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납치당한 민주주의부터 되찾아야 한다
운동권에 포획당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입법 독재로 유사 파시즘 문턱까지 타락
‘민주화 유공자 예우법’ 밀어붙이는 민주당
민주화운동 가치와 유공자 명예 오히려 훼손
민주주의는 종착역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
다 이뤘으니 정산하라는 주장은 어불성설
아이가 납치당했다. 그런데 납치범에게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아이를 키워야 하니 양육비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내 아이를 빼앗긴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돈까지 뜯기게 생겼다.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도 않은 이런 일이 우리나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화 유공자 예우법’을 발의하고 동의한 야당 국회의원들 이야기다.
어느 법안이나 그렇듯, 이 법도 겉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동안 유신 반대, 6월 항쟁, 5·18 민주화 유공자 중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傷痍)를 입은 본인과 가족에게 취업, 교육, 의료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유신 반대라면 벌써 50년 전 이야기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면 명단도 공개되지 않은 유공자들이 이미 매년 예우를 받고 있다. 지난 8년간 민주화 운동 관련자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사람도 119명에 이른다. 새 법안은 여기에 덧붙여 앞으로 그 자녀들에게 국가기관, 공기관, 사기업 등 채용 시험 때 가산점을 주고, 장기 저리(低利) 대출 혜택을 주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에서는 즉각 ‘셀프 특혜법’이니 ‘운동권 귀족 세습법’이니 하며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립 유공자야 나라가 독립했으니 공을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민주화 유공자가 있으면 민주주의가 온전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가?
새 정부의 낮은 지지율 탓에 잠시 잊은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라고 하기에도 이상하고, ‘민주 정부’라고 하기에는 더욱 함량 미달인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의 북한 사랑과 대한민국 부정은 한 원로 지식인이 “대한민국이 공중 납치(hijack)당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심했다. 나라가 납치당하는 마당에 민주주의라고 온전할 리가 없다. 한때 우리에게도 민주화 운동의 눈부신 역사가 있었으나, 후속 세대의 손을 거치며 절차적 대의제는 입법 독재와 꼼수로 몰락했고, 평평해야 할 언론 지형은 홍위병들 때문에 심하게 기울어졌으며, 법치의 근간인 사법부의 독립성도 위태로워졌다. 나라는 더욱 분열했고, 타협과 토론 대신 혐오와 반목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눈부신 민주 혁명을 거친 나라가 유사(類似) 파시즘 문턱까지 타락했다. 어느 민주 유공자도 지금 이런 모습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최대 불행은 운동권에 포획당했다는 것이다. 그 운동권에는 군사정권에 맞선 사람도 있었으나, 사회주의 혁명이나 김일성 주체사상에 물든 사람도 들어있었고, 그러니 민주주의가 주체사상인지 노동 혁명인지,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고, 민주화 운동 또한 대한민국을 인정하는 운동인지 아닌지 모르게 변질했다. 지난 정부가 그랬고, 그걸 계승한 지금 야당이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 보상을 하라고 하니, 누구에게 무엇에 대해 감사하고 보상을 하라는 건지, 국민으로서는 알 수 없을 뿐이다.
‘민주’란 글자 그대로 국민의 자기 주권 주장이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정의처럼, 민주주의는 남이 아닌 스스로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자유 시민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당연한 주장을 용기 있게 한 것은 그 자체로 고결한 것이다. 그 대가로 대대손손 혜택을 받는다면 그 고결함이 오히려 훼손된다. 민주주의란 또 완결형이 없으며, 늘 위협받고 깨지며 도둑맞거나 납치당하기 쉬운 대상이다. 한때 민주주의가 있었으나 지금은 민주국가 아닌 국가가 지구상에 허다하다. 19세기 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 헌법을 갖춘 필리핀은 장기 독재를 거쳐 민주 혁명을 했으나 올해 다시 그 독재자의 아들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노벨 평화상의 아웅산 수지 여사를 배출한 미얀마에서는 지난주 군부가 민주주의 지도자 4명을 처형했다는 외신이 들어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바짝 긴장한 유럽은 지금이 1900년 이후 다시 유럽 정치가 전제 정치로 회귀하는 시기라고 진단하고 민주적 가치 수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 극심한 국가 분열을 겪고 있는 미국은 작금의 모든 사태를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규정하고 해법 마련과 연대 강화에 나서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아주 귀한 무언가를 깨뜨릴까 너무 두렵다”고 위기감을 표현하고 있다. 중동 정치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의 허약한 민주주의를 목격한 경험에 비추어, 언제라도 깨지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종착역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다. 계속 담론을 만들고 제도로 다듬고 반성하고 고쳐야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당에서는 민주주의를 독점하더니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처럼 정산(定算)을 위한 계산기부터 두드리고 있다. 수업료, 입학금 면제, 대입 특별전형 신설, 정부 공공기관 취직 시 10% 가산점, 300만~6000만원 저리 대출 대부 지원, 민영 공공 주택 우선 공급 지원까지. 그러면서 유공자는 800명, 유가족은 3000명 정도로 연간 지원 비용은 11억~21억원 추산으로 계산까지 끝냈다. 민주주의의 값으로는 저렴하기 짝이 없다. 돈과 특혜로 점철된 민주화 유공자에 대한 이런 예우는 오히려 예우의 격을 떨어뜨린다. 야당에서는 ‘명예 회복’을 말하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민주화 유공자의 명예가 훼손될 것이다.
이 땅에 민주화를 앞당긴 고귀한 희생에 감사한다. 민주화 유공자 예우법은 그런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여와 야가 합동으로 발의하고 추진해야 걸맞다. 민주화 유공자들도 자신들의 희생이 어느 정파의 전리품이 되어 입법 독재의 결과물로 남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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