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서남북] 22만 소도시 마인츠에 가보라

최만섭 2021. 12. 28. 05:07

 

[동서남북] 22만 소도시 마인츠에 가보라

獨바이오엔테크 백신 대박… 빚 갚고 돈방석 앉은 도시
선심성 예산 집행 유혹 딛고 “기업유치·미래세대 투자”

입력 2021.12.28 03:00
 
 
 
 
 
독일 마인츠에 있는 바이오앤테크 본사 전경./게티이미지 코리아

독일의 관문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40~50분 거리에 있는 인구 22만 소도시 마인츠는 요즘 ‘로또 당첨’ 분위기다. 독일에서 부채 상위 20대 도시에 꼽힐 만큼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이 도시가 내년까지 상환해야 할 6억3400만유로(약 8500억원)의 단기 부채를 한 번에 갚고도 남을 만큼 세수가 넘쳐 용처를 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마인츠가 돈더미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할 정도다.

마인츠에 횡재를 안긴 건 이곳에 본사를 둔 백신 개발사 바이오엔테크(bioNtech)다. 미 화이자와 손잡고 인류 첫 mRNA 방식의 코로나 백신을 만든 주역이다. 2019년까지 적자를 못 면했던 이 회사는 백신으로 대박을 내면서 올해 순이익 100억유로(약 13조4000억원)의 돈방석에 앉았다. 지자체에 내는 법인세금도 덩달아 급증하면서 마인츠의 법인 세수가 작년보다 6배 가까이 뛴 것이다.

긴급한 사업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했던 마인츠는 내년까지 흑자 재정을 예약한 상태다. 2008년 창업했지만 정작 대부분의 마인츠 시민은 코로나 사태 전까지는 이 회사의 이름조차 몰랐다고 한다. 한적한 소도시의 작은 벤처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성공 스토리 뒤에는 그러나 우리가 배울 만한 점이 적잖다.

우선 바이오엔테크는 이민자들의 ‘저먼 드림(German Dream)’을 상징한다. 창업자 우구어 자힌(56)은 부모를 따라 이주한 터키계 이민 1.5세대다. 1965년생인 그는 1969년 자동차 공장에 취업한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왔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가 총리이던 시절 네 살이었던 자힌은 동독 출신 메르켈이 총리이던 시대 꽃을 피운 것이다.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독일의 이민 정책이 반세기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된 덕분이다.

 

자힌은 매일 산악자전거로 출퇴근하고 휴일에는 네이처·사이언스 같은 저널에 실린 논문을 읽는 게 유일한 취미다. 술은 입에도 안 댄다. 그러나 백면서생 같은 그의 뒤엔 단기 이익을 바라지 않고 장기 투자를 해준 슈트륑만(Struengmann) 형제라는 뚝심 있는 투자자가 있었다. 독일 바이오제약 산업의 경우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 캐피털의 투자 규모는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그 속에도 안목 있는 투자자와 벤처 캐피털이 있었다.

횡재를 대하는 마인츠시 정부의 마인드도 놀랍다. 마인츠도 코로나 피해가 컸고, 늘어난 세수를 선심성 예산으로 돌릴 수 있었다. 실제 의회에서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다. 하지만 미하엘 이블링(Michael Ebling) 시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바이오테크 허브를 만들겠다”며 포퓰리즘과 선을 그었다. 그는 기업 세율을 낮추겠다고도 선언했다. 바이오엔테크가 만든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기업들을 한 곳이라도 더 유치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산업 기반을 갖추겠다는 의지였다.

돈 뿌리기에 급급한 지금의 한국 대선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마인츠로 날아가 그런 현장을 직접 보고 오라 하고 싶다. ‘관광’ 논란을 달고 다녔던 전임자의 해외 순방과 달리, 그런 순방이라면 국민도 욕하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같은 난제가 즐비한 우리로선 이민자도 차별받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든 정책, 호흡 긴 투자자들, 한눈팔지 않고 연구⋅개발에 몰두한 과학자, 미래를 위한 투자를 우선시하는 지자체의 결단이 조화를 이룬 그들의 지혜가 절실하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포퓰리즘을 딛고 진짜 국가 지도자로 거듭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현장은 곳곳에 있다. 일부러라도 그런 곳을 찾아가 배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