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상훈의 복지국가 전략] 현금 복지 확대는 ‘복지병’ 낳을 뿐… ‘서비스 복지’에 길이 있다

최만섭 2021. 3. 31. 05:38

[안상훈의 복지국가 전략] 현금 복지 확대는 ‘복지병’ 낳을 뿐… ‘서비스 복지’에 길이 있다

선거 복지 공약 난무… 한번 준 복지 없애기는 ‘미션 임파서블’
고용 효과 큰 ‘서비스 복지’ 확대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전략을
文정부 소득주도성장에 현금복지 급격 확대… 이대론 미래 없어

안상훈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 2021.03.31 03:00 | 수정 2021.03.31 03:00

 

 

 

 

 

재보선을 앞두고 복지 공약이 난무한다. 선거가 잦은 한국에서 복지 확대는 이제 기정사실처럼 다가온다. 문제는 복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다. 성장, 고용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한국형 복지국가의 미래는 없다.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복지가 차지한 지금, 복지와 경제의 통합적 조정 없이는 망조(亡兆) 들기 십상이다.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등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셌던 1980년대에는 주류 경제학계가 제기하는 ‘복지 망국론’의 서슬이 시퍼렜었다. 복지국가 확대 주장은 성장과 고용의 발목을 잡는 ‘복지병’과 ‘유럽병’으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축소는 이미 복지 수혜를 받게 된 이들의 ‘복지 기득권’ 저항으로 무위에 그쳤다. 한번 도입된 복지를 없애기란 ‘미션 임파서블’이다.

22일 오전 부산 남구 동명대학교 강석진 스타트업 빌리지에서 교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이 따뜻하고 건강한 겨울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 만들어진 케이크 400개는 소외계층과 지역 보육원,치안센터,119안전센터로 전달된다./김동환 기자

복지를 주면 국민들이 게을러진다는 것이 이른바 ‘복지병’ 담론의 요체다. 하지만 기껏해야 반쪽짜리 정답. 복지병의 원흉이 있다면 과도하게 주어지는 현금 복지에 국한된다. 교육이나 고용, 보건이나 복지 분야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복지의 경우에는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하나둘이 아니다. 이후 유럽 선진국들의 개혁은 직전 소득의 90%까지 지급하던 병가나 실업 부문의 현금 복지를 60%대까지 줄이고 직업 훈련과 구직 노력을 강화하는 서비스 복지 중심의 적극적 노동 시장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향해 정치가 할 일을 해냈던 선진국들의 성공 이야기다. 이들은 선구적인 정책적 노력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 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노동경제학 개론에서 설명하듯이 현금 복지는 근로 동기를 침해하는 대체 효과를 보인다. 반면, 서비스 복지는 일자리를 늘리고, 인적 자본을 고양하며, 바람직한 소비를 촉진하기에 자본주의적 성장에 기여한다. 서비스 복지가 경제에 주는 긍정적 효과는 여러 가지다. 첫째, 사회 서비스 분야의 고용 창출 효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비스 복지는 사람을 통해 전달되기에 이 분야에 국가가 투자하면 거의 전액 일자리로 연결된다. 둘째, 인적 자본의 질과 양을 늘려 성장에 이바지한다. 보건 서비스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며, 아동 돌봄과 교육 서비스로 미래 세대의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노인·장애인 돌봄이나 간병에서 가족들을 해방시켜 일자리에 머물도록 해주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할 성장 효과다. 셋째, 서비스 방식으로 사람들을 지원하면 정책이 목표로 하는 바람직한 가치재의 소비를 촉진한다. 현금 복지의 경우, 술·담배·약물·도박 등에 써도 어쩔 도리가 없는 데 반해, 서비스 복지는 가치 있고 필요한 일에 의도한 그대로 정확히 쓰이게 된다.

주요국 서비스복지 비중과 고용률

서비스 복지가 지니는 우월한 경제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구 복지국가를 보면, 어떤 나라는 현금 복지를 우선하고 어떤 나라는 서비스 복지를 강조한다. 두 그룹을 비교할 때 확인되는 경제 효과의 차이는 흥미롭고 교훈적이다. 승자는 단연 서비스 복지다. 서비스 복지 비율이 높은 나라들에서 성장률과 고용률이 높아지고, 특히 여성 고용률이 비슷한 추세로 함께 높아지는 상관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현금 복지가 성장 및 고용에 마이너스 효과를 보이는 것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한국의 경우, 지금 당장의 수치로는 서비스 복지 비율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성급함은 금물. 대표적인 현금 복지인 국민연금을 꽉 채워 받는 사람이 올해 기준 35%, 10년 후면 50%, 20년 후면 73%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만으로도 현금 복지 비율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의 최근 변화가 기초연금, 아동수당, 재난지원금 등 현금 복지 비율 확대로 요약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한국의 내일이 걱정되는 건 기우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소득 주도 성장’ 명목으로 현금 복지의 급격한 확대가 시작되었다. 코로나 시국에서는 가장 극적인 형태의 현금 복지인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이슈로 부상했다. 복지 분야 예산이 무궁무진하다면 모를까, 한정된 예산 안에서 전 국민에게 마구잡이로 쥐여주는 현금 복지를 우선할 경우 경제 친화성이 높은 사회 서비스의 확대 여력이 국고와 함께 증발하는 ‘덫’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에게 부족한 서비스 복지는 아직 많다. 중동발 메르스 사태가 정점을 찍던 당시엔 병동에서 가족 간 감염이 폭증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입원하면 온 가족이 간병에 매달려야 하는 후진적인 한국 병동의 민낯으로 기억된다. K방역의 성과를 자랑하지만, 코로나 와중에 드러난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의 부족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과 후 학교와 유아 교육에서 예술인과 체육인을 교사로 채용했더라면, 무원칙하게 주어졌던 일회성 지원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노동시장 취약 계층 일자리로, 또 고학력 여성들의 원활한 사회생활을 돕는 쪽으로 서비스 복지를 확충한다면 복지 확대의 경제적 악영향이란 걱정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경제 전쟁이 한창인 지금, 이미 국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북유럽 같은 큰 복지국가를 일궈내기엔 국민들이 낼 수 있는 세금과 보험료도 한계 상황이다. 복지에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있다면, 현금 복지는 일할 수 없는 취약 계층에게 두껍게 챙겨주자. 전 국민 복지가 필요하다면 서비스 복지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자. 전 국민에게 질 좋은 사회 서비스 접근성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되,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인 서비스 이용료를 부과하자. 복지의 질도 높이고 재원 마련까지 해결하는 일석이조가 가능하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한국형의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생산적 복지인 서비스 복지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