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뒤에는 21세기 홍위병 ‘분노청년’이 있다
베이징서 박사 학위 딴 인류학자, 중국의 막무가내식 애국주의 탐구
입력 2021.03.27 03:00 | 수정 2021.03.27 03:00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김인희 지음|푸른역사|308쪽|1만7900원
21세기 홍위병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를 상대로 문화대혁명에 나설까. ‘분노청년’이라 불리는 21세기 중국 민족주의자들은 극단적 중국 중심 사고에 빠져 중국에 불리한 주장을 한다고 판단하면 좌표를 찍고 우르르 몰려가 난장을 친다. 이미 우리는 김치·한복·방탄소년단(BTS)·이효리·쯔위 사태 등에서 이들의 화력을 목격했다. ‘애국’이라는 광신에 빠진 이들에게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이들 뒤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 책에서 “분노청년을 이해하지 않고는 중국을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 민족주의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은 중국에서 현지 답사를 진행했다. 책은 마오쩌둥의 홍위병에서 시작해 21세기 분노청년으로 이어지는 막무가내 중국 애국주의의 연원을 추적한다.
◇”祖國이야말로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1970년대에 의로운 울분을 가진 청년이라는 의미로 등장했던 ‘분노청년’이란 표현은 1990년대부터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중국 중심주의 청년 집단을 뜻하는 표현이 됐다.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건국 71년 기념식이 열린 톈안먼 광장에서 아빠의 목말을 탄 소년이 양손에 오성홍기를 들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 댓글 테러 등을 일삼는 중국‘분노청년’은 어려서부터‘애국주의’에 세뇌돼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중국과 시진핑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21세기 홍위병이라는 것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들 분노청년은 본질적으로 악성 팬덤에 가깝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국가를 사랑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BTS 등을 따르는 한류 팬도 많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숭배와 혼동하지는 않는다. “국가보다 중요한 아이돌은 없고, 조국이야말로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다.” 이들은 숭배하는 대상은 결점이 없다 주장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상대를 훈계하고 매도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한다. 다른 국가 사이트 공격에 나설 때는 이를 ‘성전(聖戰)’이라고 부른다.
현재 주로 활동하는 분노청년은 2016년 이후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다. 2019년 연구에 따르면 대졸 이상 학력이 73%(석사 이상 37%)로 고학력이고, 남성이 71%로 다수다. 이들의 40%는 소득 하위 50%다. ‘인터넷을 통해 극단적인 분노를 표현하는 할 일 없는 도시 청년’이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상을 머리에 물 붓듯 주입하는 ‘관수법(灌水法)’을 통해 애국주의를 체득했다. 공산당이 중국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자본주의와 미국·일본을 왜 증오해야 하는지를 주입당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이들을 일종의 관제 ‘키보드 워리어’로 포섭했다. 당시 중국을 홍보하는 인터넷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웨이보(중국 트위터)를 통해 공청단의 지령을 받고 공격에 나선다.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 분노청년 뒤에는 ‘시황제’라 불리며 장기 집권의 길을 닦아둔 시진핑 국가주석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 주석은 2019년 ‘신시대 애국주의 교육 실시 강요’를 공지하고 “애국은 모든 인민의 의무이며 직무”라는 내용의 교육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벌이기로 했다. 마오쩌둥의 홍위병이 그랬듯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해 분노청년을 자신의 친위대로 삼으려 든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홍위병은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획했다. 홍위병과 분노청년은 중국 정권의 교육을 통해 특정한 사고를 주입받은 청년 집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상적 무기는 사회주의(홍위병)와 애국주의(분노청년)로 차이가 있지만 세뇌당한 대로 적을 찾아내고 감시하고 공격을 가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들의 사상적 무기는 애국주의고, 실천적 무기는 이모티콘이다. 분노청년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적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곧바로 적의를 품고 해당 국가를 모욕하고 각종 사이트를 공격한다.” 전세계를 혐오하는 일종의 중국판 ‘일베’라고 볼 수 있다.
/푸른역사 제공 마오쩌둥(가운데)과 '마오 주석 어록'을 들고 환호하는 홍위병들을 그린 그림. 홍위병과 그 21세기 판인 분노청년은 마치 '연예인 악성 팬덤'처럼 움직인다.
◇한국을 ‘문화 도둑’이라 생각하며 공격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분노청년들은 외국에 대한 공격을 14회 감행했다, 이 중 한국에 대한 공격이 5회로 가장 많았다.(일본에 대한 공격은 단 한 번뿐이었다.)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BTS의 밴플리트 상 수상 당시 ‘중국에 감사함을 표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왜 이들은 유독 한국을 표적으로 삼을까. 저자는 “이들은 ‘한국이 문화 도둑’이라고 여기고, 약소국이니 마음껏 분노를 표출해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한 분노청년의 글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만년 속국으로 미·중·일의 노예였다. 한국 문화는 잡탕으로 중심은 중국의 유학이고 후에 일본과 미국의 요소가 더해졌다. 한국인이 가장 숭배하는 민족 영웅인 명성황후는 위안스카이의 첩이었으며 일본 낭인에게 강간을 당하고 살해돼 나체로 불살라졌다.” 한 사람의 지적이 아니다. 저자는 “이 글에는 필자가 중국에 살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대부분 들어있다”고 했다. 분노청년은 ‘중국의 속국이며 문화적 세례를 받은 한국이 이제 와서는 중국문화를 훔쳐간다'며 분노한다.
/푸른역사 제공 2016년 중궈르바오왕에 실린 '기이한 애국'이라는 제목의 만평. "머리에 애국을 붓자 이성은 짐을 싸서 나가고, 애국만을 외치는 분노청년이 되었다."
깨어있는 중국 지식인은 분노청년에 대해 “머리에 애국을 붓자 이성은 짐을 싸서 나갔다” “병적 민족주의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분노청년이 스스로 폭주를 멈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양지호 기자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 사회정책부를 거쳐 다시 문화부에 왔습니다. 출판, 방송, 미디어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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