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축년 새해의 희망-선악(善惡)을 넘어서 피안(彼岸) 으로

최만섭 2021. 1. 17. 10:13

신축년 새해의 희망-선악(善惡)을 넘어서 피안(彼岸) 으로

 

 

나는 글을 쓰는 행위를 수행의 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내게 수행이란 단전호흡을 통해서 무아(無我)에 이르는 황홀한 경험을 한 이후에 맞이하는 찬란한 아침이다. 깊은 단잠에서 깨어나서 날아갈 것 같은 몸의 가벼움에 자신의 존재를 주체하지 못하는, 나 같은 설익은 수도자에게 2020년도 대한민국의 현실은 평정심을 가지고 좌선하는 것 자체가 불가할 만큼 참혹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코로나-19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의사 전문가 집단의 조언과 건의를 묵살하고 혹여나 중국 시진평의 눈 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면서 중국인의 입국을 허락하여, 대한민국은 드디어 코로나바이러스 팬대믹에 휩쓸리게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창달의 원인을 기독교 및 광화문 민주 시민에게 돌리면서 광화문에 재인 산성을 축성하여 백성의 출입을 막고, 전염병을 핑계로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들의 실정을 규탄하기 위해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백만 애국 시민을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는 망발마저 서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만행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최고의 악행을 들자면, 세계 10대 경제 강국 국민을 그것도 대낮에 대놓고 그들의 정적을 모조리 제거하려는 모함과 획책을 개혁이라고 속이는 사기극을 벌였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검찰이 울산 시장 부정 선거 의혹, 옵티머스 투기 사기 사건, 최대 금융사기 라임 사태 등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범죄를 수사하려고 하자, 문재인 정권은 검찰의 인사권을 남용하는 방법으로 수사를 지연 또는 중단시키고, 더 나아가 검찰청을 폐쇄하고 공수 청을 신설하여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떠한 행위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국민과 검찰을 협박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재인 산성에 거주하는 특별국민의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면책특권을 주는 불법행위를 검찰개혁이라고 호도하면서, 그 수단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초헌법적 기구인 공수처를 가동하고 있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이란 이름으로 행한 무법적인 행태는 마치 마피아 집단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경쟁 조직을 파괴하는 것을 연상시킬 만큼 파격적이고 야만적이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수많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편법. 불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손뼉을 치고 환호하고 있다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검찰개혁을 위해서 그만한 편법과 불법은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중국의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부모도 형제도 죽이는 패륜 행위조차도 용납되어야 한다는 홍위병들의 마오쩌둥 찬가를 연상케 한다.

 

‘하늘땅이 크다 해도

당(黨)의 은혜처럼 크지 못하지

양친부모가 가깝다 해도

마오주석처럼 가까울 순 없지!

마오쩌둥 사상은 혁명의 보배

누구든 그를 반대하면 우리들의 적!’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작금의 대한민국 통치자들의 언어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이제 사회주의 독재국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확연히 느끼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권이 사용하는 언어의 혼란은 전체주의화의 첫 조짐이다. 선출된 권력에 저항하면 쿠데타 세력으로 간주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며, 민주주의의 파괴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문재인 정권은 정의를 독점하고 자신을 선()으로 그들에게 비판적인 국민을 악()으로 갈라치는 교묘한 술수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문재인 정권은 입법 사법 행정 등은 물론이고 제4의 권력 기관이라 불리는 방송 언론까지 장악하여 명실상부한 사회주의 독재 국가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은 것도 있는 법이다. 그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개혁이나 혁명에 대한 당위성을 그들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고 보수 정권에 대한 비난과 비방으로 그 당위성을 대신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모든 문제를 내가 아닌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타인을 비방하는 방법으로는 어떠한 난제도 해결할 수가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했던가?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짓는다는 것. 곧 길흉화복(吉凶禍福)ㆍ흥망성쇠(興亡盛衰)ㆍ희로애락(喜怒哀樂) 등이 다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요.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이다. 각자의 마음이 들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려 시비(是非)선악을 가져오게 된다는 의미이다.’

 

나는 여기서 마음이란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이며 겉마음이 아니라 속마음이며, 더 나가서 속마음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저들이 말하는 선악(善惡)은 그들이 스스로 마음속에 그린 탐진치(貪瞋癡)인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포장한 찬란한 거짓말 보따리일 뿐이다.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해답을 마음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자기 마음속에서 난제 해법을 찾으려고 할 때 해법이 풀린다.”라는 김원수 법사의 말씀대로 모든 문제점과 잘못을 나 자신의 마음에서 찾는 것이 참된 인생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상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인생살이나 세상살이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오매불망하는 공수처 설립 목적을 공수처(자신)가 아닌 검찰(타인)이라는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공수처를 설립하려는 의도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정적에 대한 노여움을 억지 못 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 피안(彼岸)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은 불교에서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스스로 선()이라 선언 하도 정의를 독점한 이념 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 공간이 피안(彼岸)이며 천국인가? 피안(彼岸)은 선악(善惡)을 넘어서야 만 만날 수가 있다. 피안(彼岸)은 오직 자신의 노력과 수행으로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정점이다. 피안(彼岸)을 선악(善惡)의 시장에 내놓고 판매를 하는 사회가 자유를 이념의 시장에 내다 놓고 장사판을 벌이는 사이비 집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꿈속에서 추미애 장관과의 만남 때문이다. 소복을 입은 가련한 연인은 손수 짠 길쌈을 장례식장에 모인 조문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엄숙하게 작은 공덕을 베풀고 있는 여인은 한없이 아름다운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다. 그가 찾는 피안(彼岸)의 세계는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선악(善惡)을 구별하여 서로 싸우고 증오하려는 분별심인 선악(善惡)의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 아닐까? 몇 일 후에 그는 법무부 장관직의 사의를 표했다.

 

추미애는 검찰 개혁을 부르짖으며 칼날을 마구 휘두를 때보다는 홀로 좌선하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고 있을 때가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이 행복이고, 피안이고 천당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그리워하는 아름다움은 가늘게 천천히 숨을 들이켜면서 숨이 가는 길을 의식이 따라갈 때 불현듯 만나는 청정한 마음이며, 코에서 단전에 이르는 깊은 숨쉬기를 하다가 몸이 없어지고 혼이 날아가는 듯한 경험을 할 때, 나 자신이 티끌같이 가볍게 느껴질 때 만나는 자유다.

 

내가 경험한 세계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피안(彼岸)이 아닐까 싶다. 피안(彼岸)은 내 속마음의 역사이다.

 

나는 ‘신은 왜 지고지순한 인간 추미애의 모습을 꿈을 통해서 내게 보여주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몇 날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2021년 신축년 새해에 대한민국 국민이 선악(善惡)의 터널을 지나 피안(彼岸)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는 작지만 분명한 희망의 증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머지않아서 나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는 선악(善惡)의 산물인 공수처가 폐지되고 피안(彼岸)의 상징인 국민화합 청이 설립되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