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마스크 大戰]
코로나 초기 마스크 수출 막고 각국 돌며 물량 싹쓸이… 유통망 흔들리며 가격 천정부지
한국·대만·프랑스 등 공급부족에 국가가 생산 통제… 중국, 코로나 꺾이자 재수출 채비
2019년의 마지막 날, 중국 우한의 원인 불명 폐렴이 국제사회에 처음 알려졌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80일. 전례없는 수요 폭주 속에 '80일간의 마스크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가 국민한테 "외출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쓰라"고 지시한 순간, 폭발한 마스크 수요가 글로벌 공급망을 뒤엎었다. 마스크는 자유무역의 기틀 위에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상품'이었다. 미국에서 쓰이는 마스크의 90%가 미국 밖에서 생산된다. 마스크 사용이 많은 일본도 자국 내 소비의 70%를 중국산에 의존했다. 그런 마스크가 순식간에 '방역 안보' 필수품으로 신분 전환이 일어났다. '마스크 국경'이 세워졌다.
◇글로벌 기업, 정부보다 먼저 움직였다
작년 12월 31일, 우한의 원인 불명 폐렴 환자 27명이 격리 치료 중이라는 사실이 보고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캐나다 방역용품 생산업체 메디콤은 몬트리올 본사에 즉각 상황실을 차렸다. 사스·에볼라 같은 감염병과 전쟁을 치러본 베테랑의 판단이었다. 메디콤의 본사 상황실에서 해외 생산 라인에 신속하게 증산 지시가 내려갔다.
중국은 전 세계 마스크의 절반가량을 만드는 1위 생산국이다. 미국 병원 의사도, 꽃가루에 민감한 일본인도 저렴한 중국산 마스크를 대량으로 사다 썼다. 이런 나라가 해외 수출을 멈추고 올 1·2월 진공청소기처럼 각국 마스크를 빨아들였다. 3M, 허니웰 같은 유명 마스크 생산업체는 물론이고, 체코·우크라이나·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의 작은 마스크 공장까지 아시아 바이어들의 주문이 쇄도했다. 1년 통틀어 마스크 70만장 판 회사에 며칠 새 700만장 주문이 쏟아졌다. 2년치 주문이 일주일 만에 몰렸다는 곳도 있다. 위생용품과 마스크를 생산하는 일본 가와모토사 주식은 1월 한 달 새 5배 가까이 올랐다. 인도에서 마스크를 생산하는 3M의 현지법인 3M인디아는 3월 초 사흘 만에 주가가 20% 급등했다.
◇바이러스보다 빨리 퍼진 공포와 탐욕
바이러스보다 불안감이 먼저 확산했다. 중국을 둘러싼 아시아 국가에서 마스크 구매 심리가 급등했다. 한국 소비자들도 마스크 구매 행렬에 합류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아 불안한 심리에, 마스크는 '코로나 전쟁'을 뚫고 갈 유일한 방어 무기라는 생각이 불을 붙였다.
치솟는 자국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중국·홍콩 바이어들이 해외 각지로 마스크 쇼핑에 나섰다. 한탕 노린 마스크 사기꾼들도 등장했다. 1월 한 달간 대중(對中) 마스크 수출이 75배 늘어 작년 한 해 수출에 육박했다. 수출 금지령이 내려진 대만 대신, 2월에는 중국 보따리상들이 문 열린 한국서 마스크를 더 사갔다.
탐욕과 공포가 맞물리니 마스크 값이 치솟았다. 우리 정부도 손 놓고 있진 않았다. 부지런히 사재기를 단속했다. 마스크 점검회의(1.30), 합동점검반(1.31), 부총리의 마스크 판매업체 방문(2.3), 매점매석 금지(2.5), 또 점검회의(2.7), 긴급수급조정조치(2.12)…. 글로벌 공급망이 요동치니 '문 열어놓고 모기 잡기'대응이 되고 말았다.
◇'마스크 국경'이 세워졌다
중국의 마스크 수출이 끊겼다. 판단 빠른 정부는 '마스크 국경'부터 세웠다. 대만은 빨랐다. 1월 24일 마스크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우한 봉쇄령 다음 날이었다. 급기야 정부가 마스크를 전량 사들여 배급제를 실시하고 나랏돈으로 설비를 증설해 국가 주도 증산(增産)에 나섰다. 1월 말 중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한 베트남 정부도 곧바로 마스크 증산 계획을 발표했다. 최대 국영 의류업체인 비나텍스를 비롯해 베트남 의류 업체들이 옷 대신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국경 없는 EU(유럽연합)'의 통합도 손바닥만 한 마스크에서 먼저 무너졌다. 3월 3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내 모든 마스크의 재고와 생산을 국가가 징발한다'는 방안에 서명했다. 독일·프랑스·체코가 줄줄이 마스크 수출 제한령을 발동했다. 다른 EU 국가들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달 늦은 한국, 더 굼뜬 아베
한국도 2월 26일 마스크 수출 금지 조치를 취했다. 대만보다 한 달 늦었다. "마스크 공급이 충분하다"고 정부가 오판한 건 요동치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진 국민 심리는 못 읽고 국내 수급만 따져본 탓도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가 남아돌아 걱정이었다. 미세 먼지로 마스크 인구도 늘고, 생산 업체도 늘었지만 공급이 수요를 앞질렀다. 홍남기 부총리가 뒤늦게 "마스크 수출 금지가 더 일찍 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굼떴다. 3월 10일 관방장관이 '마스크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정부가 보조금 준다고 당근책도 제시했지만 신중한 일본 기업들은 쉽사리 설비 증설에는 나서질 않는다. '코로나 특수' 후의 공급과잉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마스크 초(超)우월자' 된 중국
중국 정부의 채근에 중국 내 기업들은 본업을 제쳐두고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석유화학기업 시노펙이 마스크 생산 설비를 설치하고,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 기업 폭스콘이 중국 공장에서 직원용 마스크 제작에 들어갔다.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마스크 고속 생산을 가능케 하는 제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중소·영세 업체들이 너도나도 생산에 뛰어들었다.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하루 2000만장이 안 되던 중국의 마스크 생산이 1억1700만장까지 늘었다.
중국 내 코로나가 한풀 꺾이자 중국 마스크 업체들이 수출 채비를 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숨가쁘게 진행된 '80일간의 마스크 세계대전'은 중국산 마스크가 풀리면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극심한 수급난에 숨통은 트이겠지만 중국발 코로나에, 중국산 마스크로 대처하는 셈이 된다. 코로나가 진정된 후엔 전보다 넘쳐나는 중국산 마스크가 쓰나미처럼 세계 공급망을 흔들 것이다.
[나노필터 마스크 생산, 韓·中·日 3파전]
한국은 이미 대량생산 준비… 日 2년전, 中은 지난달 개발
공적 마스크로 관리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KF94 대신 인터넷에는 차단율이 비슷한 미국의 N95, 중국의 KN95 인증 마스크가 나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 기업 3M 등의 N95 마스크 인지도가 높다. 식약처가 까다롭게 관리해온 한국산 KF94 마스크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해외 인지도도 크게 높아졌다. KF는 코리아 필터를 뜻한다.
공급이 부족해도 KF94 마스크 증산에는 제약이 많다. 주요 소재인 MB 필터도 부족하다. 중국산 수입이 끊기자 국내 MB 필터 생산업체 12곳이 하루 24시간 가동하며 생산량을 늘렸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이렇다 보니 MB 필터의 대체 소재로 꼽히는 나노 필터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 16일 '카이스트 김일두 교수팀이 나노 필터 마스크를 개발했다'는 뉴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습기에 약해 오래 쓰면 축축해져 기능이 떨어지는 MB 필터와 달리, 나노 필터는 습기에 강하고 공기는 더 잘 통하며 재사용도 가능해 마스크 한 장 사면 여러 장 효과가 있다.
이미 나노 필터 마스크를 둘러싸고 한·중·일 경주는 시작됐다. 지난 2월 말 중국 상하이경제정보화위원회가 "나노 기술을 이용해 10번, 많게는 20번까지 사용할 수 있는 신제품 KN95 마스크를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상하이 아동복 업체 쥐천이 신소재 기업 한푸에서 소재를 공급받아 하루 마스크 30만장을 만든다. 2003년 사스 때 마스크를 만든 적 있는 쥐천에 위원회 측이 "더 혁신적인 마스크를 만들어보라"며 신소재 기업을 연결해줬다. 그렇게 해서 중국에 첫 KN95 인증 나노 필터 마스크가 탄생했다.
일본에서는 벤처기업 나피아스가 신슈대 국제섬유공학연구소와 산학 협력으로 나노 필터 마스크를 개발, 2018년 미국 N95 인증을 받았다. 당시 닛케이신문은 "얇고 가볍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땀이 덜 차고 숨쉬기가 나을 뿐 아니라 목소리도 잘 전달된다"고 해당 제품을 보도했다. 이 회사 마스크는 현재 신슈대학병원 의료진이 사용한다.
사실 나노 필터 마스크의 기술력이나 생산 능력에서 한국은 중국, 일본을 압도할 수 있는 구조다. 고품질 나노 멤브레인과 나노 필터를 생산하는 소재 업체가 있다. 나노 필터 마스크 대량생산을 준비하며 KF94 인증 절차도 진행 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