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27 03:11
[오늘의 세상]
나문희, 38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올해 3번째 주연상
70대에 주연·최고 연기상… 세계적으로도 드문 케이스
"내 친구 할머니들, 나 상 받았어… 여러분도 그 자리에서 상 받기를…
96세 친정어머니가 믿는 하나님, 나의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의 나이 일흔여섯, '한국 최고 여배우'로 공인받은 날이었다. 지난 25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이날 가장 빛난 별은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나문희였다. 수상 소감에 객석에선 폭소가 터진다. "사랑해주신 관객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아흔여섯이신 친정어머니,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나문희의 부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짧은 소감만으로도 객석을 들었다 놨다 하는 57년 차 배우의 관록이다.
나문희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허구한 날 남 일에 참견하는 오지랖 넓은 할머니 '나옥분' 역을 맡았다. 다들 기피하는 이 할머니, 구청 공무원 총각(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려고 매달린다. 이야기의 모티프는 2007년 미 연방 하원 위안부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공청회에 참석해 증언했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0) 할머니. 영화 속 '옥분'이 어머니 무덤 앞에서 오열할 때, 미 의회 증언대에서 또박또박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할 때, 많은 관객이 함께 눈물 흘렸다. 어두운 역사의 상처를 무겁지 않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문희는 특별하다. 이날 감독상을 받은 김현석 감독 역시 여러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배우 나문희를 생각했다"고 했다.
나문희가 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 문화방송 공채 1기 성우로 데뷔하면서부터. 억척 엄마, 까탈스러운 할머니, 다방 마담 등 예쁜 여배우들이 꺼려 하는 배역을 꺼리지 않고 소화해내는 탤런트였다. 1995년 KBS 일일 연속극 '바람은 불어도'는 그의 연기 인생에 전기가 됐다. 걸진 이북 사투리를 쓰는 억척 할머니로 나온 이 작품으로 연기 인생 첫 트로피인 KBS 연기대상 대상을 받은 것이다. 2007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첫 영화 주연작이었고, 2014년 865만 관객이 본 영화 '수상한 그녀'로 흥행력도 입증했다. 2006년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 출연할 때는 "돌리고, 돌리고~"를 유행어로 만들었고,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세대를 뛰어넘은 사랑을 받았다. 최고 자리에 서기까지 오래 준비하며 천천히 걸어온 셈이다.
여배우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해진 최근 우리 영화계 풍토를 생각하면 나문희의 활약은 더 의미가 크다. 할리우드에는 '필로미나의 기적'(2013)으로 당시 79세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주디 덴치나 헬렌 미렌(72), 메릴 스트리프(68)처럼 70대 안팎 현역 여배우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