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질질 끌려 북송된 북어민, 나포 때부터 '귀순' 외쳤다"
입력 2022.07.13 05:00
2019년 11월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나포된 북한 어민 2명은 나포 당시부터 “귀순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나포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도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작성했음에도 당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은 “귀순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나포 5일만에 강제로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통일부는 12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이 잘못된 조치였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즉답을 피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 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3년 전 진행된 북한 어민의 나포 작전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그해 11월 2일 해군 함정에서 나포한 북한 어선에 올라 임검하는 과정에서 북한 어민 2명이 구두로 분명하게 ‘남측에 귀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인사들은 이들이 불과 5일만에 북한으로 추방된 사실을 언론 보도로 접하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당시 청와대와 군 당국이 SI(군 특수정보)를 통해 정보당국이 미리 해당 어민들이 귀순의 의향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접했다”며 “당시 나포 작전에 투입됐던 인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법한 귀순절차를 통해 한국에 정착할 거라고 생각했다”고도 밝혔다.
통일부는 12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이 잘못된 조치였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즉답을 피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 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1월 2일 군 당국은 NLL을 넘어온 북한의 오징어잡이 어선에 탄 2명을 해상에서 나포했다. 그리고 통상 두세달이 소요되는 합동조사를 불과 3일만에 끝내고, 북한에 이들에 대한 북송 의사를 통보했다. 결국 귀순을 원했던 북한 어민 2명은 나포 5일만인 11월 7일 정부의 결정에 따라 북한군에 넘겨졌다.
특히 이들에 대한 나포 작전을 비롯해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던 합동조사 과정 및 북송 결정 사실 등은 모두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됐다.
통일부는 12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이 잘못된 조치였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즉답을 피했다. 왼쪽 사진은 국가안보실 관계자가 2019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 주민송환 관련 메시지를 보고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당일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 하는 모습. 뉴스1
북한 어민의 나포와 북송 사실은 이들에 대한 실제 북송이 이뤄졌던 2019년 11월 7일 오전 국회 예결위에 출석했던 김유근 당시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의 휴대전화에 수신된 “이날 오후 탈북어민을 북송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우연히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도 김 전 차장의 문자 메시지가 공개된 11월 7일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북한 어민에 대한 북송 과정을 묻는 당시 야당 의원들이 질의에 대해 “실제 북송 절차가 이뤄지기 전에는 언급할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다 당일 오후 3시 이들에 대한 강제북송이 이뤄진 뒤에야 “합동조사 결과 귀순의 진정성이 없었다고 판단했다”며 북송을 알렸다.
김 전 장관은 당시 귀순을 원했던 어민들이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썼다는 사실까지 시인했다. 그러나 선상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동료 선원 16명에 대한 살해 사건을 강조하며 “이들이 ‘죽더라도 돌아가겠다’고 진술했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통일부는 12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이 잘못된 조치였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즉답을 피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 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그러나 당시 김 전 장관이 강조했던 어민들의 발언은 귀순 의향을 판단하기 위한 정부의 합동조사 과정이 아닌 귀순을 결정하기 이전 북한 어민들이 선상에서 나눴던 대화였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그 사람들은 흉악범이었다"며 "일반 탈북민과 구분돼야 하고 정부가 북송을 결정할 때는 고문방지협약 등을 모두 검토했다"고 송환 이유를 들었다. 북한 어민들이 밝혔던 귀순 의사가 아니라 선상 살인 혐의를 부각하는 발언이었다.
지난 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2022년도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사건 발생 이후 3년 가까이 잊혀졌던 강제 북송 사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6일 국정원이 북한 어민의 북송 과정에 관여한 서훈 당시 국정원장을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발하면서 재차 주목받게 됐다. 국정원은 서 전 원장 등을 고발하며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선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어민들의 의사에 반해 무리한 북송이 결정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당시 정부는 11월 2일 북한 어민을 동해 해상에서 나포한지 3일만인 같은 달 5일 북한에 이들을 추방하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 북송 의향을 전달했던 5일은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국 답방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던 날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은 “SI정보를 통해 북한 어민이 선상에서 동료 16명에 대한 살해가 진행됐고 이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북한군을 피해다닌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며 “귀순 의향을 최종 확인하는 합동조사에서도 실제 귀순 의향이 없었음이 명확히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당시 정부와 정보당국은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던 어민들의 눈을 가리고 포박한 채로 판문점까지 이송했고, 강제 이송 과정은 통상 표류해온 북한 주민을 호송했던 대한적십자사가 아닌 경찰 병력까지 동원했다.
특히 “귀순 의향이 없었다”는 청와대의 설명과 달리 이날 통일부가 공개한 북송 사진을 통해 북한의 처벌을 두려워하며 강압적 북송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장면까지 공개되면서, 귀순 의사를 밝혔던 북한 어민을 전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방했다는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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