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천국은 없다 - 대구, 못다 한 이야기

최만섭 2020. 3. 17. 06:01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천국은 없다 - 대구, 못다 한 이야기

조선일보

입력 2020.03.17 03:14

천국은 종말에 금마차 타고 간다는 저 하늘에 있지 않다
생명의 불씨 살리려 분투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려 아수라장 된 이곳이 천국이다

김윤덕 문화부장
김윤덕 문화부장
"대구에 아직도 열차가 서냐?"고 물은 건 서울역으로 가던 택시기사였다. 청와대의 실언(失言)대로 도시를 봉쇄했다면 KTX는 동대구역을 3초 만에 지나쳤을 테고, 나는 이곳에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중무장한 배낭엔 우비 말고 알베르 카뮈의 소설도 있었다. 역사상 서른 차례에 걸쳐 일어나 1억에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죽음의 전염병 '페스트'. 병균이 쓸고 간 소설 속 도시 오랑은 온 세상에서 격리된 채 초목도 넋도 없는 곳으로 죽어간다. 대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상상했다. 감염자의 7할이 이곳에서 나왔다. 음모론자들은 말 없고 보수적인 선비들의 고장을 이단의 소굴, 전염병의 발원지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햇살과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이 모든 망상을 깨뜨렸다. 광장엔 봄볕이 이글거렸고, 수건을 동여맨 인부들은 팬지꽃 1만8000분을 저녁나절까지 심어야 해서 춘풍 속에 구슬땀을 흘렸다. 서울서 왔다는 말에 잡역부 여인이 소 닭 보듯 한 표정을 지었다. 우짤낍니꺼.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이고. 대구는 잘 이겨낼 것이니 서울 걱정이나 하이소. 트로트를 틀어놓은 예순의 택시기사는 불안감을 넉살로 눙쳤다. 취준생 아들눔 있으니 내가 벌어야지. 마누라 눈치도 뷔고예. 요요 트로또가 있어 숨 쉬고 산다 아입니꺼.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가열 찬 생의 의지는 바이러스도 꺾지 못했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망연자실한 사람들과 함께 우체국 앞을 서성이다 계산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토록 와보고 싶던 대구근대문화골목을 마스크 두 겹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걷게 될 줄은 몰랐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져야 할 '청라언덕'엔 새소리,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1899년 설립된 제중원(현 동산의료원)과 위급한 환자들에게 사용했다는 고압 산소치료기가 물끄러미 이방인을 쳐다보았다. 우뚝 선 제일교회 담장 아래로 '3·1만세운동길'이 이어졌다. 1919년 2월 24일 서울서 밀명을 가지고 내려온 이갑성이 이 교회에서 대구 지도자들과 만나 거사를 도모한 일, 계성학교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일, 신명학교 학생들이 이 길을 따라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징역을 산 일들이 담벼락에 새겨져 있었다.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천국은 없다 - 대구, 못다 한 이야기
/일러스트=이철원


길은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졌다. 그 유명한 시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보도블록에 한 자씩 새겨져 있었다. 1901년 대구서 태어난 이 잘생긴 시인은 중절모를 쓴 채 코로나 악령으로 얼어붙은 고향을 응시했다. 시인의 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집이 서상돈 고택이다. 역사 시간에 배운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일제로부터 국권을 되찾기 위해 나랏빚을 갚자는 운동이 100년 전 이곳, 대구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에 목이 메었다. 납작만두, 수제냉면, 반월당고로케…. 문 닫힌 식당에서 허탕을 치고 도로 계산성당 앞으로 왔을 때 십자상을 우러러 기도하는 여인을 보았다. 미사가 중단된 한 달 전부터 매일 예배당 마당에 서서 묵상한다고 했다.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이겠능교. 시련 많고 풍파 깊은 이 나라에서 그저 우리 젊은이들은 배고프지 않고, 설움받지 않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더. 늙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엔 없어서.



천국은 종말(終末)의 그날 금마차 타고 간다는 저 하늘에 있지 않았다. 의사들은 사위어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방호복 속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자원봉사자들은 의료진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수와 도시락을 날랐다. 주말도 없이 쪽잠 자며 일하는 간호사들의 눈은 피로에 절어 퀭했지만, 하루 몇 톤씩 쏟아지는 의료 폐기물 처리 전담 반원들의 안위를 더 걱정했다.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기 위해 아수라장 된 이곳이 천국이었다.

전염병으로 숨진 시신을 화장하는 명복공원에선 소장 혼자 궂은일을 도맡았다. 가족들 근심이 많겠다고 하자 고글 속에서 말없이 웃었다. 소장을 따라 방호복을 입은 상주(喪主)가 영정을 안고 화장동으로 향했다. 울고 있는 아들을 영정 속 여인이 미소를 띤 채 올려다보았다. 슬퍼할 것 없다. 세상 모든 오만과 방종과 몽매는 내 육신과 함께 불타 사라지리니. 다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악착같아서 오늘의 고난과 탄식을 까맣게 잊을 터. 바라건대, 평범한 하루의 기쁨과 자유, 사소한 인사와 눈맞춤, 다독임과 웃음소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다오. 미워하지 말고 부디, 용서하며 살아다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7/2020031700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