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백영옥의 말과 글] [23] 경솔한 이타주의, 효율적 이타주의

최만섭 2017. 11. 25. 08:50

백영옥의 말과 글] [23] 경솔한 이타주의, 효율적 이타주의

  • 백영옥 소설가 입력 : 2017.11.25 03:02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광화문 광장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예전의 가난 구제는 지역사회와 집성촌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의 몫이었다. 기부자와 기부의 대상이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기부문화는 좀 더 복잡해졌다. 이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나 재해 난민, 장애인, 환경단체 등 선택과 관심의 범위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명 어금니 아빠로 불리는 사람의 기부금 유용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과연 내가 한 선한 기부가 좋은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미국에는 약 100만 개 가까운 자선단체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 참고해야 할 만한 단체가 있다. '기브웰(GiveWell)'이라는 자선단체 평가기관이다. 미국인들은 이 기관의 평점을 통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자선단체가 어떤 곳인지 판단한다.

피터 싱어의 책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4만달러로 1명을 도울 것인가? 2000명을 구할 것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1마리의 훈련 비용은 4만달러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트라코마 환자의 실명 위기를 치료하기 위한 비용은 고작 20달러다. 당신이라면 1명을 도울 것인가, 2000명을 구할 것인가.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 역시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삶이 나아질 수 있으며, 도와 마땅한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를 도울지 결정해야 한다. 결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결정이다. 그는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무턱대고 실천하는 경솔한 이타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데이터로 제시했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는 등의 윤리적 소비가 도덕적 허기 효과 때문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지적은 특히 더 눈에 뜨였다. 착한 일을 한 번 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인간 심리를 파헤친 것이다. 나 역시 착한 일을 하기보다 착해 보이거나,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진 않았나 반성했다. 때로는 열정보다 냉정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뜨거운 냉정'이란 말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쓰고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4/20171124027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