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첨단 과학의 시대에 코로나 백신 개발 왜 오래 걸릴까

최만섭 2020. 5. 15. 05:44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첨단 과학의 시대에 코로나 백신 개발 왜 오래 걸릴까

조선일보
  •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 수정 2020.05.14 23:51

열두 살 모차르트 오페라 후원자였던 의사 메스머
뉴턴 영향 받아 '자석 요법'으로 병 치료한다고 주장

프랭클린·기요틴 '블라인드 테스트'로 메스머 추방
엄격한 절차 통한 검증 방법, 훗날 임상시험의 표준

과학이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시간 필요한 이유엔
인간을 인간답게 지키려는 오랜 고민 숨어 있다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코로나가 던진 충격으로 우리는 변화된 일상에 적응해야 할 뿐 아니라 몰랐던 과학 용어들에도 익숙하게 되었다. 이름도 낯선 치료약과 백신 개발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달나라로 로켓을 쏘는 과학의 시대에 왜 이렇게 임상시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궁금해한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 대상일 때는 결코 '실험(實驗)'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시험(試驗)'이라고 부르는 데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과 과학, 그리고 인류의 진보에 대한 오랜 고민이 숨어 있다.


인간이 대상일 때는 '실험'이 아닌 '시험'

1752년 벤저민 프랭클린의 실험으로 번개가 '전기(電氣)'라는 자연현상으로 밝혀지던 무렵, 프랑스 파리에서는 오페라 논쟁이 벌어졌다. 루소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은 복잡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에 반대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선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마을의 점쟁이'라는 오페라를 실험적으로 작곡한다. 음악 교육을 받은 적도 없던 루소의 오페라는 동요 '주먹 쥐고 손을 펴서'와 교회 찬송가에 사용될 정도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실험은 성공했다. 루소의 오페라는 모차르트에 이어진다.

176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두 살의 모차르트가 오페라를 시도한다. 아무리 신동이라도 어린애가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얘기에 기성 음악계는 코웃음을 쳤다. 이때 의사 메스머가 후원자로 나서고, 루소의 오페라를 리메이크한 모차르트의 첫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엔'이 탄생한다. 당시 메스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뉴턴의 중력처럼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磁氣)'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메스머는 자석 치료에 '글라스 하모니카'라는 악기의 몽환적인 소리를 이용했다. 글라스 하모니카는 스타 과학자 프랭클린이 발명한 악기로, 물을 묻힌 손가락으로 유리잔을 문지를 때 나는 소리를 이용한 것이다. 메스머는 자신의 치료를 과학으로 믿었고, 이후 활동 무대를 파리로 옮긴다.

신비주의와 과학의 차이는 '보편성'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첨단 과학의 시대에 코로나 백신 개발 왜 오래 걸릴까
/일러스트=박상훈

1783년 6월 4일,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가 파리의 하늘을 날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프랭클린은 인류 최초의 비행이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며 감격했다. 당시 프랭클린이 파리에 머문 이유는 미국 독립 전쟁을 종결시키는 영국과의 협상 때문이었는데, 9월 3일 파리조약으로 미국 독립이 승인된다. 며칠 뒤 9월 19일 베르사유에서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에 동물을 태운 실험이 성공하자, 이를 지켜보던 루이 16세는 열기구에 사람이 타는 것을 허락한다. 마침내 11월 21일 몽골피에 형제는 유인 열기구 시험 비행에 성공한다.

열기구에 들썩이던 파리에서는 메스머의 치료법이 논란거리였다. 인간이 하늘을 나는 모습에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매료되었고, 과학은 구질서에 맞서는 새로운 권력이자 권위였다. 따라서 뉴턴 이론으로 무장한 메스머의 치료는 설득력이 있었고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메스머는 전기를 발견하고 글라스 하모니카를 발명한 프랭클린을 만나 조언을 구한다. 주류 학자들이 메스머의 치료법을 신비주의라고 공격하자, 프랭클린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랭클린이 생각한 과학은 달랐다.

1784년 프랑스 정부는 프랭클린을 위원장으로 메스머 검증 위원회를 구성하고, 당대 최고의 화학자 라부아지에와 단두대로 유명한 의사 기요틴이 합류했다. 이들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도입하여 누가 어떤 치료를 받는지 모르게 했는데, 결과는 치료받은 쪽(시험군)과 치료받지 않은 쪽(대조군)의 차이가 없었다. 한때 신비주의로 취급받던 뉴턴의 중력이 과학으로 인정받은 것은 중력 법칙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보편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스머의 치료법은 분명 누군가에게 효과가 있었겠지만 누구에게나 보편적이지는 않았고, 이런 것은 과학이 아니다. 결국 메스머는 추방되고, 메스머 위원회의 검증 방법은 이후 임상시험의 표준이 된다.

과학을 인류의 진보라고 믿는 이유

이 무렵, 빈에서 계몽주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성공시킨 모차르트는 메스머의 소식을 접한다. 자신을 오페라의 세계로 이끈 메스머의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모차르트의 반응은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에 드러난다.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대사 '여자는 다 그래(Così fan tutte)'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오페라에서 의사 메스머는 황당한 치료를 하는 웃음거리로 묘사된다. 어린 시절 존경하던 후원자 메스머에 대한 모차르트의 시각이 얼마나 싸늘하게 바뀌었는지를 볼 수 있다. 한국에 꽤 알려진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메스머가 1768년의 신동 모차르트와 성인 모차르트를 대비하여 회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번개는 토르의 망치가 아니라 자연현상이며 벼락을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피뢰침으로 피할 수 있다고 과학은 알려준다. 우리가 과학을 인류의 진보라고 믿는 이유는 비가 안 온다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보다 인공위성으로 기상관측을 하는 것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이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는 실험과 시험이라는 단어까지 엄격히 구분해서 극
도로 조심하고, 임상시험은 동물실험을 포함한 여러 안전성 검증을 통과한 다음에야 가능하다. 이러한 절차를 생략한 생체실험을 금지한 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비인간적인 인류사의 비극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임상시험의 절차를 지키고 결과를 냉정히 분석하는 것, 여기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지키려는 과학의 오랜 고민이 투영되어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4/2020051404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