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폭력시위대 特赦? 집회 막다 죽은 내 아들 뭐가 되나"

최만섭 2017. 11. 30. 08:46

"폭력시위대 特赦? 집회 막다 죽은 내 아들 뭐가 되나"

[용산 참사 때 숨진 경찰특공대 김남훈 경사, 그 父親의 외침]

전과 없애주는게 적폐청산인가
화염병 던지고 새총 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철거민 소재 영화 나올때마다 위로 받는 사람은 철거민들
우리 부부 챙기는건 아들 동료뿐

故 김남훈 경사의 부친 김권찬씨
故 김남훈 경사의 부친 김권찬씨
"폭력 시위자 사면하는 게 적폐 청산이면 제 아들 죽음은 뭐가 되는 건가요."

2009년 '용산 화재 참사'에서 막내아들을 잃은 김권찬(69)씨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김씨의 아들은 경찰특공대 소속이었던 고(故) 김남훈(당시 31세) 경사. 김 경사는 건물 옥상에서 점거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됐다가 화마(火魔)에 휩싸여 숨졌다. 며칠 전 법무부가 주요 집회에서 폭력 시위 등 혐의로 형사 처벌받은 이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엔 아들이 죽은 '용산 화재 참사'도 포함돼 있었다.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씨는 "특별사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에 대한 원한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정부가 불법 시위에 관대하면 제2의 용산 화재 참사가 나서 내 아들 같은 희생자가 또 나올까 무섭다"고 했다.

김씨는 이미 한 번 정부의 특별사면 때문에 가슴을 쥐어뜯은 적이 있다. 당시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이모(44)씨 등 6명은 징역 5~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이후 철거민 단체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김씨를 찾아왔다. 사면 탄원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내미는 탄원서가 김씨에겐 협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위원장 석방 탄원서에 서명 안 해주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말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 대한 생각과 아들이 몸담아온 경찰에 대한 명예 때문에 탄원서에 서명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 등 5명은 2013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김씨는 왜 그들이 사면됐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당시 법무부는 "사회 통합 차원"이라고 했다. 김씨는 '당시 대통령 측근 정치인들이 여럿 사면됐다던데, 이런 비판 때문에 (구색 맞추기로 용산 철거민 사면을) 끼워 넣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만 갖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화재 참사가 발생한 4층 규모 남일당 건물에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시위대가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되자 새총과 화염병을 들고 저항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화재 참사가 발생한 4층 규모 남일당 건물에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소속 시위대가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되자 새총과 화염병을 들고 저항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연합뉴스

당시 사면에서 제외됐던 일부는 2015년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다. 용산 화재 참사로 감옥에 있는 이들은 없다. 이번 특별사면 검토는 이들에 대한 복권을 의미한다. 김씨는 "이미 특별사면으로 사회에 나온 사람들에 대해 전과까지 없애주려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경찰한테 벽돌이랑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까지 쏜 사람들에게 완전한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이후 김씨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고통스러웠다. 김씨의 아내는 막내아들이 숨진 뒤 건강이 나빠져 세 차례 수술을 받는 등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택시 운전사였던 김씨는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택시까지 팔았다. 영화 '소수의견(2013)' '공동정범(2016)' 등 용산 화재 참사를 다룬 영화들이 나왔다. 주인공은 철거민들이었다. 그는 "용산 철거민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위로하는 건 철거민들뿐"이라며 "지난 시간 우리 부부에게 연락해준 건 그나마 아들 직장 동료들 정도"라고 했다.

벌써 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철거민들은 수억원의 보상이라도 받았지만 제게 남은 건 상처받은 세월뿐"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김씨는 "불법 시위 참가자에 대한 사면을 거론하기 전에 그로 인한 피해자를 어루만지는 방식을 한 번이라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5개 집회를 특정해 특별사면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별사면 요구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광우병 촛불 집회' 등 다른 시위 참가자들에 대해서도 특별사면과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용산 화재 참사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한 4층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사건. 용산 국제빌딩 주변 재개발 과정에서 보상에 불만을 가진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이틀간 점거 농성을 벌였다. 당시 철거민들은 화염병과 시너를 가지고 있었다. 진압 과정에서 불이 붙으면서 4m 높이 망루가 무너졌다. 이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김남훈 경사가 숨지고 24명이 부상했다. 당시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모씨 등 7명에게 징역 4~5년의 실형이, 다른 2명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이씨는 2013년 1월 사면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30/20171130001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