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기자의 시각] 백신 늦게 맞는 게 자랑인가

최만섭 2020. 12. 25. 10:10

[기자의 시각] 백신 늦게 맞는 게 자랑인가

김민정 기자

입력 2020.12.25 03:00

 

 

 

 

 

최근 코로나 공포를 직접 마주쳤다. 이틀 전 이웃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확진자는 병상이 나지 않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이틀 밤을 더 지냈다. 이웃들도 함께 불안에 떨었다. 그는 입주민 채팅방에 “밤에 고열이 날까 걱정이 되는데 해열제를 나눠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주민 한 명이 조용히 타이레놀을 그 집 문 앞에 나뒀고, 또 다른 주민은 된장국을 놓고 갔다.

 

전국에서 이런 확진자와 그 이웃들이 묵묵히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던 그때, 23일 코로나 정례 브리핑에서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우리 사회 분위기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에서 뒤처진 정부 늑장 대처에 질타가 쏟아지자 반박한 것이다. 그는 백신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므로 “(먼저 접종을 시작한)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1~2개월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면서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세계 각국이 긴급 사용 승인을 내리고 고령자·의료진 등을 중심으로 서둘러 접종을 시작한 백신을 위험한 약물처럼 취급한 셈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한 발 앞서 백신 확보에 성공하고 접종을 시작했다면 그때도 과연 이런 말을 했을까 의문이 든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백신을 애타게 기다리며,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는 국민과 방역·의료 현장 일손들에게 “백신 확보가 늦어져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기는커녕 궤변을 늘어놓는 이런 태도에 울화가 끓어올랐다.

 

백신 도입 과정에서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서둘러 선구매 계약하면 우(愚)를 범한다”며 여유를 부리더니, 11월 중순 들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양 “되도록 많은 양을 확보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지난달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화이자·모더나가 우리와 빨리 계약 맺자고 한다”고 으스댔으나, 한 달 만에 정부 관계자는 “물건(백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비판이 고조되자 1주일 만에 다시 “접종이 늦어져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일부 국가에서 접종이 시작됐지만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의료 위기를 공식화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피치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 접종 시기 측면에서 우리는 서구 선진국은 논외로 하고 아시아에서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에 뒤져 필리핀,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과 함께 2그룹으로 분류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한때 뽐냈던 K방역 위상도 ‘백신 위기'와 함께 추락하고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부는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선장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