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9.03 03:12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은산(銀産)분리 규제 혁신을 천명하면서 19세기 말 영국의 '붉은깃발법'을 사례로 꼽았다. 그 연설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영국은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이 법을 만들었다"는 언급이었다.
'적기(赤旗) 조례'로 불리는 이 법은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도록 했다. 자동차가 사람보다 빨리 갈 수 없도록 제한했으니, 영국에서는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들 이유가 사라진 셈이었다.
이런 법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문 대통령의 우회적인 언급처럼, 자동차라는 신종 운송 매체의 등장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익집단'이 문제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자동차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마차운송조합은 물론 기차운송조합까지 들고 일어나 자동차의 위험성을 과장해서 알렸다. 의회에도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
발단은 승객 21명을 태우고 달리던 증기 버스의 보일러 폭발과 인명 사고였다. 증기기관의 석탄 연기, 마부 실업자의 증가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규제 논쟁이 점화됐다. 끈질긴 공방 끝에 마차·기차업자들이 승리해 황당한 법이 생겼고, 증기차 운행 세금도 10배나 높아졌다. 그리고 20세기 최대 산업에서 영국은 완벽하게 미래를 잃고 말았다.
신(新)산업에 대한 규제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나 사회적 요구에 근거해 생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조직적 저항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20여 년간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규제 개혁을 외쳐왔지만 대체로 '공염불'에 그치고 만 것은, 이익집단화된 각 산업 내부의 기득권층이 강하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규제 개혁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은 은산분리나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는 진보 진영의 정체성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밥그릇'보다는 '이념' 문제라는 것이다.
정작, 전면전(全面戰)은 이익집단의 저항과 직결되는 규제 개혁을 문 대통령이 입에 올리는 순간 벌어질 것이다. 예컨대 영리병원·원격의료는 의료계, 차량 공유 사업은 운송업계가 파업을 불사하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사회적 혼란도 커질 것이다.
'붉은깃발법'을 학습한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도 각오한 것일까. 한 사회가 기술적, 산업적 도약을 하려면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집단과 개인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공포가 확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면 성장의 과실(果實)을 크든 작든 모두 누리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은 한 번도 이 궤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다 함께 살아남으려면, 정부는 설득해야 하고 누군가는 양보해야 한다.
'적기(赤旗) 조례'로 불리는 이 법은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도록 했다. 자동차가 사람보다 빨리 갈 수 없도록 제한했으니, 영국에서는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들 이유가 사라진 셈이었다.
이런 법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문 대통령의 우회적인 언급처럼, 자동차라는 신종 운송 매체의 등장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이익집단'이 문제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자동차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마차운송조합은 물론 기차운송조합까지 들고 일어나 자동차의 위험성을 과장해서 알렸다. 의회에도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
발단은 승객 21명을 태우고 달리던 증기 버스의 보일러 폭발과 인명 사고였다. 증기기관의 석탄 연기, 마부 실업자의 증가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규제 논쟁이 점화됐다. 끈질긴 공방 끝에 마차·기차업자들이 승리해 황당한 법이 생겼고, 증기차 운행 세금도 10배나 높아졌다. 그리고 20세기 최대 산업에서 영국은 완벽하게 미래를 잃고 말았다.
신(新)산업에 대한 규제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나 사회적 요구에 근거해 생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조직적 저항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20여 년간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규제 개혁을 외쳐왔지만 대체로 '공염불'에 그치고 만 것은, 이익집단화된 각 산업 내부의 기득권층이 강하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규제 개혁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은 은산분리나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는 진보 진영의 정체성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밥그릇'보다는 '이념' 문제라는 것이다.
정작, 전면전(全面戰)은 이익집단의 저항과 직결되는 규제 개혁을 문 대통령이 입에 올리는 순간 벌어질 것이다. 예컨대 영리병원·원격의료는 의료계, 차량 공유 사업은 운송업계가 파업을 불사하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사회적 혼란도 커질 것이다.
'붉은깃발법'을 학습한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도 각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