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김창균 칼럼] 박원순 가해자에게 '피해 호소' 방패 씌워준 동지들

최만섭 2020. 7. 16. 05:11

[김창균 칼럼] 박원순 가해자에게 '피해 호소' 방패 씌워준 동지들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

 

입력 2020.07.16 03:20

겪은 고통 위로한다면서도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 박 시장 무죄추정한다는 뜻

 

김창균 논설주간

 

 

안희정 충남지사 미투 사건으로 요란하던 2018년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인터뷰한 일간지 기자는 "우 조교 사건(서울대 성희롱) 때"라고 질문을 꺼냈다가 박 시장으로부터 "신 교수 사건이라고 불러야지요"라는 반박을 들었다. 박 시장은 "뭐든 피해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핀잔 듣고 감명받았다는 취지의 기사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8년 5월 21일, 3선 도전을 앞둔 박 시장은 '박원순 캠프와 함께하는 성추행 예방교육'을 열었다. 이때 박 시장이 처음 꺼낸 말도 "피해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였다. 성범죄를 가르는 '피해자 중심'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그날 발표한 예방 매뉴얼에는 사생활 간섭, 성적 농담, 불필요한 신체 접촉 금지 등이 명시돼 있었다. 박 시장 비서가 밝힌 '늦은 밤 음란한 문자를 보내고, 침실에서 안아달라고 하고, 셀카를 찍자며 신체를 밀착시킨 일' 등이 모두 해당한다. 이런 가해가 안희정 미투 즈음에도 계속됐다고 피해자는 말한다.

박 시장은 별명 '친절한 원순씨'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피해자는 아픈 무릎에 '호' 해주겠다며 다가서는 박 시장의 '과도한 친절'에 "제발 이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고 했다. 박 시장이 남을 단죄할 때 들이댔던 '피해자 중심' 잣대를 한 번이라도 떠올렸다면 딸보다 어린 비서에게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너무 맑아서…" 또는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서"라고 했다. 이런 말들 속엔 두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박 시장이 심하게 자책했다는 거고, 그가 자책한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거다. 박 시장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스스로를 책망했다면 그의 유서 속 첫머리에는 피해자 그 한 사람에 대한 사과가 선행됐어야 한다. 박 시장은 대신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자신에게 실망한 '모든 분' 속에 피해자도 그저 한 사람으로 끼워 넣은 것인지, 또는 그 '모든 분'속에 피해자가 포함돼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박 시장 지지자들은 그를 '거목'과 '큰 별'에 빗대며 그가 저지른 '대수롭지' 않은 일탈을 덮어 버리려 한다. 역사적 사실도 불분명한 이순신 장군과 관노의 동침까지 끌어들인다. 이런 황당한 애도사들은 '너 따위가' '그까짓 일'이라는 화살이 돼서 피해자에게 날아간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당에서 성추행 의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기자가 묻자 "XX 자식"이라는 막말로 답했다. 민주화 운동을 해온 수십 년 동지에게 추잡한 의혹을 들이대냐는 거다. 바로 그 수십 년 민주화 동지가 추잡한 의혹을 남기고 떠나 버렸기에 기자는 남아서 진상을 규명할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물었을 뿐이다.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던 상당수 국민은 함께 욕설 세례를 받은 기분이었다.

박 시장의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그의 업적은 따로 평가돼야 한다고 한다. 공과 과를 따지는 건 경제는 잘했지만 정치적으로 독재를 했다든지, 경제를 망치고 국가 재정을 파탄 냈지만 감염병 대응은 다른 나라보다 양호했다는 식으로 다른 분야를 비교하는 것이다. 박 시장은 서울대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저지른 성적 괴롭힘에 대해 첫 성희롱 판결을 이끌어내 명성을 얻은 인권변호사였다. 그가 서울대 교수보다 훨씬 막강한 서울시장 자리에서 비서에게 그에 못지않은 일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그의 업적을 따로 떼어내 값을 쳐줄 수 있나. 민주당은 시내 한복판에 "그분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분의 뜻은 낮과 밤에 딴판이었는데, 어느 쪽을 기억하고 계승하겠다는 것인가.

이해찬 대표는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느꼈는지 뒤늦게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박 시장에게 핀잔 듣고 감명받았던 일간지 기자도 청와대 대변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피해 호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한다.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했다. 박 시장이 가해자가 되자 그의 편에 서서 무죄추정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박 시장과 그 진영 사람들이 떠받들던 '피해자 중심' 원 칙은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이자, 자신들을 진보로 포장하는 패션 아이템이었을 뿐이다. 입장이 바뀌자 피해자를 밟아서라도 진영을 지킨다는 '우리 편 중심'으로 돌변했다. 피해자라는 표현을 애써 피하려는 그들의 꼼수는 위안부 존재를 끝내 인정 않으려는 일본과 꼭 닮았다. 피해를 인정 않는다면서 뭘 위로하고 무슨 2차 가해를 걱정해주나. 말장난이자 우롱일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6/20200716000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