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friday] '딸 같은 며느리'라는 환상

최만섭 2017. 11. 3. 09:04

    [friday] '딸 같은 며느리'라는 환상

    입력 : 2017.11.03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삶의 한가운데

    딸이 없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 삼고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친엄마가 있는 며느리는 고개를 가로젓네요. 모녀 관계는 '딸 노릇' '엄마 노릇'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동안 효심과 인정으로 딸 역할을 해온 며느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만, 뭐든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오래가지 않을까요?

    홍여사 드림
    [friday] '딸 같은 며느리'라는 환상
    일러스트= 안병현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시집살이’가 있겠지요. 저는 딸이 없는 어머님의 딸 노릇을 해드려야 한다는 숙제가 있습니다. 이따금 스카프나 화장품 따위로 어머님의 여심을 충족해 드리고, 백화점 같은 델 팔짱 끼고 같이 다녀야 하는 건 시집올 때부터 각오했던 ‘며느리 노릇’에 불과합니다. 진짜 부담스러운 숙제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집안에서 어머님의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어드리는 일입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기분 변화나 지인들의 사소한 다툼, 친척들 근황,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흉까지 끝없이 들어드려야 한다는 거죠.

    저는 뵌 적도 없는 친척들의 수십 년 묵은 인생 스토리를 한꺼번에 주입하실 때, 어머님 친구분들의 말버릇이나 성격, 자녀들의 직업까지 새겨듣길 원하실 때 내가 과연 이 모든 것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싶더군요. 게다가 가만 보니 어머님의 아들들은 그런 이야기를 건성으로도 들어드리지 않는 겁니다. 어머님도 기대조차 안 하시고요. 남자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하시더군요. 며느리를 얻고 보니 없던 딸이 생긴 듯 말문이 트인다는데 어쩌나요?

    어머님은 거의 매일 전화를 거셔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결혼식이나 모임이 있는 날은 하루에 두 번도 전화하십니다. 신부 나이가 몇이고, 장모 자리는 인상이 어떻고 장인은 왕년에 뭐하던 사람이라더라. 사촌들은 어떤 차림으로 왔고 장조카 근황은 어떻다더라. 그런 길고 잡다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서 말입니다. 몇 시쯤에 전화가 올지를 저는 이제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벨소리만 들어도 그 모든 이야기가 훤히 짐작되지요.

    하는 수 없이 남편에게 역할 분담을 청했습니다. 당신도 어머님 말 상대가 돼 드리라고요. 그러면 남편은 무책임한 대답만 늘어놓습니다. 남자는 원래 그런 고도의 능력이 없다고 했다가, 내가 당신한테 잘할 테니 울 엄마 좀 부탁한다 그랬다가, 심지어는 그러게 왜 딱 잘라버리지를 못하고 다 들어주느냐고 했다가….

    저도 한동안은 꾀를 부려봤습니다. 냄비 물이 끓는다는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기도 했고, 일부러 어머님이 TV 드라마에 몰입하시는 시간대를 골라 먼저 전화를 걸기도 했죠. 하지만 어머님과 거리를 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색이 달라지면 어머님은 대번에 서운함과 노여움을 뒤섞어 표출하셨거든요. 애먼 일로 트집을 잡기도 하고, 너 나한테 뭐 서운한 거 있느냐며 고문 아닌 고문도 하셨습니다. 왕따당한 아이처럼 불쌍한 모습도 보이셨다가, 갑자기 엄한 시어머니 얼굴로 돌아가기도 하셨지요. 그런 변덕스러운 반응이 더 감당이 안 되어 저는 다시 백기 투항을 하곤 했지요.

    한마디로 어머님은 저를 길들이는 데 성공하신 겁니다. 하긴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저도 웬만큼 적응되더군요. 누구 얘길 하시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좋아하실지 척하면 척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마음을 연다고 열어도 활짝 열리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 절반의 딸조차 될 수 없는 걸까요?

    며칠 전 어머님 댁에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였습니다. 어쩐 일로 어머님이 아무 말씀 없이 조용하시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저를 부르시더군요. “얘, 너 이리 좀 따라와 봐라.”

    쫄래쫄래 따라 들어간 곳은 안방 장롱 앞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자주색 한지 상자를 꺼내 그 안에 곱게 개킨 정장 한 벌을 보여주시더군요.

    “네 시아버지가 결혼 25주년 때 해준 옷이다. 구두쇠 양반이 처음으로 돈 아끼지 않고 명동 의상실에서 최고급으로 맞춰줬지. 그런데 이걸 아끼느라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셨잖아. 옷이 고급이라 유행도 안 타.”

    가보라 할 만한 투피스 정장에 감탄해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한 여인의 행복과 한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다음 순간 어머님 말씀이 제 탄성을 막아버리시네요.

    “지금 이거 너 입으라면 싫지? 나 50킬로 나갈 때 옷이라 맞기는 맞을 텐데, 구닥다리라 싫지? 시어미 입던 옷이라 더 싫으려나?”

    그 순간 저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벙긋벙긋 하고 있었고, 그렇게 얼마를 허둥대니 어머님이 알아서 주섬주섬 보따리를 챙겨 장롱 안으로 도로 넣으시더군요.

    “너 처음 인사 왔을 때 보고 내가 아주 놀랐거든. 뒤태가 아주 나하고 똑같더라고.”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어머님 얼굴에는 민망함과 서운함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 옷 제가 한번 입어나 볼까요 소리는 끝내 안 나오더군요.

    그래놓고 오늘 이 순간까지 제 마음이 영 안 좋습니다. 어머님은 대체 왜 그러실까 싶으면서 동시에 나는 또 왜 그렇게밖에는 못 했을까 싶어서요. 실은 불과 얼마 전 친정 엄마하고도 똑같은 일이 있었거든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가죽 ‘바바리’를 꺼내서 제게 입어보라는 겁니다. 그때는 너무나 쉽게 그 옷을 걸쳐보고 깔깔거리며 말했죠. 그냥 추억으로 간직해야겠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는 그런 말조차 안 나왔습니다. 그 순간 저를 짓눌렀던 건 슬픈 부담감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저에게 뭘 바라시는지 한순간에 느낌이 왔고, 제가 그걸 진짜로 해드릴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짜리 수다도 들어드리고, 원하시면 사우나도 같이 다니겠지만 어떤 결정적 순간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걸….

    그날 밤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내 뒤태가 정말 어머님과 닮은 데가 있느냐고. 하지만 잠이 든 것인지 잠든 척하는 것인지 남편은 대답이 없습니다. 어느새 코 고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무디고 야속한 저런 아들만 셋을 둔 어머님이 차라리 짠해지며 저 자신의 미래도 서글퍼지더군요. 나도 딸이 없는데 어쩌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며느리한테서 내 젊은 날 뒤태를 찾는 노인이 되긴 싫은데…. 그러나 제 걱정은 나중 일로 제쳐두고, 요 며칠 전화가 없는 우리 어머님을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