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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안전운임제, 尹발목 잡다… 화물연대 파업 딜레마

최만섭 2022. 6. 12. 22:57

文정부 안전운임제, 尹발목 잡다… 화물연대 파업 딜레마

입력 2022.06.11 03:00
 
 
 
 
 

지난 7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로 인해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는 육로를 통한 운송이 나흘째 전면 중단됐다. 포항제철소에서는 하루 2만t, 광양제철소에서는 하루 1만5000t이 육로로 운송됐는데 이 물량이 제철소 내에 계속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철소 내 창고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비상 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사태가 지속되면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 울산본부 조합원들이 7일 오전 울산 남구 울산신항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한 가운데 주변 도로에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2022.6.7/뉴스1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하며 시작한 무기한 운송 거부로 철강·화학·자동차·건설 등 주요 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정부의 딜레마다. 전 정권이 일몰제 형식으로 도입한 제도의 혜택을 경험한 화물연대가 쉽게 물러설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가뜩이나 물류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3년 전 안전운임 규정을 입법화한 정치권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통상의 노사 문제와 달리 정책·제도가 주된 쟁점이라 여·야,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서 “새 정부가 임기 초부터 골치 아픈 난제를 만났다”고 말했다.

철강·자동차·건설·화학 피해 확산

철강 업계에서는 육로를 통한 철강 제품 출하가 계속 막힐 경우 저장 시설 포화로 인해 감산에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경우 매일 철강 제품 1만8000t이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안전 문제로 인해 제철소 내에 무한정 적재할 수도 없다”면서 “최악의 상황에서는 생산량을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차 울산 공장은 부품 수급이 안 돼 하루 2000대 안팎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울산 공장은 하루 5000대가량을 생산해왔다. 화물연대가 완성차 운송도 거부하자 10일 현대차는 전국 사업본부 소속 사무직원들을 울산 공장에 파견해 한 대씩 차량을 운전해서 공장 밖으로 빼내는 ‘로드 탁송’까지 하고 있다.

건설 업계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시멘트 출하가 막히면서 전국 레미콘 공장의 60%가 시멘트 재고 소진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은 금방 굳기 때문에 재고 확보가 아예 불가능한 자재”라며 “다음 주부터는 공사가 전면 중단되는 건설 현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체들도 평소 대비 90% 이상의 물량을 운송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화물연대가 반도체 원료 운송까지 막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광양항 입구 막은 화물연대 - 10일 전남 광양시 광양항 입구에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화물트럭 4대를 세워놓고 다른 배송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다. 총파업 나흘째인 이날 전국 곳곳에선 물류 차질이 빚어졌다. 그 여파로 산업계는 물론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물류 쇼크’가 닥치고 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안전운임제 딜레마에 빠진 정부

그러나 안전운임제 문제를 해결할 묘수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안전운임제 일몰 기간을 연장하거나 일몰제를 폐지할 경우 화주들의 비용 부담이 우려되고, 안전운임제 일몰에 따른 임금 삭감을 화물차주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법과 원칙’을 내세워 화물차주에게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화물연대의 강도 높은 저항으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일 “(일몰제) 연장 여부 검토는 올해 초까지 국회로 보고하게 약속돼 있었는데 민주당은 여당이던 올해 초엔 손놓고 있다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안전운임제를 법제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화물연대와 간담회에서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토부는 대책 마련도 입장 표명도 없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말하자, 애초 이 제도를 도입한 민주당에 정면 반박한 것이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나 안전운임제 확대 적용을 위한 법 개정 준비 자체도 미비한 상태다. 류기정 경총 전무는 “입법을 하려면 우선 그동안 안전운임제를 운영하면서 얻은 실익이나 부작용, 개선 방향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화물연대도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극단적인 방법만 고수하기 보다는 정부가 마련하는 대화 기구에 참여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

화물 기사들의 적정 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2020년부터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 차량에 한해 3년 일몰제로 도입됐다. 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화주(貨主)·운수업체에는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