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코로나로 절친 떠나보내며… 희망의 노래 결심했죠"

최만섭 2020. 7. 16. 05:22

"코로나로 절친 떠나보내며… 희망의 노래 결심했죠"

조선일보

김경은 기자

입력 2020.07.16 03:09

소프라노 조수미 '삶은 기적' 발표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률이 높은 이탈리아, 봉쇄된 도시 로마에서 갑갑한 날들을 견디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너무 놀랐죠. 그 친구 페데리코도 저와 친하지만 그의 어머니 파트리치아는 그야말로 '절친'. 그런데 코로나에 걸려서 이제 갓 쉰인 그녀가 유명을 달리했다니…."

소프라노 조수미(58)가 15일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노래 'Life Is a Miracle(삶은 기적)'을 선보였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때 그가 불렀던 공식 주제가 'Here As ONE(평창, 이곳에 하나로)'을 작곡한 테너 페데리코 파치오티(33)가 곡을 썼고, 이탈리아 스타 피아니스트인 조반니 알레비(51)가 자진해 반주를 했다. 이날 로마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조수미는 "페데리코가 울면서 말했어요. 발코니에 있는데 갑자기 하얀 나비가 날아와 자기 뺨에 3초 정도 앉아 있었대요" 하면서 'Life Is…'가 탄생한 순간을 떠올렸다. 통통 튀는 목소리에서 촉촉이 물기가 배어났다.

 

내년 데뷔 35주년인 조수미는 “제자리에서 최선의 나날을 보람차게 사는 것이 기적을 만든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웬 나비일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1분 뒤 코로나로 한 달째 입원해 계시던 어머니가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대요. 저도 같이 펑펑 울다가 장례식에 갔고, 그때 결심했죠. 가족과 친구도 볼 수 없고 마지막 인사도 못 하는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나서서 위로를 건네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란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봉쇄 기간, 사실상 집에 갇혀 있어야 했던 이탈리아인들이 매일 저녁 발코니에 나와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논의하려 해도 거리에 경찰이 깔려 있어서 체포될 위험이 높았다. 결국 조수미가 떠난 친구를 향한 안타까움을 담아 노랫말을 쓰고 제목을 달았다. 파치오티는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며 선율을 붙였다. 크리스티아노 리카르디 영상감독이 재능 기부로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겠다고 나섰다. 촬영 이틀 전 봉쇄가 풀렸다. "그래도 3m씩 떨어져 찍어야 했죠. 그토록 힘든 모험은 처음이었어요. 다행히 지난 10일 음원을 공개하자마자 이탈리아 4대 일간지와 TV 뉴스가 대서특필해줬어요."

3분 15초 길이의 'Life Is…'는 알레비의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거 알아? 난 가끔 꿈을 꾸지/ 눈을 감고 우릴 보곤 해"라는 파치오티의 속삭임으로 시작한다. "기억해?"라는 조수미의 목소리가 겹치면서 "추억으로 남은 순간들/ 다시 돌아갈 거야 다시 찾을 거야/ 우리는 가까이 있어"라는 바람이 울려퍼진다. 파치오티와 조수미가 듀엣으로 "모든 것이 다 예전으로 돌아갈 거야/ 인생이 가장 큰 기적이기 때문이야" 하고 입 맞추는 대목에서 감정은 뭉클하게 폭발한다.

조수미는 "돌아보면 내게도 기적이 참 많았다"고 했다. "브라질에선 발목이 부러져 휠체어에 탄 채 노래했어요. 목이 잠겨서 도저히 부 를 수 없다고 했을 땐 삼천 관중이 3분 동안 기립박수를 쳐줘서 세 시간을 노래한 적도 있죠." 그는 "간절히 바랄 때 인생의 '미러클'은 딱 발휘된다"며 "손잡고 껴안고 가까이에서 밥 먹던 코로나 이전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수익금은 전액 바이러스 퇴치와 암 치료에 앞장서는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베로네시 재단과 이화여대의료원에 기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