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서로마제국 마지막 황제… 게르만 용병 반란으로 폐위
[로물루스 황제]
로마 장군 아버지의 권력으로 제위 올랐지만 통치 활동 거의 못 해
'소년 황제' 아우구스툴루스로 불려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 반란… 10개월 치세 끝… 서로마제국도 붕괴
지난달 17일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로마인의 광장)' 지하에서 기원전 6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관이 발견되었어요. 일부 고고학자는 이 석관이 기원전 8세기 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로물루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로물루스가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라피스 니제르(검은 석판)'와 가까운 곳에 있었거든요. 로물루스가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로물루스는 우리나라의 단군왕검처럼 로마의 상징적인 인물이죠. '로마'라는 도시명도 로물루스에서 따온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도 로물루스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끝과 중세 서유럽의 시작의 분수령이 되는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재위 475~476)죠. 그가 다스렸던 서로마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요?
◇15세에 즉위한 소년 황제 로물루스
서로마제국이 무너졌던 5세기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였습니다. 서쪽에서 온 훈족에 밀린 게르만계의 서고트족이 4세기 후반부터 다뉴브강을 건너 로마제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당시 로마는 대지주에 예속되는 소작농들이 많아지고 자영농 시민군이 줄어들어 로마 군대에서 용병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어요. 게르만의 각 부족은 로마의 용병으로 활약하고 부족국가를 세우며 로마에 스며들어 갔죠. 로물루스의 아버지인 오레스테스의 집안도 게르만족의 피가 흐릅니다. 475년 서로마 군대를 장악한 장군이었던 오레스테스는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재위 474~480)를 쫓아내고 15세였던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를 새 황제로 옹립합니다. 로마 창건자의 이름을 계승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제위에 올랐지만 동로마제국은 그를 공식적인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도자가 된 어린 로물루스를 조롱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가 아닌 '아우구스툴루스'로 불렀어요. 아우구스툴루스는 작은 아우구스투스, 즉 '소년 황제'라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도 로물루스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끝과 중세 서유럽의 시작의 분수령이 되는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재위 475~476)죠. 그가 다스렸던 서로마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요?
◇15세에 즉위한 소년 황제 로물루스
서로마제국이 무너졌던 5세기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였습니다. 서쪽에서 온 훈족에 밀린 게르만계의 서고트족이 4세기 후반부터 다뉴브강을 건너 로마제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당시 로마는 대지주에 예속되는 소작농들이 많아지고 자영농 시민군이 줄어들어 로마 군대에서 용병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어요. 게르만의 각 부족은 로마의 용병으로 활약하고 부족국가를 세우며 로마에 스며들어 갔죠. 로물루스의 아버지인 오레스테스의 집안도 게르만족의 피가 흐릅니다. 475년 서로마 군대를 장악한 장군이었던 오레스테스는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재위 474~480)를 쫓아내고 15세였던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를 새 황제로 옹립합니다. 로마 창건자의 이름을 계승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제위에 올랐지만 동로마제국은 그를 공식적인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도자가 된 어린 로물루스를 조롱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가 아닌 '아우구스툴루스'로 불렀어요. 아우구스툴루스는 작은 아우구스투스, 즉 '소년 황제'라는 뜻입니다.
- ▲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초상이 새겨진 장식용 메달. 15세 나이로 황제에 오른 로물루스는 동로마제국에서 정식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고, 백성은 그를 조롱하기 위해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의 '아우구스툴루스'로 불렀어요. 결국 로물루스는 왕위에 오른 지 불과 10개월 만에 게르만족 군대의 반란으로 폐위되지요. /위키피디아
◇서로마제국의 붕괴와 중세의 시작
476년 로마 내 게르만족 군대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게르만족 용병 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는 476년 8월 오레스테스를 체포해 처형했어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도 폐위됩니다. 오도아케르는 로물루스는 죽이기에는 너무 어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으로 보냅니다. 이후 로물루스는 연금을 받으며 생활했다고 하나 정확한 행적은 남아 있지 않아요.
오도아케르는 동로마 황제 제노의 종주권을 인정해 서로마 황실 징표가 되는 물품들을 동로마로 보냈고 동로마제국은 오도아케르를 총독으로 인정했죠. 이로써 기원전 753년부터 천 년 넘게 이어온 서로마제국은 완전히 막을 내립니다.
사실 로마는 오래전부터 붕괴의 조짐이 있었어요. 황제권이 동요하면서 계승 분쟁과 군대의 개입은 끝없는 내분을 낳았어요. 지배층은 지위를 이용해 면세 특권으로 더 부자가 됐죠. 반면 점점 많은 세금을 내야 했던 자영농들은 몰락해 소작농이 되었어요. 관료의 부패, 악화(惡貨) 주조로 인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로마의 시민들은 지쳐 있었죠. 오도아케르가 이끈 게르만족이 침입했을 때 충성심으로 로마를 지킬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았어요.
[로마 건국 시조 이름도 로물루스]
로마 건국신화에서 로마의 남동쪽 지역 '알바 롱가'의 공주이자 사제였던 레아 실비아가 신(神) 마르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쌍둥이가 바로 로물루스와 레무스입니다. 레아 실비아의 삼촌인 아물리우스 왕은 조카들이 훗날 왕위를 위협할까 봐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 강가에 버립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형제는 훗날 힘을 합쳐 아물리우스를 왕위에서 몰아냅니다. 후에 두 형제는 왕위를 놓고 다투게 돼요. 결국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팔라티움 언덕에 도시국가가 세워집니다. 이것이 로마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레아 실비아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1866년 발견된 소행성에 '소행성 87 실비아'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 소행성의 주위를 도는 위성이 2개나 발견되었어요. 이 위성들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이름이 붙여졌지요.
-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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