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한삼희의 환경칼럼] 에너지 기술에 좌파·우파가 어디 있겠는가

최만섭 2022. 1. 19. 05:37

 

[한삼희의 환경칼럼] 에너지 기술에 좌파·우파가 어디 있겠는가

원전 수출 가능 6국 중
한국만 원자력 전기를
’非환경적 에너지’ 분류
최악 토지 부족 국가가
기술에 이념 덮어씌워
超고밀도 청정 에너지 배척

입력 2022.01.19 00:00
 
 
 
 
 
 
 
 
작년 6월 촬영한 전남 해남군 산이면 구상리의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단지. 국내 최대 규모이지만, 여기서 생산하는 전력은 현 정부 들어 폐쇄시킨 월성1호기 원전의 25분의 1 규모밖에 안된다. /김영근 기자

환경부가 지난달 30일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에 속하지 않는다고 배제시켰다. 그 하루 뒤 유럽연합(EU) 집행부는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분류한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했다. 앞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원자력을 태양광·풍력·지열·수력과 함께 ‘무공해 전력’으로 규정한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중국은 재작년, 러시아는 작년에 각각 원자력을 청정 또는 녹색 에너지로 분류했다. 일본 역시 원자력을 태양광·풍력과 같은 차원의 ‘비화석 에너지’로 규정했다. 이렇게 되면 원전 수출 능력을 갖춘 여섯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 원자력에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된다.

참 딱한 사람들이다. 기술의 친(親)환경성은 환경 용량을 종합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쓰레기 처리의 경우 미국이나 호주처럼 국토가 넓다면 매립이 친환경적 처분 방식이다. 유럽이나 우리처럼 비좁은 나라에선 매립보다 소각 위주로 가야 한다. 한국의 결정적 자연 조건은 국토가 비좁다는 점이다. 남한의 ㎢당 인구밀도는 507명(위키피디아)으로 OECD 38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우리 말고 인구밀도 300명 이상은 이스라엘(429명), 네덜란드(423명), 벨기에(376명), 일본(334명) 정도다.

단순 밀도만 봐서도 안 된다. 산림청의 ‘2020 산림 기본통계’를 보면 한국은 국토의 산림 비율이 64.5%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많아야 30%대(영국 13.2%, 프랑스 31.5%, 독일 32.7%, 이탈리아 32.5%, 스페인 37.2%)다. 미국도 33.9%다. 산림은 대개 농지, 도시로 쓸 수 없는 경사진 지형에 형성된다. 유럽과 북미는 2만 년 전 두께 2~3㎞의 대륙 빙하가 짓누르고 있었다. 이것들이 움직이면서 지형을 완만하게 만들었다. 건조 기후라서 빗물 침식도 약해 계곡 지형이 드물다. 평지 면적만 갖고 인구밀도를 다시 뽑아보면 한국(㎢당 1428명)은 독일의 4.1배, 영국의 4.6배, 이탈리아의 4.8배, 프랑스의 8.4배, 스페인의 9.5배, 미국의 28배다.

우리의 환경 문제 어느 하나 극도의 토지 부족 조건과 무관한 것이 없다. 에너지 선택도 그렇다. 최대한 고(高)밀도 에너지를 추구해야 한다. 1년 전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가 건설을 중단시킨 신한울 3·4호기의 전력 생산 능력은 서울~대전 간 고속도로 양편 1㎞ 폭을 가득 채운 태양광 설비만큼이라고 비교했다. 그만한 땅을 태양광에 할애할 여유를 만들기 어렵다. 반면 신한울 3·4호기는 부지도 닦아놨다. 계속 지을지 말지를 놓고 논란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태양광·풍력도 할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도로변, 주차장 등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주택 지붕에도 설치 붐을 일으켜야 한다. 다만, 신한울 3·4호기에 견줄 수 있으려면 주택 529만 채의 지붕이 필요하다는 계산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는 건물 벽면에 설치하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BIPV)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 몇 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건물 벽마다 태양광 패널이 달릴 경우 도시 미관을 해치지는 않을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EU가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분류한 것은 태양광·풍력만 갖고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1년 사이 네 배 폭등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관을 틀어막고 있어서다. 우리는 유럽보다 국토 조건도 불리하지만 지정학적 조건은 더 열악하다. 독일, 덴마크 같은 태양광·풍력 국가는 태양이 안 비치거나 바람이 약해지면 프랑스 원전이나 노르웨이 수력 전기를 빌려 쓸 수 있다. 비(非)우호국으로 둘러싸인 우리는 전력저장장치(ESS)를 달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ESS 비용을 따져봤더니 787조~1248조원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저장장치 부지로만 여의도의 48~76배 땅이 별도로 필요하다.

EU 의뢰로 원자력의 환경성을 평가했던 유럽 합동연구센터의 분석 결과를 보면 원자력은 온실가스 배출이 석탄의 30분의 1, 천연가스의 18분의 1, 태양광의 3분의 1이고, 풍력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력 생산 전 과정에서의 사고 치명률도 3세대 원전은 태양광의 37분의 1, 해상 풍력의 1250분의 1에 불과하다.

에너지는 에너지일 뿐이다. 전기에 좌파 전기, 우파 전기가 있을 리 없다. 신재생은 선(善), 원자력은 악(惡)이라는 규정은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근본주의 도그마이다. 원자력 전기와 태양광 전기가 다르다고 보는 것은 과학기술에 이념의 굴레를 덮어씌운 ‘기술 부족주의(technology tribalism)’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