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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조직’에서 나온다...혁명을 빼앗다

최만섭 2020. 11. 22. 09:21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조직’에서 나온다...혁명을 빼앗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0.10.31 08:58

 

 

 

 

 

<“혁명위원회가 좋다!” 1967년 2월 마오쩌둥의 발언. 1958년 마오쩌둥은 “인민공사가 좋다!”는 한 마디로 전국에 인민공사를 설치했다. 상하이 1월 폭풍 이후 마오쩌둥은 “인민공사”를 거부하고 대신 “혁명위원회”를 설치한다./ 공공부문>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29회>

민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주권의 원칙을 밝힌 보편명제다. “생명의 근원은 물”이라는 말처럼 지당하지만, 공허한 언명이다. 현실정치에서 권력은 ‘조직’에서 나온다. 국가는 관료조직과 군경조직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반면 조직되지 못한 군중은 무기력하다. 근대의 입헌민주주의 이론가들이 ‘결사의 자유’를 중시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빼앗기면 개개인은 국가권력에 예속되고 만다. 결국 특정세력의 인신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다.

 

단체행동권 없는 중국의 노동자들

지금도 중국에선 크고 작은 노동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결사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현재 중국에선 “중화 전국 총공회(總工會)”만이 유일무이한 전국단위의 합법적 결사체다. 성(省), 시, 현, 마을 단위까지 위원회가 설치된 전국에 걸친 피라미드 구조의 조직인데, 이 역시 중국공산당에 종속돼 있다. 게다가 1982년 헌법 개정 이후 중국의 노동자들은 단체행동권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에 따라 프롤레타리아의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는 아이러니다.

1966년 11월 상하이의 노동자들은 사상 최초로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결사체를 만들었다. 지난 회에 이미 살펴봤던 ‘상하이 공인 혁명조반 총사령부(공총사)’가 그것이다. 이로써 문혁의 주도권은 홍위병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넘어갔는데, 조반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실제로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중국공산당 자체가 비밀결사로 출발했다. 중공중앙의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조직의 파괴력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 중국에선 작업장을 벗어나는 노동자의 결사가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1966년 8월 공포된 중공중앙 문화혁명 “16조”의 제14조는 “혁명을 견지하고 생산을 촉진하라!(抓革命 促生産)”를 명시했다. 문화혁명과 경제성장의 병진정책인데, 결국 노동자와 농민을 작업장에 묶어두는 효과를 발휘했다. 문혁의 광풍이 전국으로 확산됐지만, 노동자들이 쉽게 혁명에 동참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1966년 가을 상하이에 도착한 베이징 홍위병들이 노동자의 정치화를 촉발했다. 베이징 홍위병들을 통해서 상하이의 노동자들은 문혁의 기본 정신이 탈권(奪權, 권력의 탈취)이며, 그 최종 목표가 류샤오치와 덩샤오핑 등 당권파의 축출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규모 결사체의 조직은 위험천만이었다.

<“무산계급 조반파여 연합하라! 혁명조반 정신 만세!” 노동자들의 본격적인 혁명투쟁을 촉구하는 포스터/ 공공부분>

마오쩌둥, 노동자들을 문혁의 중심으로

상하이 공총사 지휘부는 우선 헌법에 명시된 ‘결사의 자유’를 검토했다. 총공사 주비(籌備) 위원회의 문건엔 헌법을 들춰 봤던 기록까지 보인다. 헌법과는 달리 중공정부는 결사의 자유를 허용한 전례가 없었다. 마오쩌둥은 노동자의 행동을 촉구하는 듯했지만, 확신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1966년 11월 9일 조직의 결성을 선포한 직후, 공총사는 제일 먼저 시정부에 합법성을 인정하라 요구했다. 상하이 시장이 완강히 거부하자 바로 다음 날 공총사는 기차를 탈취해 베이징을 향했고, 20분 후 중앙정부의 명령으로 기차가 멈춰서자 안팅역(安定驛)의 철로에 드러누워 교통방해의 시위를 이어갔던 것이다.

11월 14일, 마오쩌둥은 1954년 헌법에 명시된 “결사의 자유”를 들어서 상하이 공총사의 합법성을 인정했다. 최고영도자가 녹슨 칼집 속의 보검의 빼서 근로대중에 전달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마오는 1966년 7월 “조반유리”라는 한 마디로 공작조에 저항하는 홍위병 집단을 문혁의 주체로 일으켜 세웠다. 이제 그는 상하이 공총사를 합법화함으로써 그는 노동자들을 문혁의 중심무대에 올렸다. 반면 상하이 시위원회는 순식간에 반동조직의 낙인을 받고 파멸의 위기에 직면했다.

 

상하이 1월 폭풍, 권력 탈취의 드라마

이후 50여일 간 상하이 공총사는 시정부를 무너뜨리고 혁명정부를 수립하는 대담한 탈권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1967년 1월 4-5일 양일에 거쳐 노동자들은 상하이 주요언론사를 장악했다. 1월 6일엔 상하이 시장과 부시장을 위시한 상하이 시위원회 수백 명의 간부들을 불러내서 단죄하는 가혹한 인민재판을 이어갔다. 혁명의 광풍을 타고 상하이엔 32개의 조반파 조직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수천 명의 간부들, 지식인들, 전문가들을 끌고 나와 도시 곳곳으로 끌고 다니는 가혹한 비투(批鬪)를 이어갔다.

<“열렬히 환영! 중공중앙,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중앙문혁소조에서 상해시의 각 혁명조반 단체에 축전을 보내왔다!” 1월 12일 상하이 인민광장의 집회/ 공공부문>

인민일보를 위시한 중앙의 언론은 일제히 상하이의 탈권을 칭송했다. 1월 11일엔 중공중앙위원회,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중앙문혁소조가 상하이 공총사를 위시한 32개의 혁명조직에 축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수십만이 운집한 상하이 인민광장엔 시장과 부시장을 끌려 나와 집단모욕을 당했다. 시민들은 트럭 뒤에 무릎을 꿇린 채로 이리저리 실려 다니는 시장과 부시장의 비참한 몰골을 목도했다.

1월 15일부터 사흘 간, 상하이 시정부의 49개 기관의 권력은 동시다발적으로 탈취됐다. 상하이 전역 건물벽마다 “탈권!”의 구호가 나붙었다. 마침내 2월 5일 노동자가 직접 세운 혁명정부 “상하이 인민공사”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른바 “상하이 1월 폭풍(혹은 1월 혁명)”의 스펙터클이었다.

 

인민공사를 혁명위원회로 바꿔 군이 장악

중공의 기관지들은 한 목소리로 중국에 파리코뮌이 부활했다고 칭송했다. 장춘차오는 "상하이 인민공사'의 성립이 파리코뮌을 넘어 10월 혁명에 비견되는 사건이라고까지 칭송했다. 진정 상하이의 “1월 폭풍”은 문혁의 향방을 뒤바꾸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곧바로 혁명의 진동이 베이징, 헤룽장성, 산둥성, 구이저우성, 산시성 등지로 확산됐다.

<1967년 2월 23일, “상하이 인민위원회”는 공식적으로 “상하이시 혁명위원회”로 개칭된다./ 공공부문>

이제 문혁은 노동자의 궐기에 의한 지방권력의 교체를 의미했다. 코뮌의 번역어인 “인민공사”라는 낱말 속에는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 자율성 및 독립성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1958년 마오는 “대약진 총노선”의 기본단위로 노동령의 총동원을 위해 “인민공사”를 설치한 바 있었다. 대약진의 처참한 실패 때문이었을까? “상하이 인민공사 출범” 직후부터 중공의 기관지들은 “인민공사” 대신 “혁명위원회”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67년 2월 12일 마오는 장춘차오를 불러서 “상하이 인민공사”에서 “인민공사”의 명칭을 버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2월 20일 구이저우성에서 또 한 번 탈권이 일어나자 마오는 “혁명위원회”란 명칭을 제안했다. 마오가 인민공사라는 단어 자체를 꺼렸음이 확실하다.

 

이후 1968년 9월까지 전국의 각성 단위에 “혁명위원회”가 들어섰는데, “인민공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이었다. 혁명위원회는 인민해방군, 혁명 간부 및 혁명 군중의 “삼결합(三結合)”이었다. 주도권은 물론 인민해방군에 있었다. 결사의 자유를 외치며 일어선 노동자들이 세운 혁명정부가 지방의 군부에 하이재킹 당한 형국이었다. 그 과정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1967년 군부의 개입은 대규모의 무장투쟁과 대량학살의 악순환을 몰고 왔다. <계속>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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