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클래식 따라잡기] 발레 '호두까기 인형' 원작자… 에드거 앨런 포도 영향 받았죠

최만섭 2021. 11. 15. 05:20

[클래식 따라잡기] 발레 '호두까기 인형' 원작자… 에드거 앨런 포도 영향 받았죠

입력 : 2021.11.15 03:30

E. T. A. 호프만

 E.T.A. 호프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의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해마다 12월이면 관객들을 찾아오는 '호두까기 인형'은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으로 유명하지요. 차이콥스키는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선율의 작품을 썼을까요? 바로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 작곡가이며 화가이기도 했던 E.T.A. 호프만(1776-1822)의 동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예술에서 모방 없는 창조는 없다고 해요. 어느 분야든 앞서간 예술가들과 동시대 예술가들 간의 교류가 위대한 작품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교류는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비슷하지요. 미술 작품이 음악으로 바뀌기도 하고, 음악에서 받은 영감으로 안무가들이 위대한 무용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호프만의 문학작품은 발레뿐 아니라 오페라, 피아노곡 등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변신하며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낮에는 법관, 밤에는 문학가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호프만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법관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1806년 법관을 그만두고 지휘자, 비평가 등으로 일하면서 음악에 몰두했어요. 그러곤 1814년 다시 법관으로 복직한 뒤 46세로 베를린에서 사망하기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놀라운 창작력으로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 것이지요.

그가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든 환상적인 소설들은 후대 많은 작가에게 영향을 줬어요. 호프만 작품에 나타나는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으로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에게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19세기 말 초연된 '호두까기 인형'

호프만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예술 작품 중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호두까기 인형'일 거예요. 호프만이 1816년에 발표한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이 원작입니다. 이 동화를 프랑스 극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각색했고, 안무가 마리우스 페티파가 2막의 발레로 구성했지요. 여기에 차이콥스키가 곡을 만든 것입니다. 이 발레 공연은 1882년 12월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처음 선보였지요.

작품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어린 소녀 클라라는 마법사 드로셀마이어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받습니다. 클라라는 선물받은 인형을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호두까기 인형은 쥐떼들과 전투를 벌입니다. 클라라의 도움으로 싸움에서 승리한 호두까기 인형은 멋진 왕자님으로 변신해 클라라를 마법의 성과 과자 왕국으로 안내하죠.

2막은 과자 왕국에서 벌어지는 파티가 주된 이야기예요. 왕자는 여왕에게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클라라를 소개하고, 여왕은 클라라를 위한 성대한 파티를 열어요. 스페인, 아라비아, 중국, 러시아 등의 이국적 춤과 음악이 등장하는 디베르티스망(발레에서 줄거리와 상관없이 하나의 구경 거리로 삽입하는 춤들)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에요. 특히 사탕 요정의 시녀들이 등장하는 '꽃의 왈츠'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아함과 화려함이 잘 어우러진 걸작입니다.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독일 태생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1819~1880)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는 호프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오펜바흐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881년 2월에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공연하면서 대성공을 거뒀어요.

'호프만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딸린 3막짜리 오페라로, 각 막은 호프만의 단편소설 '모래 사나이' '잃어버린 거울의 형상' '고문관 크레스펠'을 토대로 합니다.

작품에서 쉽게 사랑에 빠지는 몽상가 시인으로 등장하는 호프만은 오페라의 프리마돈나인 스텔라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는 프롤로그에서 술에 잔뜩 취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애담 세 가지를 들려주겠다고 하죠. 1막의 배경은 과학자 스팔란차니의 무도회장인데, 여기서 호프만은 스팔란차니가 만든 인형 올랭피아에게 반해 열렬히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스팔란차니를 질투하는 코펠리우스가 나타나 올랭피아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호프만은 사랑에 실패하죠.

2막에서 호프만은 베네치아 거리의 여인 쥘리에타와 사랑을 속삭입니다. 쥘리에타는 악령 다페르투토의 지시에 의해 호프만을 유혹하고, 사랑에 빠진 호프만은 쥘리에타의 애인이었던 슐레밀을 칼로 찌릅니다. 하지만 호프만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 쥘리에타는 곤돌라를 타고 떠나버리죠. 3막의 여주인공은 병에 걸린 안토니아입니다. 아버지 크레스펠은 그녀의 건강을 염려해 노래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악한 마법사이자 의사인 미라클이 나타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영을 보여주며 노래하라고 유혹해요.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호프만의 간청도 듣지 못한 채 결국 노래를 부르다 숨을 거둡니다.

에필로그에선 여전히 술에 취한 호프만 앞에 스텔라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그제야 그가 사랑했던 세 여인이 모두 스텔라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슈만 음악으로 재탄생한 소설 주인공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만든 피아노곡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16에는 호프만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 나타나 있습니다. 소설 '수컷 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에 나오는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예요. 슈만은 충동적이고 기복이 심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오케스트라 연주가인 크라이슬러의 성격에서 영감을 받아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지었다고 합니다. 크라이슬레리아나는 총 8곡으로 구성돼 있는데, 인물이 지닌 강렬한 성격은 3·5·7곡에, 서정적인 면모는 2·4·6곡에 담아 전체적인 작품이 변화무쌍해요. 슈만 역시 자기 내면에도 크라이슬러처럼 상반된 성격의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천재가 남긴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남깁니다. 호프만의 뛰어난 문학작품에서 탄생한 다른 걸작들 역시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호프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한 장면. /위키피디아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