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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정장 ‘전투복’은 안녕… 스커트가 돌아온다

최만섭 2021. 12. 8. 04:42

바지 정장 ‘전투복’은 안녕… 스커트가 돌아온다

새로운 ‘파워 슈트’ 치마 정장

 

입력 2021.12.08 03:00
 
 
 
 
 

여성들의 전투복(직장인들의 교복)으로 군림하던 바지 정장이 드디어 왕좌에서 내려올 때가 된 걸까. 1970년대 바지 정장은 ‘파워 슈트’라는 명칭까지 붙으며 여성의 높아진 사회 진출을 자축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를 가장 지루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의상으로 꼽히는 ‘치마 정장’에 내 줘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 중 하나. 지난 7월 백악관에 초청된 미국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의상이다. MZ세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18세의 그녀는 청년층 백신 접종을 장려하는 영상을 촬영하고 기자회견장에도 깜짝 등장했다. 평소 화려한 프린트 바지나 속옷 같은 의류를 즐기던 그녀의 선택은 이날은 조금 달랐다. 샤넬이 1995년 선보였던 짧은 샤넬 투피스 정장을 입고 나온 것. 그동안 정가(政街)에서 여성의 향상된 권위를 표출하는 이미지 중 하나였던 바지 대신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온 것이다. 미 예일대 등에서 ‘이기기 위한 옷 입기(Dress to win)’란 특강을 진행한 정치 패션학자 소냐 가반카르는 뉴욕타임스에 “남성 정장의 여성화된 버전인 바지 정장이 여성의 향상된 권력을 상징한 건 오래된 이야기”라면서 “꽃무늬가 있는 옷이나 짧은 치마가 ‘소녀 같다’로 치부되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①미국 백악관에 초청된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왼쪽)가 1995년 샤넬 투피스 정장 차림으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함께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②원피스 겸 아우터인 프랑스 디올의 2022 봄여름 패션쇼 의상. ③이탈리아 미우미우는 2022 봄여름 패션으로 골반에 걸치는 초미니 의상을 선보였다. /미 백악관·디올·미우미우

1920년대 패션 사전에 등장한 ‘투피스 세트’라는 말은 여성적이면서도 어느덧 가장 지루한 옷 중 하나로 꼽혀왔다. 하지만 로드리고를 필두로 치마 정장의 복귀는 그동안 ‘파워슈트’로 군림했던 바지 정장에서 탈피하는 계기로도 읽힌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바지 정장이 지니던 ‘권력과 투쟁’의 이미지가 희석됐다는 것이다. 미 연방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다채로운 마스크 패션이 오히려 빛났다.

 

치마 정장은 ‘클래식’해 보이긴 하지만 다채롭지 못하고 여성성을 강요받는다는 인식이 단점으로 꼽혀왔다. 마치 과거 약혼식 예복 같은 느낌. 하지만 최근의 치마 정장은 다르다. 미니스커트부터 다양한 재킷, 셔츠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부터 파티복까지 다양하게 변주한다. 내년 봄여름 패션쇼무대에서 디올을 비롯해 샤넬, 프라다, 미우미우, 베르사체, 막스마라 등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는 로라이즈(low-rise·골반에 걸치는 듯하게 밑위 길이가 짧은) 스커트 정장을 대거 내 놓았다. 글로벌 패션쇼핑 플랫폼 리스트(Lyst)의 미니스커트 검색량은 2분기 대비 3분기에 76% 증가했다. 새 옷을 살 여유가 있다면 고가의 브랜드 옷을 입고 즐기면 되고, 알뜰하게 고쳐 입거나 수선해도 좋다. 미 뉴욕타임스는 로드리고의 스타일리스트를 통해 “정치적 논쟁을 부를 수 있는 빨간색, 파란색을 피했고 재활용과 중고 제품이 지속 가능성을 위한 윤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했다”고 전했다.

패션계 미니(mini)의 등장은 일종의 자신감과 낙관주의의 상징이다. 1960년대 미니스커트를 발명한 공로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디자이너 매리 퀀트는 “일종의 ‘나를 봐’라는 표어였고 삶에 대한 활력과 기백을 불어넣는 장치였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미니가 주는 흥겨운 에너지는 최악의 유행병이 끝나길 바라는 믿음의 부적(talisman)이기도 하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