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불평등 커져… 올해 각국 선거서 현 정권들 위태로울 것”
[세계 석학 인터뷰] [1] 컨설팅社 ‘유라시아그룹’ 이언 브레머 회장
“코로나 팬데믹이 휩쓴 2년간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유권자의 분노가 극에 달해있다. 이것이 2022년 각국 선거에서 현 정권을 위협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이다.”
글로벌 리스크(risk·위험) 예측 전문가인 이언 브레머(52) 미국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본지 신년 화상 인터뷰에서 올해 미국 중간선거와 한국·프랑스·브라질 대통령 선거 등 각국 주요 선거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은 경제 봉쇄 속에서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이는 각국에서 사회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겼고, 극좌와 극우 세력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반(反)체제 정서를 위험 수위로 끌어올렸다”며 “각국 현 정권이 이런 공격에 힘겨운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3년 차엔 백신과 치료제 보급으로 바이러스 자체의 파괴력은 감소하겠지만, 한번 교란된 세계 경제가 정상화되기까진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런 갈등을 조정할 리더십이 없는 것이 지구촌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브레머는 특히 “이번 한국 대선도 아시아 지정학에 중요한 변수가 될 일종의 리스크”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극단적으로 다른 두 후보가 출마했는데, 두 사람이 미국과 중국에 대한 태도를 서로 완전히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며 “한국 대선이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선거’가 될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브레머 회장은 보스턴 태생의 국제정치학자. 각국 정부와 대기업에 미래 리스크 진단을 해주는 싱크탱크형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을 이끌고 있다. ‘우리 대 그들’ ‘리더가 사라진 세계’ 등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라시아 그룹은 매년 초 ‘글로벌 리스크 톱 10′을 발표한다. 2022년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글로벌 리더십 공백 상황의 코로나 팬데믹 지속’을 1순위로 꼽겠다. 지난 2년간 각국은 백신 승인과 제조, 공급을 두고 우왕좌왕했다. 그로 인해 국가 간·지역별 불평등과 격차가 커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일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빈자들은 그 경제적 여파로 수년간 고생할 것이다.”
-당신은 지난해 글로벌 톱 리스크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 약화’를 꼽았다. 그에 따른 미국 사회 분열과 글로벌 리더십 실종도 예측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평가는.
“그걸 발표한 게 2021년 1월 4일이었다. 바로 이틀 뒤인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까지 빨리 예측이 현실화될 줄 몰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 지지율이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보수 유권자들은 아직도 ‘2020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한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도 민주당과 바이든은 불리한 입장일 것이다. 아마 공화당이 하원은 석권할 것이고, 상원에서도 다수당이 될지 모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2024년 대선 캠페인에 돌입했다. ‘트럼프 현상’이 계속될까.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이 주요 7국(G7) 중 경제적으로 가장 불평등하고 정치적으로 분열됐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이전부터 미국은 이미 깊은 분열과 부족주의, 초양극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트럼프란 인물은 이러한 구조적 미국병(病)의 증상이자 가속자일 뿐이다. 이 문제를 치유하려면 한 세대가 걸릴 것이다.”
-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것 아닌가.
“미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이든이 ‘미국이 돌아왔다’고 한 부분은 파리 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 복귀, 미·유럽 관계 회복, 글로벌 법인세 조정 같은 문제에 한해서다. 반면 미국은 국내 제조업계와 중산층 눈치를 보느라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지 않는 등 글로벌 무역 정책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은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동맹들과 충분히 협력하지 못한 실수도 저질렀다.”
-2022년 경제·산업 분야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선진국 경제는 괜찮다. 문제는 개도국 이머징 마켓이다. 이런 나라일수록 코로나에 크게 타격받았고, 정치 리더십이 실종된 경우가 많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가 예고한 대로 2022년 금리를 올려 돈줄을 세게 조이기 시작하면, 개도국 정부들은 부채를 늘리기 어렵고 돈을 더 끌어올 수도 없다. 앞으로 불황 타개의 수단이 별로 없어져 민심이 악화될 것이다.”
-미·중 갈등도 큰 글로벌 리스크다. 바이든 정부가 ‘인권과 무역 불공정 관행’을 들어 중국을 계속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하나.
“미국은 인권과 법치 훼손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나라다. 이런 가치를 포기하면 미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제에 다른 의견을 가진 나라와도 협력할 수는 있다. 양측 협력이 어느 한 쪽의 국익에 강력히 부합하는 경우다. 양쪽 모두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가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군사·안보 리스크는 어느 정도인가. 아프간에서 철수한 미국이 해외 군사 개입에 다시 나설 가능성은.
“대만과 우크라이나는 각각 중국과 러시아 국가 안보의 ‘핫 스팟’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보다 대만이 안보·경제적으로 더 중요하다. 바이든 정부가 대만 문제에선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좀 더 있다.”
-2022년 미국과 유럽, 남미, 아시아 등의 굵직한 선거를 지배할 주요 변수는.
“미 중간선거와 브라질 대선에서 최대 변수는 선거의 적법성이 될 것이다(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선거 부정’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를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 양국 국민 상당수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이 선거는 도둑맞았다’고 믿고 있다.”
-미국에서 보는 한국 대선 전망은.
“전문가들은 내년 한국 대선을 가장 흥미로운 선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윤석열 후보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개선,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참여 등을 주장하는 한편, 이재명 후보는 한중 관계 강화와 대북 햇볕정책 계승 등을 원한다. 특히 이 후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하고, 주한미군을 ‘점령 세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 지향을 버리고 중국과 더 관여하고, 문재인 정부의 반일 정책을 유지하며 한반도 종전선언, 대북 지원과 남북 협력 등을 지지할 것이다.”
[브레머 회장이 본 ‘중국 리스크’]
‘세계의 공장’ 회복 더뎌… 세계 경제 발목 잡을 듯
유라시아그룹은 오는 3일 뉴욕에서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 언론을 상대로 ‘2022 글로벌 톱 리스크’를 발표한다. 이언 브레머 회장은 “이번엔 글로벌 리더십이 사라진 상태에서의 코로나 팬데믹 지속을 1위 리스크로 꼽을 것”이라고 전했다. 팬데믹 3년 차에는 바이러스 자체가 아닌, 바이러스가 드러낸 정치 리더십의 실패와 그로 인한 경제 불평등이 세계의 최대 위협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브레머 회장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더딘 경제 회복이 세계 공급망과 성장률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이 의존해온 자국산 시노백 백신의 바이러스 예방 효과가 미약해 국내 경제 교란 리스크가 장기화할 것”이라며 “중국 주민의 삶은 팬데믹 원년인 2020년보다 2022년에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뉴욕에 본부를 둔 글로벌 리스크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을 1998년부터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도 출판된 ‘우리 대 그들’ ‘리더가 사라진 세계’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의 저서에서 세계 경제·정치 정세를 통섭적으로 예측해왔다. 미국 등 주요 7국(G7)의 리더십과 영향력이 줄었다는 ‘G-제로 이론’을 창안했다. 한 국가의 경제 개방성과 안정성의 연관성를 보여주는 브레머의 ‘J커브’ 이론은 월스트리트의 투자 분석틀로 자리 잡았다. 스탠퍼드대·뉴욕대·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냈다. 부친은 한국전 참전 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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