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전태일의 외침, 당신이 파괴” 민노총 간부 꾸짖은 판결문

최만섭 2020. 9. 16. 05:27

“전태일의 외침, 당신이 파괴” 민노총 간부 꾸짖은 판결문

재판부 징역 2년8개월 이례적 선고

양은경 기자

입력 2020.09.16 03:00

 

 

 

법원 로고

“전태일이 죽어가면서 그토록 준수하라고 외쳤던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것은 정작 피고인이다.” 이 같은 일갈(一喝)을 들은 상대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였다. 지난달 25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부 송중호 재판장이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A씨에 대해 징역 2년 8개월을 선고하며 양형(量刑) 이유로 설명한 내용이다. 판결문에선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위선’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민노총 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안산지원 형사2부의 이 판결문이 최근 판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 중·서부지역 간부인 A씨는 폭력시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안산의 한 주민복지센터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승합차 지붕에 확성기를 매달아 ‘민주노총 노조원 고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위 소음은 주택가 소음 기준치(65㏈)를 훨씬 초과하는 93데시벨(㏈)이었다. A씨는 이를 단속하려는 경찰관을 밀어 넘어뜨렸다. 올 2월에는 승합차 위에 설치된 확성기를 떼려 하자 욕설을 하며 경찰관을 승합차 지붕에서 밀어 떨어뜨렸다. 다른 경찰관이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하자 1㎏가량의 철제 공구함으로 그의 머리를 찍기도 했다.

 

A씨는 2016년 2월에도 다른 민노총 간부들과 합세해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공사 하도급업체를 협박한 혐의도 있었다. 당시 그는 “민노총 조합원 15명을 채용하지 않으면 소음 시위를 계속하고, 현장의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을 고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A씨는 대체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해당 공사 현장이 지역 건설노동자를 우선 고용한다는 조례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최후변론에서 자신은 전태일처럼 준법을 촉구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이 같은 주장의 위선을 지적했다. A씨 등의 협박에 못이겨 하도급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들이 법정 증거 조사 결과 7명 중 6명이 중국인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 수 있다”며 “A씨가 일용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A씨는 법을 준수하라고 이 법정에서 외치고 있지만 1970년 전태일이 죽어가면서 그토록 준수하라고 외쳤던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것은 정작 피고인”이라고 일갈했다. 재판부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재벌이 아니라 능률이 떨어지는 근로자를 고용하고서도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하도급업체와, 실력 좋고 성실한 근로자들”이라고 했다. “노조원을 썼을 때 생산성이 50~60%가랑 떨어진다”는 하도급업체 관계자 증언을 근거로 했다.

 

 

재판부는 A씨의 적반하장식 태도도 지적했다.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며 법정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노조원들이 앉은 방청석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노조원들이 A씨에 대해 “안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운동) 활동가 사이에서 명망이 높다”고 낸 탄원서에 대해선 “A씨처럼 수시로 대상을 불문하고 협박과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인망이 높다고 하면 안산 지역에 덕을 지닌 노동운동가가 그렇게 없다는 주장과 다름없다”고 했다. 이 판결문에 대해 일각에선 “지나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피고인에 대한 훈계 범위를 넘어선 감이 없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며 법질서를 무시하고 잇속을 챙기는 노조 등의 위선적 행태를 제대로 지적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 부장판사는 “노조 등의 폭력시위 사건을 다루다 보면 드는 생각을 정확하게 짚었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현 정부 주류 세력인 민노총 관계자에 대한 판결을 이렇게 쓰는 데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욕을 먹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게 진정한 판사 독립”이라고 했다.

 

‘위선’을 양형에 반영한 것은 당연하다는 평가도 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똑같이 법을 어겼어도 ‘먹고사느라 그랬다’는 쪽과 ‘법 지키려고 그랬다’며 자신의 도덕성을 강변하는 쪽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A씨가 ‘준법’이나 ‘전태일 정신’을 언급한 게 오히려 부메랑이 됐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편집국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