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정신분석학이 필요한 장례식 생떼
조선일보
입력 2020.07.17 03:16
성추행 의혹자 여성 운동가 칭송, 구국 전쟁 영웅 친일 부역자 매도
김광일 논설위원
개인이든 집단이든 중요 인물의 장례를 치를 때 자신의 본바닥 같은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가면을 챙겨 쓰기엔 경황이 없고 애도의 표현을 체로 걸러낼 시간도 부족하다. 그래서 더 생경하고 적나라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 주 우리는 갑작스레 두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대한민국을 절멸의 위기에서 구해낸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영면에 들었다. 또 인구 1000만을 대변하는 수도 서울의 박원순 시장이 성추문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우연하게 두 장례가 겹치면서 정권과 집권 그룹의 존재론적 본질이 드러났다.
때로 그들에겐 옳고 그름, 그리고 선악미추에 관해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생활인들과의 공통분모가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망설임 없는 피아 식별이 있을 뿐이다. 상식, 윤리, 도덕에 관한 전승(傳承)의 잣대를 팽개쳐 버린다. 고위 공직자의 독직(瀆職) 사건에서 무조건 내 편은 옹호하고 반대편은 내친다. 그러한 피아 식별이 장례에도 적용됐다.
17세기 조선조 효종·현종 때 '예송(禮訟) 논쟁'은 겉으론 상복(喪服)을 얼마 동안 입느냐 논쟁 같았으나 사실은 성리학의 핵심 문제를 등에 업고 서인과 남인이 벌인 정권 투쟁이기도 했다. 21세기 한국 땅에서 벌어진 장례 논쟁은 그것보다 훨씬 저열한 형태의 편 가르기 싸움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폐단은 한국 사회를 거의 75년 전 '해방 정국'으로 되돌려 놨다는 점이다. 해방이 되자 좌익 청년들이 우익 인사의 집으로 몰려가 돌팔매를 하고 대문을 발로 차며 밖으로 나오라고 윽박질렀다던 그때 풍경이 재현되는 느낌이다. 나라를 두 동강 내서 정치적 에너지를 얻어내는 천박한 수법이다.
성추행 의혹자가 여성인권 운동가로 추앙받고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이 친일 부역자로 매도되는 전도(顚倒)된 상식 위에 지금 정권이 서 있다. 어떤 변호사는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공적을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반역으로 폄훼한다. 어떤 공공기관장은 백 장군에게 최대한의 경의와 헌사를 바친 한미연합사령관을 백악관에 고발하고, 한 여성 검사는 박 시장과 팔짱 낀 사진을 공개하며 자신도 성추행의 주체라고 말하면서 이번 여성 피해자를 조롱한다. 한 여성 아나운서는 피해 여성에게 지난 4년 동안 뭐 했느냐고 다그친다.
2017년 5월 이후 집권 세력과 그 동조 세력이 내보인 희대의 정치의식은 두고두고 학자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필요할 것이다. 법무장관은 'n번방' 사건과 손정우 사건 때는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더니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미투 운동의 출발이 됐던 여성 검사는 이번에는 페이스북을 닫아버리는가 하면, 이름이 알려진 여성 작가는 '바보 박원순'을 주님이 너그러이 안아줄 것이라며 그를 용서했다. 한 진보학자는 "박원순은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 못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 것일까.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마지막 정치 소설 '1984'에서 중사(重思), 즉 더블싱크(Doublethink)를 이렇게 말했다. "당(黨)은 모든 자료와 당원의 마음속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당이 과거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중사고'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전현충원 앞에서 백 장군의 운구를 막아섰던 사람들을 보면 "바리케이드에 머물라"는 좌파 정당의 행동 구호가 떠오른다. 적과 대치 상황에서 바리케이드 안에 같이 웅크리고 있으면 내 편이고 그것을 벗어나면 적으로 간주하는 행동 원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6/2020071604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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