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래건이 만난 사람] “민노총은 집회·파업으로 정부 시험… 불법은 불법이라고 확실히 해야… 정부 노동개혁 비전·전략 안 보여… 대통령 직접 나서 개혁 의지 보여야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 지냈던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취임 후 첫 국회 시정 연설에서 노동 개혁을 연금·교육 개혁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3대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산업구조의 대변혁 과정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라고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보여준 것은 노조에 속수무책 끌려다니는 모습이었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벌였을 때 정부는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화물연대의 요구 사항을 대부분 들어줬다. 전국 곳곳에서 민주노총이 생산설비 가동을 무단으로 중단시키고 사장실을 점거하는 등 실력 행사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말로만 ‘엄정 대응’을 외칠 뿐 불법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金大煥·73) 인하대 명예교수는 7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친 본지 인터뷰에서 “민노총 조합원 수만명이 서울 도심에서 모인 집회와 화물연대 총파업 등은 민노총이 현 정부를 시험해본 것인데, 정부는 끌려가기만 했다”며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 노사(勞使) 관계는 명확한 비전과 치밀한 전략이 있어야 바로잡을 수 있는데 지금 상태라면 지엽적인 이슈만 다루다 시간만 보낼 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정부는 노동자를 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실제 혜택은 힘센 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만 누리고, 나머지 대다수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소외됐다”며 “현 정부는 이런 ‘노사관계의 이중구조’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노동 개혁을 추진하고, 정부가 법과 원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가 불법은 불법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화물연대 파업 일주일 만에 정부가 타협했다.
“민주노총은 화물연대 파업과 지난 2일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로 현 정부를 테스트해 본 것이다. 화물연대가 정부와 타협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올해 연말로 결론을 미뤄놓은 것뿐이다. 특히 정부가 연말에 화물연대 요구를 수용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끝낸 것이 문제다. 아마 화물연대가 한 번 더 요구를 할 것이고, 정부가 3년 시한이 끝나는 안전운임제(컨테이너·시멘트 운송에 대해 최저운임을 정해주는 제도)를 영구화시켜 주든, 적용 대상을 늘려주든 뭔가 하나 더 해줘야 할 것이다. 화물연대가 짠 전략대로인데, 정부는 아무 전략 없이 끌려갔다.”
-정부 대응은 무엇이 잘못됐나.
“화물연대 주장은 화물차주 생계를 정부가 완전히 보장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직업이 어디 있나. 어떤 직업이든 시장 상황에 따라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화물차주가 빚 내서 화물차를 산 거는 투자를 한 거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어떻든 먹고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말이 되나.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집단(화물연대)이 세를 과시해 정부를 압박하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다.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다. 게다가 차주들은 사업자라 화주들과의 관계가 법적으로 노사 관계도 아니다. 피해를 입은 화주들은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정부가 처음에는 불법을 저지르면 면허를 취소한다느니 으름장을 놓더니 결국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정리했다.”
-정부가 어떻게 했어야 하나.
“민주노총은 기존 방식이 먹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정부는 일관된 정책과 입장을 가져가야 하고, 불법은 불법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원칙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경험이 쌓이면 질서가 잡힐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 중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정부가 이미 불법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노조에 대한 경고나 설득, 공권력 투입 등 불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또, 민·형사 등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노사 운동장 기울어져
-지금의 노사 관계 지형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들 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노조 쪽으로 완전히 무게추가 기울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유명무실해졌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문재인 대통령이 ‘양극화를 만든 한 축’이라고 직접 지목한 다음부터 뭘 했는지 기억을 못 하겠다. 문 정부 5년 동안 지방 공단 등에 강연을 가보면 사용자들 불만이 너무 많았다. 난 ‘뒤에서 불평만 하지 말고 경제단체 통해 문제 제기하라’고 했는데, 경제단체들이 너무 움츠러들어 있었다.”
-노조 횡포도 심해졌다.
“건설 현장만 하더라도 자기네 조합원이 아니면 채용하지 못하게 한다. 사업주는 노조 보복을 두려워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런 불법을 그동안 정부가 통제하지 않았다. 노조는 정치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됐다. 그렇다보니 민노총은 민노총대로, 한노총은 한노총대로 권력과 직접 거래한다. 문 정부 5년 동안 공공부문 요소요소에 노동계 출신들이 얼마나 많이 박혀 있었나. 노사 관계가 정치적 풍향에 너무 예민하고, 노조도 이를 활용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노조보다 사용자 힘이 더 강하다는 반론도 있다.
“나눠서 봐야 한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노조 조직률도 높고 현장 권력이 사실상 노조에 가 있다.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노조가 아예 없는 곳이 많고, 있다고 해도 노조 교섭력이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게 결국 저임금이나 열악한 근로조건 문제로 이어진다. 나는 이 문제를 ‘노사관계의 이중구조’라고 부르는데, 이 문제를 합리화하지 않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극심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문 정부는 ‘진보’라는 미명 아래 결과적으로 노동계,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에만 편중된 정책을 폈다.”
현 정부 노동 개혁 의지 잘 안 보여
-노동 개혁 핵심을 이중구조 혁파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노사관계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해 나가는 것이 결국 노동 개혁의 과정이라고 본다.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이 두 문제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대기업의 생산성이 중소기업보다 높은 것은 맞지만 임금이 과도하게 올라간 측면이 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노조의 교섭력 때문이다. 임금 결정 과정에는 노동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노조의 교섭력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공공부문은 신(神)의 직장이라고까지 하는데, 이 정도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대기업·공공부문이 과도한 기득권을 내려놓게 해야 한다. 대기업·공공부문이 임금을 노조 요구에 따라 일방적으로 올리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그 대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상대로 한 직업 훈련, 직업 능력 개발 서비스 등을 강화해 이들을 보호해 줘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뒤처지는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고 이중구조 문제도 줄일 수 있다. 비정규직 처우도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문 정부 때에는 이런 취약 계층에 아르바이트성 일자리 등 현금 살포성 정책만 폈다.”
-사용자 쪽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법과 원칙에 따라 대등하게 대해야 한다. 예컨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도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노조와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업인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노조를 인정하고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를 당당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노동 개혁 앞장서야
-대통령도 노동 개혁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노동 개혁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리가 안 돼 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52시간제와 임금 체계 개편을 들고 나왔지만, 이건 사실 지엽적인 것들이다. 노동 개혁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이중구조 개혁이라는 핵심 주제를 피해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52시간제 개편 방안이 포함된 노동 시장 개혁 방안을 발표했는데 다음날 윤 대통령이 ‘보고 못 받았다’고 했다. 정부 내에서 충분히 소통이 안 됐단 얘기다. 솔직히 아직 강력한 의지가 안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는 말인가.
“그렇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빅 푸시(Big push)’를 해야 한다. 개별 부처 차원에서 할 일이 아니다. 개혁을 위한 재정 수단도 필요하고, 합법·불법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원칙도 필요하다. 복지 제도는 근로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고용친화적으로 바꿔야 하고, 교육 시스템은 입시 위주보다는 산업 현장을 위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결국 정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대통령 프로젝트가 아니면 용두사미가 될 수밖에 없다.”
☞김대환
노무현 정부 시절 두 번째 노동부 장관(2004~2006년)을 지낸 진보 성향의 노동경제학자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 제언을 목표로 작년 6월 창립된 시민 단체 ‘일자리연대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참여연대 창설 멤버이기도 하다.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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