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기상인사이드] 46년 만에 노벨상 받은 지구온난화 실험… 과학이 기후 위기 막는다

최만섭 2021. 11. 17. 04:57

[기상인사이드] 46년 만에 노벨상 받은 지구온난화 실험… 과학이 기후 위기 막는다

입력 2021.11.17 03:00
지난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작금의 기후 위기에 대해 다소 진전된 합의문을 채택했다. 눈에 띄는 것은 석탄화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것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석탄화력 발전 ‘중단’이 아니라 ‘감축’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197국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인 것은 틀림없다.
전 세계 연료별 이산화탄소 총 배출량

왜 하필 석탄인가. 이산화탄소 최대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40%가 석탄 연소를 통해 배출된다. 무엇보다 석탄화력 발전이 문제다. 경제성 논리를 앞세운 석탄화력 발전은 전 세계 곳곳에서 주요 전력 생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확장 일로에 있다. 향후 건설이 확정된 발전소만 해도 1721기에 달한다. 이 발전소가 모두 운용된다면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증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보다 적어도 4도 이상 전 지구 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다. 만약 계획된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을 전면 백지화한다면 그만큼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

글래스고 합의안의 성공 여부는 중국과 인도에 달려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의 53%를 차지한다. 인도의 석탄 소비량도 전 세계 11%를 차지할 만큼 매우 높다. 지나치게 석탄 의존도가 높은 만큼 감축이 쉽지 않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는 대신 감축하기로 합의문이 약화된 것도 실상 중국과 인도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석탄 소비량도 적지 않다. 석탄 연소를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본다면, 전 세계 배출량의 2%를 차지한다. 적어 보이지만 전 세계 8위에 해당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더디지만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많은 사람의 헌신이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과학자들의 기여는 결정적이었다. 지구온난화가 신화가 아니라 현실임을 증명했고, 온난화가 가속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재난들을 과학적으로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는 이제 상식이지만, 사실 온난화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1970년대만 해도 기후변화는 그저 흥미로운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1970년대에는 곧 빙하기가 올지 모른다는 신문 기사나 보고서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지구온난화의 가능성과 위험을 언급한 연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75년 미국 기상학회지에는 기념비적인 논문이 출판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에서 600ppm으로 증가하면(현재 414ppm) 어떤 일이 생길지 추정한 논문이었다. 3차원 기후 모형을 이용한 최초의 지구온난화 실험이었다. 기후 모형은 대기와 해양의 물리 과정을 표현한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논문에서는 1960년대 말 개발된 매우 단순한 기후 모형을 사용했다. 당시 컴퓨터 성능의 한계를 고려해, 지구를 대륙과 해양으로 단순히 이분하고 산맥과 해류는 무시했다. 온실 기체는 수증기, 오존 그리고 이산화탄소만 고려했다. 심지어 구름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기후 모형 시뮬레이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2배로 증가하면 지표부터 대류권 전반에 걸쳐 기온이 상승하고, 북극은 급격히 따뜻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대류권과 달리 성층권(고도 18㎞ 이상)의 기온은 낮아질 것이라고 보고했다. 놀랍게도 지난 50년간 기후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당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연구는, 46년이 흐른 2021년에야 기념비적인 연구로 인정받았다. 지난 10월 논문의 주 저자 “마나베 슈쿠로” 박사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이다. 정통 기상학을 전공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구순의 연구자는 ‘단지 호기심을 채우는 연구를 했을 뿐’이라고 회고했지만, 빙하기가 가십거리였던 시절에 3차원 기후 모형을 직접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지구온난화 실험을 진행한 것만으로도 노벨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마나베 박사가 개발한 기후 모형은 1980년대 수퍼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각국은 보다 정확한 고해상도 기후 모형 개발에 나섰다. 덕분에 이제는 지구온난화에 따라 기온이 얼마나 오를지 혹은 비가 얼마나 내릴지를 넘어,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대기와 바다 그리고 나무를 통해 순환하는지 정량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기후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포부와 달리 그리고 IT 선진국이라는 위상과 달리, 아직 독자적인 기후 모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기후 대응을 위해 국립기상과학원에서 기후 모형을 활용하고 있지만, 영국 모형을 일부 수정한 정도에 그치고 있다. 다른 나라 기후 모형으로 우리나라의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 모형은 이제 과학적인 툴을 넘어, 기후 위기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기후 모형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도 개발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상청은 일기예보에 사용되는 수치 모형인 KIM을 확보하고 있다. KIM은 날씨를 예측하는 최신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이를 확장 발전시킨다면 수년 내에 충분히 기후 모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대한민국 2050 탄소 중립 계획은 과학적 이해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복합적인 관측과 독자적인 기후 모형의 확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