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땅값이 비싼 건 땅 주인의 책임이 아니다
건물·공장·도로 등 도시적 용도로 국토의 8% 쓰는 데 그쳐
농지·임야 규제 풀어 가용 토지 대폭 늘려야…
땅값 계속 오른다 생각지 않도록 선제적 토지 공급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투자하는 데 고임금 못지않게 큰 장애 요인이 고지가(高地價)다. 고지가는 주택 가격과 자영업자의 가게 임차료 부담을 높여서 물가를 높이고 다시 임금 인상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백해무익이다. 고임금은 경제 발전의 궁극적 목표고, 고금리는 저축을 유도해 자금 공급을 늘려 금리가 다시 떨어지게 하지만 땅값은 올라도 공급이 늘지 않기 때문에 값을 안정시키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가게를 임차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애써 번 돈의 큰 몫을 땅 가진 사람들이 가져간다. 고지가는 만병의 근원이다.
땅값이 이렇게 높은 것은 공급 부족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세계 3위인 나라가 건물·공장·도로 등 도시적 용도에 국토의 겨우 8%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 땅은 원칙적으로 사용 금지다. 농지·임야 보전에서 시작해 수도권 인구 집중 방지, 자연환경 보전, 문화재·군사 시설 보호 등 수많은 이유로 특별한 허가 없이는 토지 이용이 불가능하다. 가장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할, 이미 집을 지어 살고 있는 땅도 재개발·재건축을 제한해 공급 차질을 초래했다. 새 서울시장이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공급 전망이 호전된 것만으로도 수요가 대기 상태로 바뀌고 집값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새로 토지가 필요할 때 복잡한 절차를 거쳐 허가받아야 하니 토지 공급은 언제나 부족하다. 어렵게 토지를 사용 가능하게 만들어 놓으면 지주들은 사실상 공급 독점 상태가 되어 그 전에는 팔리지도 않아서 고민하던 땅도 값을 천정부지로 올린다. 그래서 큰 사업을 할 때는 회사 임직원 이름으로 남몰래 토지를 매집한 후에 이전용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낭비를 초래하니 투자 저해 요인이다. 2003년 엘지필립스가 파주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장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 많은 규제를 모두 풀어 준 덕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용 토지를 사전적으로 현재의 2배 정도 늘려서 공장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 여기서 값을 비싸게 부르면 저기 가서 짓겠다고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지가가 안정되고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말이다.
토지에 대한 세금을 늘려서 토지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돌아다니는데 땅값이 이렇게 비싼 것은 가용 토지의 공급을 제한한 나라의 책임이지 땅 주인이 올린 게 아니다. 집값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투기해서 값이 오른 게 아니라 값이 계속 오르니 미리 사 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대실패에서 규제와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는 없다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그건 바보다. 여당도 부동산 세금을 완화하겠다고 한다니 다행이기는 하다.
토지의 경우에도 공급 확대 없이 공급자 시장을 그대로 두고 세금을 올리면 결국은 수요자에게 부담이 전가돼 값은 더 오르고 투자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혹시 집권해서 토지 세금을 올려 보고 싶더라도 사전에 가용 토지를 2배 정도 확대해서 토지 시장을 수요자 시장으로 만들어 놓고 난 후에 할 일이다.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정부가 산업단지공단으로 하여금 농지·임야를 사들여서 (때로는 수용까지 해 가면서) 부지를 조성하고, 도로를 내 주고, 전기·수도도 넣어주는 등 토지를 적극적으로 공급해 주었다. 이제 제조업에서는 과거와 같은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미리 토지를 마련해 주는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투자 유치를 위해 땅을 마련해 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외국 사례를 본받으려면 투자 유치의 주체인 지자체에 토지 이용 규제권을 대폭 넘겨야 한다.
그린벨트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 솔직해져야 한다. 이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는 대부분 그린벨트를 풀어서 부지를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그린벨트는 다음 세대에 물려 줄 소중한 유산”이라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인가? 다음 세대에 녹지를 물려 주어야 한다고 해도 그 물려 줄 녹지의 위치가 하필 50년 전에 박정희 대통령 때 지정해 놓은 바로 그 땅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발굴이라도 해서 토지 공급을 늘리겠다”는 각오가 안 보인다.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토지 공급이 필요할 때는 결국은 규제를 풀어 주었다. 그린벨트도 이미 풀 만큼 풀었다. 어차피 풀 규제라면 선제적으로 해서 사람들이 더 이상 토지가 희소한 자원이고 값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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