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자

[시론] 여론·소송·국내戰으론 역부족

최만섭 2019. 7. 31. 05:49

[시론] 여론·소송·국내戰으론 역부족

조선일보
  •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 2019.07.31 03:13

WTO 소송전은 장기 표류 가능성… 승소 여부보다 실효성 따져봐야
거친 언어 자제해 日 자극 피하고 원점에서 절충·타협 시도해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일부 품목의 대한국(對韓國)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4일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수출 허가 절차를 좀 더 까다롭게 변경하였고 이르면 8월 2일에 일본의 우방국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로서는 화학약품, 정밀기계, 전자 부품, 특수 섬유 등 전략 물자 다수 품목에 대한 일본의 추가 수출 규제가 임박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세 가지 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째는 '여론전'인데 워싱턴이나 국제 외교 무대에서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알려 일본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WTO(세계무역기구) 일반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해 그 문제점을 설명한 바 있고, 향후 ARF(아시아지역안보포럼)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에서도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외교적 갈등을 공급망 교란으로 교차 보복하려는 일본의 행위는 글로벌 분업 체계를 흔드는 중대한 도발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국제 여론을 환기하고 지지를 구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거친 언어로 일본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결국 한·일 양국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협상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좋겠다.

둘째는 '소송전'인데 WTO를 통한 법적 대응 전략이다. WTO 회원국은 허가제 등을 통해 수출을 제한할 수 없다. 수출입 절차에서도 회원국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만 수출 과정을 어렵게 해 수출을 지연한다면 이는 정부 조치의 일관성과 합리성을 요구하는 WTO 협정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하지만 일본은 그동안 한국에 제공해왔던 특혜를 회수하는 조치라 WTO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으로 수출한 전략 물자가 북한에 유입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국가 안보를 목적으로 수출 절차를 변경하는 것은 WTO가 허용하는 예외 조항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로서는 충분히 다투어볼 만한 사안이다. 문제는 승소 가능성이 아닌 제소의 실효성에 있다.

WTO에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입증하는 작업은 일정한 시간을 요한다. 2년 이상 걸려 나올 1심 결과에 대해 한쪽이 불복해 상소하면 사건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정원 7인인 WTO 상소위원의 결원이 미국의 반대로 충원되지 않아 올 12월이 되면 단 1명만 남게 된다. 최소 3인이 필요한 상소 기구의 기능은 올 연말로 정지될 운명이다.

셋째는 '국내전'인데 부품·소재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 전략 등이다. 그동안 성과도 있었지만 상당수 품목의 경우 일본과의 기술 격차가 워낙 커 국산화 자체가 가능하지가 않다. 민간 주도의 일본산 불매운동이나 일본 관광 자제 움직임 또한 효과가 불확실하다. 일본계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 기업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또 불매운동은 한국인 직원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제주도 관광이 너무 비싸 가고시마를 선택한 한국 관광객들을 애국심에 호소해 국내에 계속 묶어 두기도 쉽지 않다.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는 한·일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의 외교적 불만이 통상 영역에 전이 되어 표출된 사안이다. 따라서 통상 당국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벌이는 '여론전' '소송전' '국내전'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지만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양국 대표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핵심 외교 사안들을 올려놓고 원점에서 새롭게 절충과 타협을 시도하는 정면 돌파가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30/20190730027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