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아테네에선 종전 선언이 지옥문을 열었다
전제정 스파르타, 민주정 아테네
둘이 맺은 종전조약 7년만에 깨져
전쟁서 진 아테네인 대량 학살
‘종전’ 목표는 우리의 번영이어야
미국 공화당 소속 영 김 하원의원 등 35명이 최근 북한 비핵화 없는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공동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그런데 어쩐지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만 하면 종전 선언을 해줄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려 찜찜했다. 종전 선언은 평화 구축과 한 쌍이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적·물적 교류에도 나서야 한다. 서울 시민이 자가용 타고 자유롭게 북한을 오가고, 우리 영화나 K팝을 북한 주민이 마음대로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의 두 당사자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맺은 칼리아스 강화는 종전 선언의 목표를 훌륭히 달성했다. 교역뿐 아니라 인적 교류도 활발해져서 그리스 장수가 페르시아 궁정의 정치 고문으로 초빙되기까지 했다. 칼리아스 강화는 훗날 알렉산더가 동방 원정에 나설 때까지 100년 넘게 유지됐다. 그런데 칼리아스 방식의 종전은 그리스 민족의 동족상잔이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선 통하지 않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 도시는 “향후 50년간 서로 칼을 겨누지 말자”며 니키아스 강화를 맺었다. 그런데 고작 7년 만에 깨졌다. 이민족과는 싸우지 말자는 약속을 한 세기 넘게 지켜 놓고, 정작 피를 나눈 동포 간 약속은 10년도 못 지켰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알맹이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아테네는 민주정을 기반으로 주변국들과 교류해온 개방형 도시국가다. 반면 스파르타는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장악한 군국주의 체제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알맹이 없이 갈등만 봉합했던 게 패착이었다.
남북한 사이에도 이런 차이가 엄존한다. 김정은 왕조가 이달로 만 10년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근 호는 “북한이 김정은 시대 들어 더욱 북한스러워졌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더 멀어졌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그런 북한과 종전 선언으로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자고 한다. 하지만 남북의 체제 차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종전 선언은 북한 비핵화에 성공한다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파탄 난 일국양제(一國兩制)도 핏줄이나 언어·역사를 공유하면서 다른 체제로 갈려 공존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다.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저서 ‘포스트워(POSTWAR)’에서 민족 내부에 체제가 다른 두 집단이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로 동·서독 사례를 든다. 주트는 1950년대 말 동독 주재 소련 대사의 말을 빌려 ‘베를린에 사회주의 세계와 자본주의 세계를 연결하는 개방되고 통제되지 않은 경계가 존재함으로써 동독 주민들이 두 세계를 비교하게 되었고 이는 동독에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종전 선언 이후 남북 교류가 시작되면 휴전선 북쪽에서도 같은 현상이 빚어질 것이다. K팝만 들어도 공개 처형을 자행하는 김정은은 이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고 철저히 탄압할 게 뻔하다.
자유로운 민주 국가 대한민국과 전체주의 왕조 국가 북한이 종전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공존한다는 생각은 꿈에 불과하다. 한반도는 결국 어느 체제로든 통일될 것이다. 다만 통일 대한민국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처럼 추락해선 안 된다. 전쟁에 승리한 스파르타는 아테네 민주정을 파괴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정 지지자 1500명이 학살당했다. 그걸 본 수많은 시민이 베트남 보트피플처럼 아테네를 탈출했다. 아테네는 갈망하던 종전을 얻었지만, 대신 1등 민주국가라는 자부심을 잃었다. 종전과 평화 공존은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러나 아테네가 맞은 종전과 평화는 그런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었다. 종전 선언이든 평화 공존이든 통일이든 그 목표는 지난 70년 우리가 긍지를 갖고 발전시켜 온 대한민국의 번영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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