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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과학] 꿀벌 사라지면 수박·호박·아몬드 못 먹을 수도 있어요

최만섭 2022. 3. 29. 05:24

[재미있는 과학] 꿀벌 사라지면 수박·호박·아몬드 못 먹을 수도 있어요

입력 : 2022.03.29 03:30

지구상에 꼭 필요한 생물들

봄철 꿀 수확기를 앞두고 국내 양봉 농가에서 꿀벌이 사라져 비상이 걸렸어요.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2006년부터 꿀벌이 집단 실종되고 있다고 합니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 과다 농약 살포, 환경오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꿀벌은 세계적인 환경 단체 '어스 워치'가 꼽은 '지구상에서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될 5종(꿀벌·플랑크톤·박쥐·균류·영장류)' 가운데 1위로 뽑혔는데요.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과 투표로 선정했답니다. 이 생물 5종은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종으로 꼽힌 걸까요.

지구 최대의 꽃가루 매개자 꿀벌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진다면 4년 안에 인류도 사라진다." 국제 과학계에선 이런 말이 오래전부터 돌았어요. 그만큼 꿀벌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예요. 꿀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옮기는 '꽃가루받이'입니다. 대부분의 식물이 꽃가루받이를 통해 열매와 씨를 맺어 자손을 퍼뜨리지요.

인간이 재배하는 1500종의 작물 중 40%는 곤충을 통한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는데요. 그중 꿀벌이 80%의 역할을 해요.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종의 주요 농작물 중 수박·호박·양파·아몬드·사과 등 71종이 꿀벌의 꽃가루받이로 생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이런 농작물을 못 먹어 식량난이 심각해지게 되지요. 게다가 먹이사슬까지 영향을 미쳐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지고, 그러면 초식동물이 대규모로 멸종될 거예요. 벌을 먹는 새들도 사라지고, 초식동물을 먹는 고등 동물도 사라지겠죠.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마이어 교수는 국제 학술지 랜싯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한 해 142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바다 먹이사슬의 기초 플랑크톤

바다나 담수에 사는 플랑크톤은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플랑크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에 따라 식물성과 동물성으로 나뉘어요.

식물플랑크톤은 육지 식물처럼 광합성을 해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내는데요. 햇빛·물·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산소와 영양분인 탄수화물을 만들며 살아가요. 물고기의 부레와 같은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수면에 떠 있기 때문에 광합성에 필수인 햇빛을 마음껏 받을 수 있어요. 식물플랑크톤은 지구온난화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해요. 광합성 작용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하고, 지구상에 있는 산소의 50% 이상을 만들어내 대기의 질을 향상시키죠. 유기물을 만드는 '1차 생산자'인 셈이에요.

반면 동물플랑크톤은 식물플랑크톤과 박테리아 등을 잡아먹는 '1차 소비자'예요. 동물플랑크톤은 조개·새우와 같은 생물의 먹이가 되는데, 이 생물들은 더 큰 생물의 먹이가 되겠죠. 결국 플랑크톤이 물속 세상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만일 플랑크톤이 사라진다면 물속 생물들은 굶어 죽고 말 거예요. 수중 생태계 또한 무너지겠죠.

효소 분비해 먹이 분해하는 균류

자연의 청소부로 불리는 균류는 효소를 분비해 먹이를 분해하는 특성이 있어요. 이들은 생물의 사체나 동물의 배설물에 균사(菌絲)를 뻗어 분해하며 영양분을 얻는데요. 이 과정에서 물질을 썩혀 토양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순환이 이뤄지고, 식물이 흙에서 영양분과 수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요. 만약 균류가 없다면 지구는 온통 죽은 생물과 배설물로 뒤덮일 거예요. 곰팡이는 발효 기능도 있어서 이로운 식품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우유에 발효 곰팡이가 자라도록 두면 치즈가 돼요. 곰팡이가 없다면 된장·초콜릿·포도주·커피 등도 만들 수 없게 되겠죠.

열대 과일 꽃가루 수정하는 박쥐

박쥐는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해요. 하늘을 나는 유일한 포유류인 박쥐 한 마리가 하룻밤에 잡아먹는 해충은 3000~6000마리에 달해요. 박쥐는 초음파를 사용해 어둠 속에서도 비행 중인 곤충을 정확히 사냥할 수 있도록 진화했어요. 박쥐가 먹는 곤충은 대부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에요.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 원어치 살충제를 뿌리는 효과죠. 박쥐가 없다면 우리는 모기떼와 나방에 둘러싸여 살고, 해충으로 매년 농작물이 20% 정도 사라질 거라고 해요.

열대지방에 사는 박쥐는 열대 과일의 꽃가루를 수정해 열매를 맺도록 돕는 역할도 해요. 열대 과일은 대부분 밤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낮에 활동하는 벌은 꽃가루받이를 할 수 없어요. 야행성인 박쥐 덕분에 우리가 망고·코코넛·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영장류는 열대 숲의 정원사예요. 숲에서 과일을 따 먹고 배설로 씨를 퍼트려 열대 우림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에요. 인간과 유전자가 90% 이상 같아서 영장류 연구를 통해 인간의 기원과 발달 과정도 가늠할 수 있답니다.


[커피 발효에도 미생물 필요해요]

커피를 만들 때에도 발효 과정을 거쳐요. 커피체리는 외피·과육·점액질·내피·씨앗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커피콩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이용해 커피체리의 외피와 과육을 제거하고, 그 뒤 수조에 넣어 점액질을 제거해야 해요. 이 과정에서 미생물들이 다당류로 이뤄진 점액질을 분해하며 발효가 이뤄진답니다. 보리나 우유 등은 원재료를 발효시켜 와인·치즈·요구르트 같은 새로운 식품을 만드는 데 반해, 커피 발효는 제조 과정의 일부인 셈이에요.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