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한삼희의 환경칼럼] 사다리 걷어차기

최만섭 2020. 11. 25. 05:22

[한삼희의 환경칼럼] 사다리 걷어차기

선진국이 망친 기후… 개도국은 피해국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는 석탄 쓰지 말라”니
부자가 보석 품으려고 貧者 모포 빼앗는 격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입력 2020.11.25 03:20

 

 

 

 

 

10월 5일 한국전력 서울 서초지사 앞에서 시민단체 청소년기후행동과 정치하는엄마들의 회원들이 한전의 베트남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 진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력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문제를 놓고 많은 질타가 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스스로 기후 악당인 것을 증명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여당 의원들은 공공기관의 해외 석탄 발전 사업 참여를 금지시키는 법안들을 발의해놓고 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투자가, 금융기관들의 탈석탄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눌려 지난달 한전과 삼성물산이 ‘확정 사업은 진행하되 신규 프로젝트는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기후 붕괴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굴뚝이나 다름없는 석탄발전소는 최대한 억제돼야 한다. 그런 대전제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의 ‘석탄발전 수출 비판’ 일변도의 여론 흐름이 놓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1인당 전력사용량(2018년)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10분의 1 전기로 현대적 문명 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 역시 한국의 8분의 1 수준이다. 산업화가 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석탄 대국이다. 2017년엔 호주를 제치고 석탄 최대 수출국에 올랐다. 인도네시아로선 가장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源)은 석탄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석탄을 산업 에너지로 쓰면서 부(富)의 기반을 닦았다. 한국은 그 뒤를 따랐다. 중국도 석탄으로 산업화를 이뤄냈다. 중국의 에너지 분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 1.86t이었는데 2017년 6.67t이 됐다. 인도네시아로선 가장 싼 비용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석탄발전이겠지만, 석탄발전소를 세우고 싶어도 기술과 자본이 부족하다. 선진국과 한국, 중국 등이 모두 석탄발전소 수출을 중단한다면 인도네시아는 계속 ‘전력 기근’에 허덕여야 한다.

 

지금의 기후 위기는 선진국들이 석탄 산업화 과정에서 뿜어낸 온실가스가 하늘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개도국들은 기후 위기 도래에 책임 느낄 만한 행동을 한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기후 붕괴로 인한 피해는 인도네시아 등의 열대 개도국에 집중된다. 담배 피운 일 없지만 간접흡연으로 폐암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물에 잠기고 있는 대도시’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수면 상승과 홍수에 대처하려면 많은 돈과 기술이 필요하고, 풍부한 석탄을 써서 서둘러 산업화를 이뤄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게 석탄 산업화는 선진국들이 저질러놓은 기후 붕괴에 대처하는 일종의 자기 방어 행동이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인도네시아가 석탄 발전을 못하게 훼방 놓고 있다. 자기들이 타고 올라갔던 사다리를 뒷사람은 쓰지 못하게 차버리는 꼴이다. 이렇게 되면 인도네시아는 빈곤의 함정에 빠져버릴 수 있다. “우리도 한국이나 중국처럼 되고 싶다”는 인도네시아에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선진국 석탄발전소들은 지은 지 평균 43년이 됐고, 개도국 석탄발전소는 12년밖에 안 됐다. 서구의 ‘탈석탄’ 구호에 음모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아프리카엔 54국이 있다. 인구는 세계의 16.7%인데 온실가스 배출량은 3.6%밖에 안 된다. 1인당 배출량이 한국의 1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나라 국민도 인터넷·휴대폰을 쓰고 유튜브·넷플릭스를 본다. 선진국 국민이 어떻게 사는지는 다 알고 있다. 선진국처럼 되는 것이 꿈인데, 선진국에선 “기후 붕괴를 막아야 하니 너희는 에어컨, 자동차 없는 세상에서 계속 살아라”하면 누가 받아들이겠나. 선진국 국민에겐 기후 붕괴를 막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아프리카엔 배고픔 해결이 훨씬 절박하다.

 

만일 개도국이 선진국 환경단체와 투자 펀드의 압박에 석탄 산업화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못사는 개도국이 스스로를 희생시켜 잘사는 선진국들의 희망 실현을 도와주는 셈이 된다. 도덕철학자 헨리 슈는 “내가 당장 굶어죽을 판인데, 당신은 나더러 식량 찾아 헤매는 일 중단하고 자기네 집의 새는 지붕 고치는 걸 도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부자가 보석 계속 갖고 있겠다고 가난한 사람 모포 빼앗아선 안 된다”고도 했다. 기후 윤리학자 폴 해리스는 “가난 탈출을 위해 발버둥치는 개도국의 석탄 소비, 열대림 개발을 억제시키려면 선진국이 먼저 자신들 잘못을 인정하고 획기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개도국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현실이다. 세계 질서는 선진국이 좌지우지하고, 그들이 교역(交易)의 룰을 정한다. 기후 위기가 절박한 것도 더 말할 나위 없다. 장래에 석탄발전소는 뜯어내 고철로 팔아야 하는 ‘좌초 자산’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으로선 기후 위기도 막고 국가 생존을 위해서도 탈석탄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석탄발전소 수출 반대’엔 정의(justice) 관점에서 만만치 않은 문제가 내포돼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