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자

[동서남북] 당한 만큼 되돌려 주려면

최만섭 2019. 7. 30. 05:29

[동서남북] 당한 만큼 되돌려 주려면

입력 2019.07.30 03:15

'아베 보복' 잘못 지적하되 일본 국민은 차분하게 설득
우린 자유무역 지키는 문명국… 국제사회에 지속적 알려야

이한수 문화부 차장
이한수 문화부 차장
일본 지식인과 두 차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한 번은 2008년 와세다대학에서 1년 연수할 때 정치학과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담당 교수는 "한국이 먼저 근대화했다면 한국도 일본을 침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죄과(罪過)를 시대 상황으로 돌려 면죄부를 주는 발언으로 여겨졌다. 반박했다. "한국은 먼저 근대화했더라도 일본을 침략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은 한심할 정도로 평화적인 사상이다. 이웃 나라를 먼저 침략한다는 사고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100년을 맞는 해인 2010년이었다. 그해 8월 한·일 대학생 20명이 일본과 한국의 역사 현장을 함께 답사하는 행사가 있었다. 취재기자끼리 가진 저녁 자리에서 교도통신 논설위원급 기자가 "한국의 거듭되는 사죄 요구는 한국이 일본을 단 하루라도 지배해야 끝날 일"이라고 말했다. 반박했다. "일본 정부가 망언을 되풀이하는 게 원인이다. 일본 총리가 제암리 학살 현장이나 나눔의집 같은 곳에 찾아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이를 계속 지켜간다면 한국 국민의 마음은 금세 풀어질 것이다."

해당 교수는 일본 우익에 비판적인 진보 성향 지식인이었고, 해당 기자는 지한파 언론인이었는데도 갈등 해결 방식으로 쉽게 침략과 지배를 떠올렸다. 일본 사회 저류(底流)에 흐르는 인식이 은연중 드러난 것이다.

일본 사회는 '당한 만큼 되돌려준다'는 사고에 익숙하다.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 죽음으로 복수하는 '47인의 사무라이' 스토리에 눈물 흘린다. 최근 '시즌 2' 제작이 결정된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원이 상사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2013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42%를 기록하고 "당하면 되돌려준다. 배로 갚는다"는 주인공 대사가 유행어가 됐다.

아베 총리는 한국이 신뢰를 깼다지만, 애초 신뢰를 주지 못한 건 그 자신이었다. 2012년 12월 집권 이후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한다는 식으로 과거 잘못을 부정하려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제는 일본을 전쟁하는 나라로 만들려 한다. '아베 일본'은 자국 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침략과 지배라는 방식을 다시 드러낼 것이라는 불신을 주고 있다. 외교 갈등 해법으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은 그런 불신을 가중시켰다.

대한민국 국력이 일본을 압도할 만큼 커진다면 우리 국민은 일본을 침략하자고 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상상력 속엔 내 나라 위한다고 남의 나라 쳐들어가도 좋다는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저들이 저지른 일을 똑같이 되갚는다면 과거 저들 같은 '전범 국가'로 전락할 뿐이다. 주먹에는 보자기를 내야 이긴다. 한번 통쾌하게 찌르겠다고 가위 내거나 똑같이 주먹으로 대응해서는 이기지 못한다. 양국 국민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교류를 일시에 얼어붙게 한 '아베 보복'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아베 정권 선전에 흔들리고 있는 일본 국민을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는 문명국가라는 점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 려야 한다. 성난 우리 국민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당국자는 감정적 대응을 넘어 글로벌 시각에서 사안을 다뤄야 한다.

죽창가 부른다고 못 이긴다. '싸우지 않으면 매국(賣國)'이라고 척화비 세운다고 될 일 아니다. 신(新)친일·이적(利敵) 같은 말로 국민 분열시켜선 가망 없다. 나라 힘 키우는 게 진정한 해법이다. 당한 만큼 되돌려 주려 한대도 그렇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9/20190729023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