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자

[최보식이 만난 사람] "반도체 소재 교체는 삼성엔 대형 리스크… 테스트 실패땐 수백억 날려"

최만섭 2019. 8. 5. 05:48

[최보식이 만난 사람] "반도체 소재 교체는 삼성엔 대형 리스크… 테스트 실패땐 수백억 날려"

조선일보

입력 2019.08.05 03:11

소재 부품의 국산화는 왜 어려웠나… '소재 전문 중소기업 1세대' 이영균씨

SK머티리얼즈가 일본의 3대 수출 규제 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의 국산화 시제품을 연말에 내놓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회사는 이미 반도체 소재인 '삼불화질소'를 국산화해 세계시장 40%를 석권하고 있으며, 작년 매출 6870억원, 영업이익 1830억원이라고 소개했다.

기사에는 '이 SK 계열사의 모태(母胎)는 1986년 창업한 중소업체 대백물산'이라고 한 줄 나오는데, 그 대백물산의 창업주 이영균(67)씨를 만나게 됐다. 그는 화끈한 부산 사람 같았다.

"얼마 전 최태원 SK 회장이 '반도체 소재를 만들 수는 있어도 품질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는데 경솔하기 짝이 없다. 지금 SK머티리얼즈가 생산하고 있는 주요 반도체 소재는 모두 '대백물산'에서 개발했던 것이다. 2015년 SK가 인수해 그대로 공장을 돌리면서 중소업체를 깔보는 말을 하면 되나. 요즘 반도체 소재 부품 국산화와 관련해 정치인들의 발언도 현장과 안 맞는 게 많다. 개발해본 사람으로서 답답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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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균씨는 “지금이라도 주요 부품·소재를 개발하면 일본 시장을 뺏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요즘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은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가 일본 업체를 1위로 띄워 올리는 역할" "국내 중소기업도 만들 수 있는데 대기업이 안 사주는 게 문제"라며 때리고 있다. 소재·부품에서 일본 의존도를 심화시킨 데는 대기업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인데?

"중소업체들이 소재·부품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안 사준다고 비판하지만, 대기업 입장에서는 안 맞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대기업의 횡포나 애국심이 없다는 식으로 볼 것은 아니다."

―중소업체가 국산화 기술을 개발하려면 현실적으로 대기업을 공급처로 잡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나?

"그렇다. 삼성에는 날마다 이런 소재 부품의 개발 아이디어가 있다고 찾아오는 중소업체 사람들이 줄을 선다. 하지만 일일이 다 어떻게 얘기를 들어주겠나. 삼성 담당자와 미팅하는 것조차 어렵다."

―접대와 로비를 잘해야 그런 기회를 잡나?

"그런 음성적인 것은 없어졌다. 삼성의 경우에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엄격한 채택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부합하면 미팅 기회를 주지만, 막상 미팅을 해본들 대부분 탈락된다. 중소업체에서는 너무한다고 하소연하지만 대기업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서로 관점이 다르다."

―관점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소재 부품을 국산화하는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수익이 커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장 규모가 돼야 개발에 뛰어들 수 있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국산화 소재로 바꿔서 원가의 절감 효과가 확실해야 하는 것이다. 설령 원가를 낮출 수 있다 해도 공정 과정의 리스크 때문에 기존에 사용해온 일제(日製) 소재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경비 원가를 1억원 낮추려다가 잘못 테스트하면 수백억원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 테스트하면 수백억원이 날아간다는 게 무슨 뜻인가?

"소재·부품을 바꾸려면 서류 검토에만 서너 달씩 걸린다. 그 뒤 연구소에서 성분 실험을 해 스펙 안에 들어가야 한다. 가령 불순물 0.001%가 어떤 종류인지를 다 따지는 것이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도 정작 생산 공정 라인에서 테스트할 때 문제가 생긴다. 그럴 경우 한 방에 수백억원을 날린다. 이 때문에 대기업으로서는 라인 테스트를 해보는 것 자체가 엄청난 리스크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 해도 바로 삼성에 가면 라인 테스트를 해볼 기회를 안 준다. 정치권이나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의 이런 시스템을 잘 모른다."

―당신은 어떤 계기로 반도체 세정용 가스 '삼불화질소'의 국산화 개발을 하게 됐나?

"1999년 반도체의 가장 핵심 소재인 삼불화질소의 공급량이 부족했다. 대만에서는 반도체 공장을 돌릴 수 없었다. 그때 삼성이 우리에게 생산 의뢰를 해왔다."

―왜 삼성이 당신 회사에 그런 의뢰를 해왔나?

"국내에서 '전자산업의 쌀'이라는 희토류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인 1996년 우리 회사가 희토류 관련 소재를 개발했다. 이를 상품화해 삼성 등에 공급한 것이다. 이런 실적을 갖고 있었기에 삼성이 삼불화질소 생산을 제안했던 것이다."

―'삼불화질소(NF3)'는 어떻게 만드는가?

"일본이나 중국에서 사들여온 99%짜리 불화수소를 분리한 뒤 여기에 질소를 붙이는 고난도 공정이다. 2001년 국내 최초로 만들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미쓰이화학과 미국 에어프로덕츠에서만 생산했다."

―삼성으로부터 라인 테스트 기회를 받아냈나?

"우리 제품은 먼저 대만의 반도체 업체에서 소규모 라인 테스트를 거쳐 인정받았다. 여섯 달 뒤 삼성에서 라인 테스트를 거쳐 공급할 수 있었다."

이영균씨와 최보식 선임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이 된 '불화수소'는 당시 왜 개발하지 않았나?

"다른 국내 업체에서 시도했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때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당시 99%짜리 '불화수소'의 수입가는 1t당 1000달러였지만, '삼불화질소'의 수입가는 40만달러였다. 삼불화질소의 시장이 훨씬 컸다. 우리는 삼불화질소를 개발해 수입가의 3분의 1인 15만달러에 공급했다. 그래도 엄청난 이윤이 남았다. 그 전까지 일본 제품이 독점적으로 얼마나 많이 남겨 먹었는지 알 것이다."

―일본산 '불화수소'는 순도 99.9999%에 달하지만, 국산은 99.9%라고 한다. 99.9%만 해도 완벽한 것이 아닌가?

"반도체 공정에서는 순도의 소수점 이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으로 삼은 불화수소는 9가 12개인 '투웰브 나인(99.9999999999%)'이다. 불순물 없는 '순수' 그 자체다. 반도체 웨이퍼의 경우에는 수율(收率)을 높이기 위해 9가 11개인 '일레븐 나인(99. 999999999%)'을 사용한다."

―SK멀티리얼즈가 연말 안에 고순도의 불화수소를 선보이겠다고 했는데, 가능하다고 보나?

"99%짜리 불화수소를 99.999%로 순도를 높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0.001%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20년 전 우리가 해냈던 삼불화질소의 개발은 이보다 훨씬 더 고난도 기술이었다."

―부품 소재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취약점으로 지적돼왔는데?

"기술력이 못 따라간 측면도 있었지만, 국산화를 한들 시장이 작다든가 원가(原價) 경쟁력이 약하면 국제 분업의 비교 우위에 의해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중소업체로서는 이런 소재를 개발해 시장화될 때까지 버텨내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 논리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졌으니 대기업도 국산화 필요를 많이 느낄 것이다."

―눈앞에 일본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 국산화 개발이 목표가 됐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산화한 뒤의 시장 경쟁력 문제다. 모든 산업 역량을 국산화 쪽에 쏟아부을 경우 오히려 우리 경제에 부작용을 낳을지 모른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도 "산업정책 방향을 비교 우위에 있는 중간재를 버리고 소재·부품에 매달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말했는데?

"경제 논리로 말하면 백번 맞는 말이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부품·소재는 일본이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논리로 설명이 안 되니 비경제적인 논리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후발주자로서 우리가 얼마나 일본을 따라갈 수 있다고 보나?

"일본이 소재·부품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절대 강자는 아니다. 우리가 '반도체 대국'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겠나. TV·반도체·LCD에서 일본 독점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나. 지금도 주요 부품·소재를 개발하면 일본 시장을 뺏을 수 있다고 본다. 국회에서 추경(追更) 통과로 싸웠지만 사실 돈 지원으로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대기업과 중소업체는 서로 관점이 다르다. 중소업체가 막무가내로 대기업에 요구해서 될 일은 아니다. 양쪽이 국산화 개발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민간기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베 총리가 선(線)을 너무 넘었지만, 단초를 제공한 것은 우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었다. 이런 파탄이 나기 전까지 우리 정부는 문제 해결의 뜻이 없어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국민을 향해 반일감정을 부추겼다. 그동안의 경제 실정(失政)을 반일감정으로 덮어버리는 데는 성공했다. '내년 총선에서 오히려 유리하다'는 식의 여당 내부 보고서에서 보듯이 상황 악화를 내심 즐기는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지금은 반일감정에 마취돼 있지만 갈수록 국민의 고통은 누적되어 갈 게 틀림없다.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니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경제라는 게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쉽지 않다. 반도체 호황으로 소재 수요가 급증하면서 나는 공장 증설을 계속해야 했다. 내가 세운 공장만 6개였다. 소재 공장은 높은 설비 투자로 하나 짓는 데 약 3000억원이 들어갔다. 은행에서 돈 빌리느라 바빴다. 영업 매출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호시절에도 회사를 꾸려가는 게 힘들었다. 문제는 반도체 호황에 공장을 증설해놓았는데 만약 경기가 침체하면 이런 기업들은 정말 끝장나는 것이다."

그는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발공장 등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 뒤 해태중공업에 입사해 기획실장까지 올라갔다. 1980년대 중반 컬러 TV가 보급되자 그는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브라운관용 연마제를 개발하자는 제안서를 냈다. 회사에서 채택이 안 됐다고 한다.

그는 퇴사해 19 86년 '대백물산'을 창업했다. 한 일본 기술자의 도움으로 연마제를 개발하면서 회사는 궤도에 올라섰다. 그 뒤 2차전지 배터리 소재와 희토류 등 10여종을 개발했다. 그의 회사가 국산화에 성공한 삼불화질소와 육불화텅스텐, 모노실란, 디크로로실란 등 반도체 소재는 지금도 세계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는 2009년 회사를 넘겼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5/20190805000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