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문인이야기-한용운 시인

최만섭 2015. 9. 28. 16:28

                                          

                                                          

 

                                                          최   만   섭 수필가

 

제목 : 문인 이야기 -한용운 시인

 

1879. 8. 29 충남 홍성~1944. 6. 29 서울.

시인·승려·독립운동가.

 

1. 생애와 업적.

   한용운은 1879년에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4세에 결혼하였으나. 16세 때 인생의 이치를 깨닫고자 불문에 들어갔다. 1905년 스님이 되었으며, 1908년 일본에 건너가 최린 등과 사귀며 일본의 불교계를 둘러보았다. 1910년 “불교 유신론”을 발표하여 불교의 혁신을 꾀하였으며, 다음해 승려대회를 열어 한국 불교가 일본 불교에 합치는 것을 막았다. 1918년 월간지 “유심”을 창간했다. 1919년 삼일 독립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가했으며, 1926년에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1931년 항일 비빌 결사 조직인 “만당”의 총재로 있으면서 민족운동을 전개했고, 만년에는 심우장에서 주로 집필 활동에 힘썼다. 1944년 입적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2. 출가(出家).

  법정 스님은 그의 수필집을 통해 출가 동기를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석가모니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을 경험하고 생사열반(生死涅槃)을 구하는 법을 찾고자 출가(出家)하였다. 그는 덕(德)과 지혜(知慧)를 갖춘 아름다운 아내인 ‘야쇼다라(Yaodhara)’와 사랑하는 아들 ‘라훌라’ 왕위 계승권 등 그가 가진 모든 것, 마음 까지 버리고 왕궁을 나섰다.”


“만일 내가 석가모니와 같은 환경(環境)이라면 출가(出家)를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집을 떠난 것은 삶이 허무해도 아니며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려고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답게 살고자 집을 나섰을 뿐이다!” 


자기 인생(人生)의 주인으로 사느냐 종으로 사느냐의 문제는 마치 계약서(契約書)의 갑(甲)과 을(乙)과 같이 평생을 능동적으로 사느냐 아니면 수동적으로 사느냐의 문제가 결부(結付)되어있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자기답게 살기 위해서지 결코, 부(富)나 명예(名譽) 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용운은 뛰어난 재주와 담력을 타고났으나, 참을성이 없고 타인을 포용하는 덕이 부족했다. 금강산 건봉사에서 한용운 스님과 같이 수련한 스님은 한용운의 실체를 아주 잘 설명해준다. “한용운 스님은 꼭 폭탄 같았습니다. 머리도 작고 목도 짧은 데다 작은 키가 꼭 세워둔 폭탄 같아서 언제라도 온몸으로 상대방을 뚫어 버릴 것 같았어요.” 이러한 결점에도, 한용운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따라 행동한 위대한 시인(詩人)이다. 그가 그렇게 자기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하는 치열한 수도승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용운의 문학은 출가(出家)에 삶의 바탕을 둔 진솔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문유관(四門遊觀) : 석가가 출가하기 전 태자로 있을 때, 동문 밖에서는 노인을, 남문 밖에서는 병자를, 서문 밖에서는 송장을, 북문 밖에서는 도 닦는 이를 보고, 늙음·병·죽음 등에서 해탈하고자 출가를 결심한 일.


3. 한용운의 문학세계.

   그가 이룩한 문학적 업적도 불교개혁사상이나 민족독립사상, 그리고 그 실천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문학 활동은 시에서 출발하여 시조와 한시 및 ‘죽음’ ‘흑풍’ ‘후회’ ‘박명’ 등의 장편소설로까지 확산하였으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낳은 것은 역시 ‘님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시 장르이다. 1925년 백담사에서 탈고하여 이듬해 안동서관에서 발행한 ‘님의 침묵’은 당시 한국 문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되었음에도 어느 문학작품보다도 더 절실하게 민족의 현실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요구되는 주체적 자세에 대해 노래했으며, 더욱이 그것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아름답게 형상화해 수준 높은 민족문학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집에서 중심을 이루는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있으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상황을 시적 주체인 `나`가 님과 이별하여 님이 부재하고 침묵하는 시대로 규정하면서도, 님이 부재한 상황을 통해 `나`가 진정으로 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변증법적인 진리를 드러내고, 새로이 `나`가 님과 합일될 수 있다는 낙관적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님과 새로이 만나려면 님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요구되는데, 그 복종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진다는 `복종과 자유의 변증법`을 노래한 것도 역사 필연성의 인식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진리와 통한다. 이러한 시적 인식을 통해 그는 식민지하에 있는 조국의 운명과 독립의 필연성,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실천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시는 은유와 역설의 자유로운 구사를 보여주며, 정형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난 산문적 개방 속에서도 내재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근대 자유시의 완성에도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4. 한용운의 대표작.

 

제목 : 오세암


저자 멀리 떨어져

송차로 약 끓이고

깊은 산속 고기와 새 몇 마리

어쩌다가 인기척을 들거니

아무 일 없는 것이 차라리 고요 아니요,

첫 뜻 등지지 않음이 곧 새로움이로다.

비 온 뒤 푸르른 파초 서 있는 듯

이 몸이 세진 속에 달려가도 거리낄 것 없도다.


*한용운은 1894년 16세에 설악산 오세암으로 첫 번째 출가를 한다. 성격이 동적이고 다혈질인 그에게 조용한 산사에서의 생활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은 혼란스러운데 나는 산속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서 이렇게 무력하게 지낼 수는 없다.” 그는 오세암을 떠나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 


  

제목 : 추야장


선정에 들어 마음은 흐르는 물 같아라.

다시 피어 오르는 향불 밤이 깊어라.

문득 오동 잎사귀에 지나가는 빗소리 황급한데

들창에 남은 꿈 가을 밤이 차가워라.


*1904년에 금강산 건봉사로 두 번째 출가한 한용운은 참선에 몰두하여 1905년에 정식 승려가 된다. 이때 그의 모질고 급한 성격이 많이 유화되었다.


제목 : 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922년 기미년 만세 사건으로 3년 복역을 마치고 출옥한 한용운은 독립운동과 불교 개혁에 앞장선다. 그는 독립운동을 같이한 동지들의 변절에 불같이 분노했다. 어느 날 동지들을 초청하여 “지금부터 왜인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한 최남선 군의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길거리에서 만난 최남선이 한용운에게 인사를 하자, 용운은 “최남선은 작년에 이미 죽었는데요?”라고 답하면서 외면했다. 우리는 그의 생에서 이 세상에는 성인(聖人)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정직한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제목 :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1944년 6월 29일, 조국 광복을 일 년 앞두고 그는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나라를 생각하며 어떻게 국민을 생각할 것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한용운은 그의 시구(詩句)처럼 꺼지지 않는 우리 민족의 등불이다.



5. 시심(詩心)과 시상(詩想).

나는 지난 수년간 한용운 전기를 베개 삼아 살았다. 그는 평생을 마음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고 허망하기 이를 때 없는 상(相)을 철저히 배격했다. 나는 시상(詩想)에 집착하여 시심(詩心)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 할 수 없다. 현대시가 소재와 주재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속세(俗世)에 오염된 시심(詩心)으로 그린 시상(詩想)이 모래  위에 세운 건물과 무엇이 다르랴? 

 

정치가의 목적이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이듯이 시인은 목적은 시(詩)의 창조가 아니라 인간의 행복(幸福)을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詩人)은 강아지나 소나무를 의인화(擬人化)하여 화려한 옷을 입히는 세련된 디자이너가 아니라 용맹 정진하는 스님같이 진실한 언어(言語)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사는 정직한 인간이어야 한다.


진정한 시인(詩人)은 망망대해(茫茫大海)에 홀로 서서 희망(希望)과 절망(絶望) 중 하나를 선택(選擇)하라는 바닷바람의 유혹(誘惑)을 물리치고, 수심(水潯)으로 걸어가 그곳에 사는 고요와 미지(未知)를 만나는 고독한 인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출처 : 의정부중공업고등학교총동문회
글쓴이 : 최만섭(중 20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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