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敍事로 가는 문
이영춘
슬픔 같은 장대비가 툭툭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둠 저 끝에서 밀려오는 바람소리,
등 뒤에서 누가 비수를 꽂듯, 가슴 한 끝에 비수를 꽂고 돌아선 사람
창에 어리던 북극성 한 쪽이 허리를 굽혀 내 허물을 판화한다
세상은 황량한 이중성의 간판들, 그 간판들이 점멸등처럼 붉은 눈을 켜고
달려오는데
나는 어느 변곡점에서 성인聖人의 도성에 닿을 수 있을까
어제는 바람이 불고 오늘은 비가 오고 빗속에서 붉은 사과가 떨어진다
사과 속에서 씨앗이 떨어지듯 나는 내 발자국 지우며 간다
탓하지 마라 사람아, 바람아, 세상아,
세상 안에서 세상 바깥에서 나는 서사敍事의 문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계간 『창작21』 2020년 겨울호 발표
'시-시조·신문.카페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영옥의 말과 글] [235] 와락, 왈칵, 뭉클 (0) | 2022.01.15 |
---|---|
[산모퉁이 돌고 나니] 무엇이 상식이고 상식 밖일까 (0) | 2022.01.14 |
[자작나무 숲] 보드카가 그립다 (0) | 2021.12.28 |
개망초 (0) | 2021.12.27 |
[백영옥의 말과 글] [232] 규칙 없음 (0) | 202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