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friday] 배려해주니 오히려 멀어지는 아들 내외

최만섭 2017. 9. 8. 09:02

    [friday] 배려해주니 오히려 멀어지는 아들 내외

    입력 : 2017.09.08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잔소리를 해야 할 이유는 백 가지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해봐야 얻을 게 없기 때문이죠. 말로 가르쳐 알아들을 사람은 그냥 둬도 언젠가 깨칩니다.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로 가르쳤어도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부모가 할 일은 오직 기다려주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기다림을 끝내 돌아봐 주지 않을지라도 후회하거나 노여워하지도 말고….

    홍여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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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안병현

    생전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시던 우리 시어머니. 덕분에 저는 시집살이가 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고부 갈등’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 것은 친정 언니를 통해서였죠. 어려서부터 맏며느리감이란 소리 듣고 자라더니 실제로도 맏이한테 시집가서 집안 대소사를 온몸으로 감당해낸 큰언니. 그러면서 형제들과도 의좋게 잘 지내서 과연 맏이는 하늘이 낸다는 소리를 들어온 그 언니가 어찌 된 일인지 본인의 며느리와는 영 뜻이 맞지를 않았지요. 잘 키운 아들에게 걸맞은 좋은 며느리를 봐 놓고도 언니의 마음에는 서운함과 답답함만 쌓여가는 듯하더군요.

    다른 데 가서는 못 하는 말, 오직 너니까 털어놓는다며 언니는 내게 하소연하곤 했는데 그 얘기만 들으면 질부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듯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쪽 얘기만 들어 아나요? 질부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겠지요. 더구나 제가 보기에는 질부의 인상이 참 서글서글한 것이 그 나름 좋은 며느릿감처럼 보였거든요. 어째서 멀쩡한 두 사람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인지….

    제 밑의 여동생과 저는 언니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도 며느리 볼 날이 머지않은 터라 타산지석의 지혜를 구해보기도 했지요. 그때 우리는 서로 다짐을 했더랬습니다. 며느리를 가르치려 들지 말자. 며느리가 어쩌나 두고 보지 말자. 며느리를 초장에 길들이려 하지 말자.

    외람되지만 언니에게도 그렇게 조언을 했습니다. 며느리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매사에 고맙다, 괜찮다, 잘했다 소리만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의 어른 노릇인 것 같다고요. 하지만 언니는 우리의 말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너희도 며느리 한번 거느려 보고 그런 말 하라더군요. 그렇게 태평양 바다같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이 마음 넓은 시어미일 수가 있는지.

    그러나 언니네의 날 선 고부 관계도 세월이 가며 그럭저럭 무뎌져 가더군요. 속마음은 접어두고 예의와 형식은 지키는 정도로 말입니다.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한 칠팔 년 걸린 것 같아요.

    그 사이 저도 며느리를 봤지요. 언니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저는 출발부터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상처나 부담 없는 쿨한 관계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면 제가 기대를 접고 잔소리를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요. 그래서 굳은 의지로, 장님에 벙어리로 몇 년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자식인데 잔소리할 일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모르는 척했습니다. 소식 없으면 잊고 살았고 전화 오면 반겨 맞았습니다. 2세 소식이 무척 기다려지지만 한 번도 사정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도움이 절실할 때도 어지간하면 혼자 해결했지요.

    아들 며느리 효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원만한 고부 관계, 내 아들 마음의 평화, 그리고 최소한 나쁜 시어머니 소리는 안 듣는다는 나의 자존심이었기에…. 더욱 밑바닥 본심을 말하자면 제가 남편을 먼저 보낸 처지라 더 그랬습니다. 외아들한테 집착하는 홀시어머니는 되지 않는 것이 내 인생 마지막 과제라 생각했죠.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평화롭게’, ‘원만하게’ 지내온 지금. 그러나 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오직 그 손바닥만 한 평화와 종지만 한 원만함이 아닌가 싶어서요. 평화롭고 원만하면 무엇하나요? 화목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게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찾지 않으니 자식들이 저를 잊었나 봅니다. 몇 달째 연락이 없기가 쉽네요. 궁금하지만 제 쪽에서 전화를 하는 것도 어째 어렵습니다. 애초에 안 하던 버릇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얼마 전에는 아들이 돈을 좀 융통해달라더군요. 얘기 들어보니 이사 날짜가 닥친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 집이 제가 마련해준 신혼집이건만 저한테는 형식적인 상의조차 할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마지막에 자금이 묶이지 않았다면 아들이 이사하는지도 모를 뻔했네요.

    그러고 얼마 후엔 또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나이 먹는 거 반갑지도 않은데 지인들이 축하 문자를 잔뜩 보내주네요. 그런데 정작 아들 내외는 감감무소식입니다. 며칠이 지나고야 문자가 왔습니다. 깜박했어요. 죄송해요. 생신 축하드려요. 하지만 저는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몇 년 전 환갑 때도 날짜를 놓치고 하필이면 무척 바쁜 시즌이라는 변명과 함께 온라인 송금으로 퉁친 아이들이기에…. 환갑인 줄은 알았는지 예년보다 금액이 좀 많더군요. 그럴 때도 가만있어 놓고 이제 와서 도리니 뭐니 가르치려 든다는 것도 쉽지는 않죠.

    나이가 드니 자꾸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러다 내가 아파 입원이라도 하게 된들 자식이 알고 달려올까? 세상을 뜬다 한들 저희들이 애통해할까? 하기야 자식이 애통해한다고 죽다 살아날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요. 다만 저는 자식들의 인성이 걱정스럽습니다. 저래 가지고 사회생활은 잘하는지, 어디 가서 매정하다, 본데없다 소리는 안 듣는지….

    아들도 며느리도 회사에서는 승승장구인 모양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아야겠지요. 저는 저 자신의 어리석음만 걱정하면 됩니다. 내가 편히 대해 주면 저희들도 내 마음 알아주겠지 생각했던 것, 참 어리석었습니다. 존중해주니 최소한의 형식마저 무너지네요.

    그러나 후회는 안 합니다. 저런 아이들에게 애초에 기대를 걸고 가르치려 들었더라면 지금쯤은 갈등이 심각했을 게 뻔하니까요. 안 그러길 잘했죠.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외롭고 허무한 평화가 백번 낫네요.

    이제 막 며느리를 본 동생에게는 미리 일러주고 싶습니다. 아들 며느리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스스로 철들 거라 믿지도 마라. 사람은 그저 타고난 그릇만큼 세상을 담는다. 거기 담기면 다행이고 못 담기면 네 복이 거기까지다. 딱 거기까지.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