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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 상대는 악...공산주의가 1억명 학살한 수법

최만섭 2020. 11. 22. 09:12

우리는 선, 상대는 악...공산주의가 1억명 학살한 수법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0.11.14 09:00

 

 

 

 

 

<”마오쩌둥 사상의 위대한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철저하게 자산계급 사령부를 깨부수자!” 1967년 8월 베이징 광업학원의 조반파 병단에서 제작한 포스터인데, 왼쪽에는 “문투(말과 글로 투쟁)를 하자! 무투(무력투쟁)를 하지 말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1967년 중국 전역에 무투의 광풍이 몰아닥칠 때, 베이징의 조반파들 사이엔 평화 시위를 주장한 세력도 있었음을 방증.>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31회> : 20세기 공산주의 정권, 1억명 학살

20세기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대략 1억 명이 학살됐다. 희생자의 수치를 살펴보면, 중국 6500만, 소련 2000만, 북한 200만, 캄보디아 200만, 아프리카 170만, 아프가니스탄 150만, 베트남 100만, 동구 100만, 남미 15만 명이다. 프랑스 지식계의 기념비적 저작 ‘공산주의 흑서(The Black Book of Communism)'에 제시된 수치다. 인간평등과 노동해방을 부르짖는 공산주의 정권들이 대체 왜 그토록 잔혹한 대량학살을 자행했을까?

 

1978년 12월 중공중앙에서 폭로된 정부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문화혁명 10년 동안 1억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 중 중국의 농촌에서는 대략 520여만 명이 “비투(批鬪)”를 당했고, 그 중 120만 명이 비자연적(非自然的) 사망에 이르렀다. 1960년대 낙후된 중국의 농촌사회에서 과연 누가, 왜, 어떻게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나?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공산주의 흑서”의 영역본>

우리 편 아니면 적...적의 제거가 선의 실현

공산정권의 대량학살은 엉터리 삼단논법(syllogism) 하에서 자행됐다.

1. 대전제: 공산주의는 (인류를 구원하는) 절대선이다.

2. 소전제: 반대세력은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절대악이다.

3. 결론: 절대선(=공산주의)을 위해 절대악(=반대세력)은 제거돼야만 한다.

따져 보면, 대전제 자체가 경험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유사(類似) 종교적 믿음일 뿐이다. 공산정권이 사용한 대량학살의 삼단논법은 결국 그릇된 믿음에서 당위를 도출하는 엉터리 논증이다. ‘계급학살(classicide)’의 합리화일 뿐이다.

 

반대세력의 이름은 반혁명분자, 부르주아지, 주자파, 제국주의자, 수정주의자, 수구세력, 우경분자, 친일파, 친미파, 극우파 등등이다. 반대세력이 뭐라 불리든, 대량학살의 논리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 편이 아니면 바로 적”이라 낙인찍고, “적의 제거는 곧 선의 실현”이라 미화하는 소아병적 억지주장이다. ‘비아즉적(非我卽敵), 살적즉선(殺敵卽善)!’

“마오쩌둥 사상”이 바로 “공산주의는 절대선이다”를 대전제로 삼는다. 그 대전제 위에서 마오는 반대세력을 절대악으로 몰고 갔다. 1950년대부터 마오쩌둥은 전체인구의 95%는 선량한 인민이지만 5%는 반혁명분자들이라 예단했다. 5%의 반혁명분자들 때문에 공산유토피아의 실현이 지체된다는 발상이었다. 8억 인구 5%, 곧 4000만 명만 제거하면 중국의 땅에 공산유토피아가 도래할 수 있나?

 

1950년대 내내 중공정부는 반대세력을 숙청했지만, 그 결과는 대기근의 참상이었다. 반대세력의 제거는 공산유토피아가 아니라 공포정의 디스토피아로 귀결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문혁의 현실에서 대량학살의 삼단논법은 상상 이상의 강력한 효력을 발휘했다.

<”마오쩌둥 사상 만세!” “마오쩌둥 사상이 전 지구를 널리 비춘다!” 문혁 시기 마오쩌둥 사상은 인류를 구제하는 “절대선”으로 칭송됐다. 마오쩌둥 사상의 절대화는 반대세력 모두를 제거해야 마땅한 절대악으로 만들었다.>

후난성 다오현의 킬링필드: 66일간 조직적인 대학살

후난(湖南)성 남부 끝 광둥성과 광시성 접경에 다오현(道縣)이 있다, 북송 도학(道學)의 태두 주돈이(周敦頤)를 배출한 2000년 역사의 문명 고현(古縣)이다. 1967년 8월 13일에서 10월 17일까지 다오현에선 66일 간 대규모의 집단학살이 자행됐다.

1984년 5월부터 1986년 말까지 400여명의 조사단이 2년 반에 걸쳐 극비리에 심층조사로 밝힌 바에 의하면, 1967년 다오현에선 4193명이 학살당했고, 326명이 자살에 내몰렸다. 117호의 민가는 철저히 파괴됐다. 곧이어 인근의 10개 도시와 현에서도 4000여명이 도살되었다. 모두 90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조직적인 대학살이었다. 다오현 인구의 1.2%가 희생됐는데, 70대 노인들과 갓 태어난 영유아도 섞여 있었다.

정부 공식의 명칭은 “다오현 문혁살인사건”이다. 민간에서는 난살풍(亂殺風) 혹은 살인풍(殺人風)이라 부른다. 난살이란 잔인하고 어지러운 학살을 의미한다. 주로 총, 칼, 몽둥이, 폭탄 등을 써서 대량학살을 저질렀지만, 물에 빠뜨리거나 바위틈에 내던지거나 생매장하거나 불태워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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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90%는 흑오류(黑五類)과 그 가족들이었다. 흑오류란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파괴분자, 우파 등을 이른다. 이미 건국 이전 토지개혁운동 때부터 지주와 부농은 전 재산을 몰수당한 채 사실상 빈농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정치적 박해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천대에 시달리는 계급천민이었다. 1967년 여름, 건국 후 18년이 됐는데, 다시금 흑오류는 조직적 대량학살의 희생자가 돼야 했다. 문화혁명이 ‘계급학살’로 귀결되는 참혹한 모멘트였다.

<”절대로 계급투쟁을 잊지말자!” 중국의 한 농촌 마을 건물 벽에 적힌 문혁 시절의 구호>

관료 행정 마비...조직들 간 무장투쟁

1967년 1월 상하이 조반파 노동자들이 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인민공사를 창건했다. 상하이 조반파의 탈권 투쟁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다. 흥분한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위시한 전국의 조반파들을 향해 탈권을 촉구했다. 상하이의 투쟁에 자극받은 군중은 다양한 조직을 구성해 권력쟁탈의 투쟁에 나섰다.

마오쩌둥은 군중집단이 직접 나서서 지방정부를 장악하는 코뮌 형식의 탈권 투쟁을 상상했지만, 이념성향과 투쟁노선이 다른 여러 군중조직이 난립하자 곧 군중집단들 사이의 패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마오는 1월 말 군대를 파견해 “좌파 군중”을 지원하라 명령한다. 군부의 대원수들은 중앙문혁소조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집단적으로 항거했다. 덕분에 이후 탈권투쟁의 결과 지방에 건립된 혁명위원회의 주도권은 인민해방군이 쥐게 된다.

1967년 초부터 지방의 관료행정은 마비상태였다. 여러 조직들이 난립하면서 무력충돌이 빈번해졌다. 조직들 사이의 패싸움은 곧 무장투쟁으로 비화됐다. 한 연구에 의하면, 1967년 말부터 1968년까지 100만 점의 총기가 민간인 군중의 손에 넘어갔다. 군중조직이 자체 무장을 통해 ‘지방무력’으로 등장하는 상황이었다.

<문혁 당시 무장세력의 사진. 무장투쟁의 초기 단계에선 도시의 홍위병 및 조반파 조직이 농촌의 농민조직과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례가 많았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 저널 “염황춘추(炎黄春秋)” 2014년 11기에 실린 딩쉐량(丁學良)의 “문혁 중 나와 총의 다섯 가지 관계”에서 발췌>

농민 주축 홍련, 학생 중심 혁련에 복수극

1967년 여름, 다오현의 군중조직들은 크게 두 개의 조직으로 나뉘었다. 혁련(革聯)과 홍련(紅聯)이었다. 혁련은 주로 과격파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홍련의 주축은 빈농(貧農)·하농(下農)·중농(中農)들이었는데, 혁련과는 달리 홍련은 당간부 및 군대와 연결돼 있었다.

8월 8일 혁련이 현에 주둔하던 부대사령부에 쳐들어가선 무기를 탈취하고, 홍련을 압박해서 농촌으로 내쫓는 사태가 발생했다. 곧 이어 8월 13일, 유혈의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다시금 혁련의 승리였다. 앙심을 품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홍련은 혁련 중에 흑오류가 섞여 있음에 착목했다.

문혁 당시 중국 전역에서 등장한 조반파 중에는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무리도 포함돼 있었다. 계급성을 의심받고 있었기에 그들은 더욱 과격한 행동으로 혁명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다오현의 혁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홍련은 지방군부와 결탁하여 농촌의 흑오류와 그 식구들을 잡아 죽이는 대학살의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는데·······.

다오현엔 곧 악성 유언비어가 퍼졌다. 타이완의 장제스가 대륙침략을 획책하고 있고, 흑오류들이 이에 호응해 모반(謀叛)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계급적인들이 흑살단(黑殺團)을 조직해” “9월 대폭동, 10월 대도살을 계획하고 있다!” “그들은 먼저 당원들을 죽이고, 간부들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빈농, 하농, 중농의 절반을 도살하려 한다!” 거짓 소문은 심리전의 시작이다. 유언비어는 대량살상의 무기다. <계속>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송재윤의 슬픈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