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의료기기 규제 낮춰라" 했지만, 업계는 "갈 길 멀다"
식약처·보건의료硏 '옥상옥' 허가… AI의료기기 내는데 390일
국내 1호 인공지능(AI) 의료기기 스타트업 업체 '뷰노'는 지난 5월 식약처로부터 의료 영상 분석 프로그램을 의료기기로 허가받았다. AI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뼈의 나이를 판독해 아동의 성조숙증·저성장을 진단하는 프로그램으로, 국산 AI 의료기기가 허가를 받은 것은 국내 첫 사례다. 하지만 뷰노의 기술을 올해 안에 상용화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식약처 허가를 받고도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심평원의 보험 급여 등재 절차도 남아 있다. 하루가 다르게 신(新)기술이 등장하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이중·삼중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체외 진단 분야, 이중 규제 풀기로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의료기기 규제혁신' 발표회에서 "안전성이 확보된 의료기기는 더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도록 규제 벽을 대폭 낮추고 시장 진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혈액이나 분변 등 검체를 체외에서 검사하는 분야에 대해선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만 받으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사전허용-사후규제' 방식을 적용하도록 했다. 기존에 390일 정도 걸린 시장 진입 절차도 80일 이내로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체외 진단 분야에만 적용하는 것이다. 뷰노처럼 인공지능 등 다른 기술을 적용한 업체들 경우엔 여전히 이중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의료 시장 규제를 완화해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은 역대 대통령들도 들고나온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표적인 의료 규제로 지목받는 원격의료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은 빠져 있다. 정부가 또다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의사들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작년 4월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인도 등에서 이미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갤럭시S9이나 갤럭시노트8뿐만 아니라 모든 삼성 스마트폰에 탑재된 '삼성 헬스' 앱을 이용하면 의사와 화상으로 면담하고 처방도 받을 수 있다.
다른 병원 엑스레이나 피검사도 스마트폰에 저장했다가 원격의료를 해주는 의사에게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의료인 간의 원격의료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다.
◇원격의료 등 갈 길 멀어
2011년 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합작사 헬스커넥트를 설립했다. 환자의 건강관리를 위한 원격 모니터링, 협진 시스템 개발 등이 주요 사업이지만 규제에 막혀 본격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지속한 적자에 서울대병원 이사회는 올해 헬스커넥트 자본금을 311억원에서 59억원으로 대폭 줄였다.
재활 기기 스타트업인 네오펙트 역시 국내에서는 병원을 상대로만 영업한다. 해외에선 일반 환자들이 네오펙트의 재활 기기를 쓰면서 경과를 병원에 원격으로 전송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의사에게 데이터를 원격 전송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업체인 마크로젠도 규제 때문에 국내에선 탈모·피부 노화 등 12가지 항목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정부가 원격의료 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나간다는 방침을 밝히긴 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하루가 다르게 원격의료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의료 환경도 변하고 있다"며 "초기에는 대면 진료를 하고 정기적인 의료에 대한 관리에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첨단 의료 서비스를 도외시하다가는 (한국 의료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떼는 식으로는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너무 뒤처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한 번 적절한 기술력과 요건을 갖춘 기업으로 인정하면 향후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아도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곧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해외 업체들은 이렇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자마자 시장 공략에 나서는데, 이중·삼중 규제를 받는 우리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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