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때 대체근무’ 법으로 봉쇄… 노조가 임단협 방해해도 처벌 못해
[노동법 뭐가 문제인가] 노동손실일수, 日보다 172배 많아… 기업들 생산차질 빚어도 대응 불가
입력 2020.10.08 03:10
2019년 7월 3일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 조합원들이 3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3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가 이른바 ‘기업규제(공정경제) 3법’과 함께 ‘노동관계법’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화두를 던진 것은 우리나라 기업의 현저히 낮은 노동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사 협력 점수는 141국 중 130위, 고용률은 102위, 유연성은 97위에 불과하다. 임금 근로자 1000명 당 파업, 태업 등 노사 갈등으로 발생한 노동 손실 일수는 4만2327일로, 미국(6036일), 일본(245일)의 각각 7배, 172배에 달한다.
집회 막히자… 마네킹까지 동원 - 7일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가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생존권 보호를 요청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집합 규모를 최소화하자, 마네킹 350여개를 집회 현장에 세웠다. /신현종 기자
노사 관계 전문가들은 전체의 10%에 불과한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이 기업 현장을 쥐고 흔들 수 있도록 돼 있는 현행 노동법 체계가 한국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는 “전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취약 근로자 권익에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악용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2017년 2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한국GM 노조의 전·현직 간부들은 협력업체 직원(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취업시켜 주는 대가로 총 8억7300만원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한국GM의 채용 비리 사건은 이른바 ‘귀족 노조’라 불리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얼마나 큰 기득권을 가지고 전횡을 휘두르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조사(2016년)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47%가 “회사는 직원 채용 시 동일 조건의 경우 조합이 추천하는 자에 대해 우선 채용한다”는 등 위법하거나 불합리한 내용의 단체 협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일 노동환경 비교
현대중공업과 합병 작업이 진행 중인 대우조선해양의 노조는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까지 날아가 합병 반대 원정 투쟁을 벌였다. EU에서 기업 결합 승인이 나지 않으면 합병 작업이 물거품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 회사는 분식회계와 글로벌 조선 업황 부진 등으로 12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됐고,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으로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조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10%의 목소리 큰 소수가 대한민국 산업 현장을 뒤흔들고, 기업과 근로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9년 7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동관 앞에서 열린 민노총 확대간부 상경투쟁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운호 기자
우리나라 노조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노조의 보호를 받는 노조원 수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노조 가입률도 10.3%로 미국(11.4%), 일본(17.8%), 영국(25.8%)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노조원 1만명당 노동 쟁의 발생 건수는 0.56건으로 미국(0.01건), 일본(0.04건), 영국(0.18건)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현상은 사측에 절대 불리하게 돼 있는 노동관계법의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법에는 노조가 파업을 벌이더라도 사측이 대체 근로를 시킬 수 없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노조가 부당노동행위로 사측을 고소·고발하면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는데 노조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근로자 파견도 너무 엄격하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독일, 일본은 제조업에도 근로자 파견을 인정하지만, 우리 법 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노조 파업권을 보장하는 건 필요하지만 노조 파업 때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며 “사측이 노조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요구조차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으니 노조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은진 기자 편집국 산업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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