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아트 인사이트] 실패를 새 예술로… 마지막에 한 발 더 내디딘 그들, 승자가 되었다

최만섭 2021. 11. 24. 04:55

[아트 인사이트] 실패를 새 예술로… 마지막에 한 발 더 내디딘 그들, 승자가 되었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입력 2021.11.24 03:00
 
 
 

 

 
 

누구나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할 만한 프린스턴 대학의 한 심리학과 교수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실패 이력서’를 올렸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논문 탈락, 교수 탈락, 수많은 실패 끝에 간신히 그 정도의 이력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이 실패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벤처 사업가, 취업 준비생 등, 그들은 마치 바둑 기사들이 대국을 복기하듯 패인을 분석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해나가는 효과를 거두었다. 예술가의 삶도 다르지 않다. 브루넬레스키가 대표적이다.

1401년 피렌체 세례당 문 조각가 경쟁에서 패한 브루넬레스키(가운데 아래)는 이후 17년간 야인으로 떠돌며 실패를 복기하고 로마 건축을 깊이 연구해 피렌체 대성당(왼쪽 큰 사진) 돔 설계 경쟁에서 승리했다. 반면 명암과 구도를 통해 인물들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걸작‘야경’(1642·오른쪽 큰 그림)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탓에 초상화 주문이 끊겨 생활고를 겪었던 렘브란트는 늙어가는 자화상(가운데 위)을 끊임없이 그렸고, 대가로 재평가받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들처럼 자신의‘실패 이력서’를 새로운 예술적 열정의 밑불로 삼았다. /위키피디아

그는 1401년 세계 최초의 미술 대회라 할 만한 경합에서 탈락했다. 피렌체 세례당의 문을 장식할 조각가를 뽑는 대회였다. 성경 속 ‘이삭의 희생’ 이야기를 주제로 최종 후보자 두 명이 경쟁했고 기베르티가 선발되었다. 경쟁자의 성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실패한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났다. 무려 17년의 세월을 떠돈 후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을 때, 피렌체에서는 새로운 공모가 열렸다. 피렌체 대성당의 천장 돔을 세우는 건축 설계 경쟁. 이번에도 경쟁자는 기베르티였다. 그동안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기베르티가 유리할 거라고들 했지만, 최종 승자는 브루넬레스키였다. 야인으로 떠돌며 실패의 원인을 복기하고 로마의 건축을 샅샅이 방문하며 내공을 키워온 덕분이다. 피렌체의 상징이 된 대성당의 돔은 실패한 브루넬레스키의 패자부활전이나 다름없다.

 

렘브란트는 브루넬레스키의 반대 경우다. 그는 젊어서 승승장구했다. 주문이 끊이지 않아 넓은 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살았다. 그러나 민병대들의 단체 초상화라 할 만한 ‘야경’(1642)을 그린 후 인기가 뚝 떨어졌다. 관습대로 작품 속 인물이 골고루 보이도록 나열하여 그리지 않고 어떤 사람은 크고 어떤 사람은 작게, 한쪽은 밝고 다른 쪽은 어둡게 역동적으로 그린 때문이다. 고작 36세였는데 초상화 주문이 끊겼다. 아내도 죽고, 재산도 모두 잃었다. 모든 재산을 경매에 처분하고 초라하고 가난한 노인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점점 늙고 초라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지켜보아야 했을 텐데, 렘브란트는 기꺼이 그 시간을 견뎠다. 그의 인생에 패자부활전은 없었다. 세상을 떠났고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실패 이력서와도 같았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가 얼마나 용기 있는 작가인지를 말해주는 증명이 되었다. 그는 오늘날 네덜란드의 대가로 부활했다.

현대 예술가들의 실패는 더욱 흥미롭다. 사후의 평가를 기다릴 틈이 없는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1970년, 39세의 미국 화가 존 발데사리는 그동안 그린 작품이 모두 쓰레기라는 생각에 불태워버리기로 결심한다. 젊은 시절의 작품을 간직해 두면 나중에 성장의 뿌리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터인데, 발데사리는 과감하게 모든 작품을 불태워버린다. 렘브란트가 작품 주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한 때와 비슷한 나이다. 불태워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서 아예 거대한 화장장을 예약하여 모든 작품을 늘어놓고 불태우는 ‘화장(Cremation)’ 퍼포먼스를 벌였다. 다 태운 뒤 재를 긁어모아 뭉쳐 놓았는데 얼핏 보면 초코 쿠키처럼 보인다.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작품에 사망을 선고하는 묘비도 세웠다. 실패 이력서라 할 만한 자료집도 제작했다. 이후 작가가 심기일전하여 만든 작품은 ‘더 이상 지루한 미술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종이 위에 끊임없이 이 문장을 반복하여 적는 비디오와 그 결과물이 그의 새로운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이 작품만 만들었다면, 아마 의미의 깊이가 덜했을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만든 작품이기에 유머가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여겨진다. 이후 발데사리는 개념 미술의 대부로 자리 잡는다.

 

위안을 주는 또 다른 스토리의 주인공은 스페인의 한 할머니다. 성당의 작품이 손상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덧칠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성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원숭이를 닮은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되고 만 것이다. 고의로 손상시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벌이나 보상 책임은 면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그 이후로 일 년 동안 성당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한데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수많은 관광객이 마을을 찾기 시작했고 성당은 입장료 수익은 물론 방문객들의 기부금까지 받게 되었다. 할머니도 수익금의 일부를 받게 되어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휠체어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최근 크게 흥행한 오징어 게임도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성했지만 영화화하는 데 계속 실패하다 마침내 성공했다고 한다. 작품 속 배우 중에도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 닦다 비로소 조명을 받은 이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실패는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은 성공보다 실패에 열광한다.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실패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과거의 미덕이었다면, 이젠 어떻게든 빨리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해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인식이 성숙했기 때문에?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빨리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이 다 만들어질 때쯤이면 이미 세상이 달라져 있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다행인 건 계획대로 잘된 것들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실패의 연속인 인생, 변수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으려, 올해의 마지막 달에는 실패 이력서를 한번 써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