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朝鮮칼럼 The Column] 4차 산업혁명기 ‘꼰대’의 역할

최만섭 2021. 3. 26. 04:52

[朝鮮칼럼 The Column] 4차 산업혁명기 ‘꼰대’의 역할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1.03.26 03:20 | 수정 2021.03.26 03:20

 

 

 

 

 

가상화폐 비트코인./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블록체인 업계의 최고 전문가와 저녁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30대 젊은 나이에 아이돌 같은 용모를 보고 처음엔 그저 흔한 ‘금수저’ 중 한 명인가 생각했다. 그 첫인상이 착각이란 걸 깨닫는 데 30분이면 충분했다. 세 시간여 얘기를 들으며 느낀 점은 ‘아 어느덧 내가 꼰대가 되었구나’라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영어에서 꼰대와 가장 유사한 표현은 ‘부머(boomer)’다. ‘베이비 붐’ 세대를 뜻한다. 미국에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나약한 ‘피터팬 신드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자 젊은 세대들이 ‘오케이, 부머(OK, boomer)’라고 맞받아치면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로 치면 ‘네, 네 알겠습니다, 꼰대 아저씨’ 정도다.

세대 간 갈등이야 그리스·로마 문헌에도 쓰여 있다지만 요즘처럼 간극이 벌어진 적이 있나 싶다. 미국에서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감은 문자 그대로 살벌하다. 소셜미디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꼰대 제거기)’로 부를 정도니 말 다 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않다. 최근 정치 지형을 보면 현 정권 지지율이 가장 낮은 세대가 20대에 해당하는 소위 ‘Z세대’다. 그렇다고 야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해 극한 혐오감을 품고 있다. 왜 그럴까?

자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세대 간 부의 격차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Z세대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엄청난 역사적 변곡점에 있다. 이들은 과거의 아날로그 경제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구글이나 아마존,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체제에 친숙하다. 그런데 최근 블록체인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플랫폼 경제는 이제 프로토콜 경제로 진화하고 있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플랫폼 공급자가 모든 이익을 취해간다. 반면 분산 원장 시스템에 기반한 프로토콜 체제에서는 고객까지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공헌도에 따라 이익을 나눠 가지는 구조다.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에서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지만 주식회사가 아닌 프로토콜형 회사에서는 이런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 의사 결정 체계 역시 모든 참여자가 의제를 자유롭게 상정할 수 있고 투표로 결정하는 구조다. 외생적 법규가 아닌 ‘프로토콜’로 불리는 내생적 규율을 통해 질서를 확립해 나간다. 이들은 n분의 1씩의 ‘공평(equal)’한 분배가 아니라 공헌도에 따른 ‘공정(fair)’한 배분을 지향한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공정’에 초점을 맞춘 경제 모형이다.

 

이런 변화에 둔감한 기성세대들의 반응은 어떨까?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미국 드라마 ‘메시아’에 해답의 단초가 있다. 예수의 재림으로 추정되는 ‘알 마시히’라는 선지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불신’하거나 ‘악용’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디지털 경제에 대한 우리 정치권의 반응 역시 이와 유사하다. 가상 화폐 투자에 대해 ‘도박’이란 식으로 매도하면서 양도소득은 과세하겠다는 이중적 태도는 Z세대 눈에 ‘꼰대’들의 아집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반응은 디지털 경제의 지향점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편취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이다. 디지털 경제는 상기한 바와 같이 공헌한 만큼 받아가는 구조다. 공정하긴 하지만 공평하진 않다. 그렇다 보니 사회 안전망으로 기본소득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는 탈중앙화와 탈규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밀턴 프리드먼식 ‘마이너스 세금’에 가까운 개념인데 전자는 싹 무시하고 오히려 국가주의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지향하면서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지금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기다. 새로운 체제가 정립될 때까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은 이미 물밑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세대가 Z세대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공정’과 ‘탈중앙화’ 및 ‘자기 규율’이다. 이들은 철학이 빈곤한 세대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세상을 개혁한다는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세대다. 이들의 사고 체계는 기존 체계를 모두 해체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관행적 사고’에서 자유롭다. 그러니 작금의 ‘불공정한’ 정치 행태와 ‘비상식적’ 경제정책은 이들과 주파수가 어긋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란 식의 기존 사고로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할 수 없다면 등을 두드려 주진 못할지라도 걸림돌이라도 되지 않는 게 우리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우리 ‘꼰대’의 생존법이고 그게 곧 우리의 ‘일그러진 정치’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