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베토벤 ‘환희의 송가’ 연말에 더 사랑받는 까닭은

최만섭 2021. 11. 30. 05:04

[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베토벤 ‘환희의 송가’ 연말에 더 사랑받는 까닭은

베토벤 ‘합창 교향곡’ 4악장… 올해도 서울시향·부천필 등 공연 이어져
2차 대전 중 파리, 장벽 무너진 해 베를린서도 “인류는 한 형제” 메시지
선율 19번 고치며 베토벤이 쓴 가사처럼 “더 환희에 찬 노래”가 필요해

 

입력 2021.11.30 03:00
 
연말이 되면 자주 연주되는 클래식 명곡이 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다. ‘합창 교향곡’이라 불리는 이 교향곡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바탕을 둔 4악장이 유명하다. 형제애를 강조한 실러의 시와 간결하면서도 힘찬 베토벤의 음악이 어우러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1824년 초연 당시 관객들의 폭발적인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고, 초연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요 행사나 송년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올해 12월에도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 부천 필하모닉, 수원시향 등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베토벤 합창 교향곡 공연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정작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되는 작년 연말에는 코로나로 인해 베토벤 합창 교향곡 공연이 대부분 취소되었다. 서울시향의 합창 교향곡 공연이 열리기는 했으나 악기 편성이 축소된 형태의 온라인 콘서트로 진행되었고, 연주자들뿐 아니라 성악가들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합창 교향곡을 연주해 화제가 되었다. 또 작년 봄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베토벤 합창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온라인을 통해 함께 연주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자가 격리 중이던 로테르담 필의 단원들이 각자 자택에서 ‘환희의 송가’ 중 자신이 연주할 부분을 연주해 영상을 만들고 여기에 합창을 더해 ‘환희의 송가’를 완성한 것이다. 이 영상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만큼 여러 이벤트에 자주 활용된 클래식 명곡을 찾아보기 힘들다. 음악학자 에스테반 부흐는 그의 저서 ‘베토벤의 제9번’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가리켜 “음악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성을 상징하는 매체로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 쓰기도 했다. 실제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세계 역사의 전환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그해 12월 25일,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베를린에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지휘해 동·서독의 화합을 축하했다. ‘환희의 송가’가 정치적으로 오용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히틀러의 나치당은 6000명의 베를린 중⋅고등학생들을 동원하여 올림픽 개막식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노래하게 하여 나치당을 평화적인 이미지로 치장했지만 이후 나치는 “인류는 한 형제”라는 ‘환희의 송가’ 내용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줬다. 흥미롭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적국이었던 프랑스인들에게도 베토벤의 음악은 자유의 이상이 표현된 음악으로 사랑받았다. 전쟁 중이던 1943년에도 독일 지휘자 아벤트로트는 파리의 샤요 궁전에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합창 교향곡 연주회를 열었다. 이처럼 국가와 이념의 장벽을 넘어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1985년부터는 유럽연합의 공식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환희의 송가’ 선율은 한번 들으면 금방 각인될 정도로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베토벤은 간단해 보이는 이 선율을 작곡하기 위해 무려 열아홉 단계의 수정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환희의 송가’에 담긴 형제애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합창 교향곡 4악장의 도입부를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로 가득 채웠다. 그 때문에 이 혼란스러운 음악이 사라진 후 들려오는 환희의 송가는 더욱 감동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베토벤은 환희의 송가가 노래되기에 앞서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첨가해 음악적인 논리를 강조하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베이스 독창자의 입을 통해 베토벤은 이렇게 외친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닙니다! 좀 더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

약 200년 전 베토벤이 그의 교향곡 속에 적은 이 가사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하다.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로 인해 사회 곳곳이 시끄러운 소리들로 가득하고 그럴수록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올해 베토벤 합창 교향곡 연주회의 감동은 전보다 몇 배 더 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