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7.31 03:15
종족적 민족주의, '피와 땅'에 본능적·정서적 집착
결국 나치즘·파시즘·김일성주의 등 전체주의 귀결
민족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고(故) 앤서니 스미스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민족주의의 유형을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와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로 구분했다. 전자는 '피와 땅'에 대한 본능적이고 정서적인 집착과 애정에 바탕을 둔 것이고, 후자는 '자유' '평등' '박애' 등 근대적 정치 이념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전자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고, 후자는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다. 유럽의 경우 독일을 비롯한 동유럽은 '종족적 민족주의'가 두드러졌고,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은 '시민적 민족주의'가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보면 근대국가 성립기에는 '종족적 민족주의'가 부각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시민적 민족주의'로 변화됐다. 두 유형의 민족주의는 맡았던 시대적 역할이 달랐던 것이다.
◇역사적 역할 끝난 '종족적 민족주의' 끊임없이 소환
한국을 포함해서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은 '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적 민족주의' 사이에 '국민적 민족주의'를 거쳐야 했다. 근대국가의 일원으로서 경험이 부족한 구성원들에게 먼저 국민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근대사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에 사실상 나라를 빼앗겼던 1905년부터 1945년까지는 '종족적 민족주의'가 민족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가 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970년대까지는 반공과 근대화를 두 축으로 하는 '국민적 민족주의'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문제는 '국민적 민족주의'가 사명을 다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가고 난 뒤인 1980년대에 서구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적 민족주의'가 꽃핀 것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민중적 민족주의'가 빈자리를 차지했다는 데서 발생했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고집하는 자신들의 취약성을 가리기 위해 이미 역사적 역할이 끝난 지 오랜 '종족적 민족주의', 그중에서도 반일(反日) 감정을 끊임없이 소환하여 이용한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그런 상투적 선동을 목격하고 있다. 좌파들과 맞서 싸우며 그들의 역사적 퇴행성을 폭로해야 할 우파들은 아직도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거세게 분출하는 일본에 대한 증오 앞에서 대처할 방법을 놓고 고심하게 된다.
◇역사적 역할 끝난 '종족적 민족주의' 끊임없이 소환
한국을 포함해서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은 '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적 민족주의' 사이에 '국민적 민족주의'를 거쳐야 했다. 근대국가의 일원으로서 경험이 부족한 구성원들에게 먼저 국민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근대사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에 사실상 나라를 빼앗겼던 1905년부터 1945년까지는 '종족적 민족주의'가 민족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가 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970년대까지는 반공과 근대화를 두 축으로 하는 '국민적 민족주의'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문제는 '국민적 민족주의'가 사명을 다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가고 난 뒤인 1980년대에 서구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적 민족주의'가 꽃핀 것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민중적 민족주의'가 빈자리를 차지했다는 데서 발생했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고집하는 자신들의 취약성을 가리기 위해 이미 역사적 역할이 끝난 지 오랜 '종족적 민족주의', 그중에서도 반일(反日) 감정을 끊임없이 소환하여 이용한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그런 상투적 선동을 목격하고 있다. 좌파들과 맞서 싸우며 그들의 역사적 퇴행성을 폭로해야 할 우파들은 아직도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거세게 분출하는 일본에 대한 증오 앞에서 대처할 방법을 놓고 고심하게 된다.
이승만학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군(一群)의 우파 지식인들이 최근 펴낸 '반일(反日) 종족주의'(미래사)는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야심 찬 도전이다. 이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한 근원은 1980년대에 폭발한 반일 종족주의"라며 "이를 그냥 안고선 선진화는 불가능하고, 파멸과 망국(亡國)의 길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정, 식민지수탈론 등 반일 감정과 관련된 핵심적인 쟁점을 파고들어 실증과 이론에 입각해 통념에 도전한다. 이들의 논지는 더 따져봐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무심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던 주장들의 상당수가 정치적 목적이나 맹목적 애국심에서 덧칠된 '신화(神話)'였다는 것을 밝혀준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이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민족주의에 자유로운 개인이란 범주는 없다" "한국의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고쳐 부름이 옳다"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한국 민족주의 전체와 종족주의를 동일시하는 관점은 우선 역사적인 사실과 맞지 않다. 20세기 전반기 국내 민족주의자를 대표했던 안재홍은 해방 후 민족국가 건설 이념으로 제시한 '신민족주의'에서 자유와 국제 협조를 강조했다. 또 해외 민족주의자들의 결집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복국(復國)과 건국(建國)을 이루고 난 뒤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사는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지향했다.
◇이성적인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미래 지향적 민족주의 절실
국민 대중의 정서를 악용하는 '종족적 민족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한국 민족주의를 지난 세기의 선구적 민족주의자들이 그렸던 대로 공동체의 이성에 토대를 둔 '시민적 민족주의'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민족주의' 시기에 국가를 이끌었던 이승만과 박정희의 지혜를 계승해서 적극 내세울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국익 우선'이다. '종족적 민족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식민지 시절에는 국가가 없었기에 국익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민족을 지키는 것이 절대 가치였다. 하지만 나라를 되찾은 뒤에는 국익이 판단과 결정의 최고 기준이 됐다. 국익을 위해 이승만은 미국을 압박해서 한미동맹을 맺었고, 박정희는 지식인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또 하나는 '미래 지향'이다. 문재인 정부가 '관제(官製) 민족주의'라는 비판을 받지만 '관제 민족주의'라면 박정희 정부가 훨씬 더 했다. 이순신 장군이 '성웅(聖雄)'으로 추앙되고, 전국 각지의 국난(國難) 극복 현장이 단장된 것이 박정희 시대였다. 하지만 관제 민족주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청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 달리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 '조국근대화'의 정신적 동력으 로 활용했다.
'종족적 민족주의'의 끝은 나치즘·파시즘·김일성주의 같은 전체주의다. 정부 고위 인사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면 '친일파'"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라고 다그치는 것은 전체주의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국가와 민족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그 행보를 막으려면 '시민적 민족주의'를 확산시켜 '종족적 민족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하루빨리 구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이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민족주의에 자유로운 개인이란 범주는 없다" "한국의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고쳐 부름이 옳다"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한국 민족주의 전체와 종족주의를 동일시하는 관점은 우선 역사적인 사실과 맞지 않다. 20세기 전반기 국내 민족주의자를 대표했던 안재홍은 해방 후 민족국가 건설 이념으로 제시한 '신민족주의'에서 자유와 국제 협조를 강조했다. 또 해외 민족주의자들의 결집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복국(復國)과 건국(建國)을 이루고 난 뒤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사는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지향했다.
◇이성적인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미래 지향적 민족주의 절실
국민 대중의 정서를 악용하는 '종족적 민족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한국 민족주의를 지난 세기의 선구적 민족주의자들이 그렸던 대로 공동체의 이성에 토대를 둔 '시민적 민족주의'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민족주의' 시기에 국가를 이끌었던 이승만과 박정희의 지혜를 계승해서 적극 내세울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국익 우선'이다. '종족적 민족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식민지 시절에는 국가가 없었기에 국익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민족을 지키는 것이 절대 가치였다. 하지만 나라를 되찾은 뒤에는 국익이 판단과 결정의 최고 기준이 됐다. 국익을 위해 이승만은 미국을 압박해서 한미동맹을 맺었고, 박정희는 지식인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또 하나는 '미래 지향'이다. 문재인 정부가 '관제(官製) 민족주의'라는 비판을 받지만 '관제 민족주의'라면 박정희 정부가 훨씬 더 했다. 이순신 장군이 '성웅(聖雄)'으로 추앙되고, 전국 각지의 국난(國難) 극복 현장이 단장된 것이 박정희 시대였다. 하지만 관제 민족주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청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 달리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 '조국근대화'의 정신적 동력으
'종족적 민족주의'의 끝은 나치즘·파시즘·김일성주의 같은 전체주의다. 정부 고위 인사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면 '친일파'"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라고 다그치는 것은 전체주의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국가와 민족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그 행보를 막으려면 '시민적 민족주의'를 확산시켜 '종족적 민족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하루빨리 구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