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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기화될 인플레 전쟁, 정부·국회·기업·가계 모두 고통 분담해야

최만섭 2022. 6. 14. 04:53

 

[사설] 장기화될 인플레 전쟁, 정부·국회·기업·가계 모두 고통 분담해야

조선일보
입력 2022.06.14 03:26
 
 
 
 
 
주요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5월 미국 소비자 물가가 40여 년 만의 최대인 8.6% 상승을 기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시장에선 미국 물가가 3월(8.5%)에 정점을 찍고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이 완전 빗나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9.2%를 기록, 고물가는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도 5월 소비자 물가가 5.4%로 1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거듭 중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서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경제 성장세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공급난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경제를 더욱 냉각시키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2.9%로 대폭 낮추면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국도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고 물가는 4%대로 치솟을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국면이 펼쳐졌다.

정부도 고물가를 최대 현안으로 보고 한국은행과 공조해 해법을 찾고 있다. 정부는 유류세·관세 등의 인하를 통해 기업과 가계의 비용 부담을 낮추는 정책을 실행했고, 한은은 4~5월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 감축에 나섰다. 하지만 금리 인상 와중에 정부는 62조원 추경을 단행하는 등 재정·통화 정책이 엇박자를 빚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코로나와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풀린 천문학적 유동성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최소 1~2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 전망이다. 고물가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임금 악순환’에 빠지면 상황은 더 나빠지는데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이션 차단은 정부와 한은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며, 기업과 가계, 근로자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고통 분담 노력을 해야 한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과 경비 절감을 통해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하고 고용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계는 빚을 줄이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자제해 금리 상승에 대한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 근로자들은 일자리 유지를 1순위로 삼고 임금 인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돈 살포 정책은 62조원 추경을 마지막으로 끝내고 예산 지출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급하지 않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뒤로 미루고, 그 재원을 고통 분담을 실천하는 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보조금 지원,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보강하는 데 써야 한다. 정치권은 노사 상생 모델 확산을 위한 각종 입법 지원, 노사정 대화 채널 가동 등을 통해 민관(民官)의 인플레 전쟁을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