

                                      작성 : 최만섭 시인/수필가

                                           

I.

지난주 일요일 나는 집사람의 손을 잡고 도봉산에 올랐다. 햇볕은 옛 친구를 찾는데 좋을 만큼 적당히 따스했다. 산 중턱에 올라서자 붉은 훈장을 목에 건 친구들이 떼를 지어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내 고향의 진달래는 엉킨 뿌리 위에 자란 콩나물같이 속이 꽉 찬 꽃바구니였다. 나와 친구들은 진달래꽃을 한 움큼 따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목에 걸린 떨떨한 맛이 가신 후에 내장에서 올라오는 약한 알코올 기운에 취하여 만취한 나무꾼같이 소리를 질러 대었다.

바람 부는 날 아카시아 숲 속을 걷는 것은 마치 산속에서 그칠 것 같지 않은 주먹만 한 함박눈을 맞으면서 걷는 것 같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면서도 눈처럼 하얀 아카시아 꽃송이가 연출하는 동화 속에 빠져 들어갔다.

세찬 바람이 아카시아 꽃에 숨은 꿀 통을 터 트리면 나는 활짝 핀 꽃송이를 입안 가득히 채우고 그 달콤한 향이 온몸에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배고프고 헐벗은 어린 시절에 꽃은 나의 친구이며 연인이며 간식였다.

II.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5년 만에 귀국한 왜소증 환자의 이야기를 보았다. 스물다섯 살의, 이 당찬 아가씨가 달리는 모습은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세 살 어린애같이 비틀거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그녀의 검고 작은 눈망울은 물기에 적은 흙을 버겁게 헤쳐 나와 고개를 내민 채송화 꽃같이 애처로워 보였다.

어머니는 왜소증 환자인 아버지와 아들딸을 남긴 채 집을 나갔고 딸을 미국으로 입양시킨 아버지는 쓰린 가슴을 소주로 달래다 숨을 거두었다. 그런 어두운 과거에도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각별했다. 다른 입양아들같이 그녀의 유일한 꿈은 이 땅에서 그녀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그녀는 검은 그림자가 깔린 방 앞에 홀로 서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엄마가 살았던 집이 아니라 밤늦게 돌아온 엄마가 연탄불 위에 굽는 가래떡 냄새를 맡으면서 방문이 열릴 때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 인간에 있어서 아름다운 경험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나의 꽃은 그 맛이며 나의 `이문열` 선생은 `사람의 아들`을 읽은 1980년대에 존재한다.

몇 겹으로 잠금장치를 한 뜰에서 화장시킨 푸들을 안고 난초에 물을 주는 부모 밑에서 타원형 우주선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같이 샛노란 튤립만을 보고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 그리는 꽃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생존(生存)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련한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주체는 고향을 찾은 왜소증 환자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인간다운 인간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순응하면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현실주의자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만약 그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추구했다면 하느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항상 기도했던 힌두교인 들은 왜 비인간적인 카스트 제도 속에 안주했었을까? 또한,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구세주로 믿었던 미국인들은 왜 죄 없는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혹사 시켰을까? 

현실주의자들이 다니는 조직화된 종교는 이미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쉼터가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이상주의자가 성당에서 드리는 기도이며 낭만주의자가 논과 밭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아닐까?

III.

나와 집사람은 산 중턱 돌 의자에 앉아서 계곡 밑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가쁜 숨을 돌렸다. 무릎 깊이의 물결은 집 채만 한 바위를 지나 작은 웅덩이에서 몸을 한번 돌리고는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 산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래층에는 아주 작은 검은 점들이 이 층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새싹들이 그리고 위층에는 풍류를 아는 조선 기생의 검붉은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정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환성을 질렀다. 그렇다! 아름다움은 물같이 자유롭고 자연스러우며 도봉산같이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것이다!

하산 후에 우리는 출입구까지 넓게 깔린 아스팔트포장 길로 들어섰다. 길가에는 잘린 하체를 두꺼운 고무 잠수복으로 가린 사내가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한 바다사자가 울부짖듯이 고개를 세우고 엎드려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주머니를 털어 주었다. 그것은 동정이 아니라 잘못된 문화와 관습에 대한 나의 반성과 회개의 표시이다. 우리들의  선조는 살아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 한 늘 죽어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장 난 그들의 몸을 어루만지는데 익숙하지 않다.

나의 이런 처신에 못난 자신을 미화시키려는 위선이라면서 면박을 주던 집사람이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플라스틱 통에 집어넣었다. 아들 내외를 앞세우고 손자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할아버지가 손자의 작은 손에 지폐를 쥐여 주면서 말씀하셨다. " 아저씨 갖다 드려라".

나는 아내가 처음으로 내게 내민 나와 같이한 20여 년 세월에 대한 이해와 화해에 당황하면서 그녀의 둥근 어깨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는 왜 내게 손을 내밀었을까? 그녀도 늙어 간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실패한 이상주의자의 독백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성숙한 것일까?

2003년 4월 19일



출처 : 의정부중공업고등학교총동문회
글쓴이 : 최만섭(중 20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