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그리운 동진 오빠… 우리의 영원한 음악 멘토"

최만섭 2017. 9. 7. 08:10

"그리운 동진 오빠… 우리의 영원한 음악 멘토"

입력 : 2017.09.07 03:04

[故 조동진 추모공연 여는 장필순·한동준·조동희]

조동진과 함께 준비하던 콘서트… 16일에 추모공연으로 열릴 예정
마지막까지도 노래 만들다 떠나 "세계문학 보며 음악 고민하던 분"

가수 장필순(54)은 대학생 때 아버지가 기타를 박살 내버린 그날 밤을 또렷이 기억한다. 혼자 방에서 울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고(故) 조동진의 노래 '슬픔이 너의 가슴에'가 흘러나왔다. "슬픔이 너의 가슴에/ 갑자기 찾아와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렴"이란 가사를 들으며 그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수 겸 작곡가 한동준(50)은 중학생 때 라디오에서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을 듣고 "한국에 이렇게 고급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동진의 막냇동생이자 가수 겸 작사가 조동희(44)는 "오빠는 항상 새 음악을 듣고, 첨단기기에 밝았던 '얼리어답터'였다"며 "떠나기 전에도 제가 만든 음악을 듣고 '역시 넌 EDM(전자음악)이 어울려'라고 하셨다"고 기억했다. 세 사람은 지난달 28일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겪었다. 그날 새벽 "형님이자 오빠이자 음악적 멘토"였던 조동진이 세상을 떠났다. 조동진과 함께할 예정이었던 공연(16일 한전아트센터)은 이제 그의 추모 공연이 됐다.

"형님이 데뷔 앨범을 낸 1979년쯤엔 가사에 공들인 가요가 없었죠. 가요에 문학적 가사를 붙인 최초의 음악인이 조동진입니다."

고(故) 조동진의 동생이자 제자이자 동료였던 가수 한동준, 조동희, 장필순(왼쪽부터)은 오는 16일 열릴 추모 공연을 위해 한창 연습 중이다. 그들은 “무대에서 울음을 참아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라면서도 “형님도 우리가 웃으며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故) 조동진의 동생이자 제자이자 동료였던 가수 한동준, 조동희, 장필순(왼쪽부터)은 오는 16일 열릴 추모 공연을 위해 한창 연습 중이다. 그들은 “무대에서 울음을 참아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라면서도 “형님도 우리가 웃으며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조동진은 생전에 후배들에게 "레너드 코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작년에 작고한 캐나다 출신 가수 레너드 코언은 밥 딜런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문학적인 가사로 유명했다. 미8군에서 전자기타를 들고 '라밤바' 같은 노래를 연주하던 조동진을 통기타와 포크 음악의 세계로 이끈 것도 레너드 코언이다. 한동준은 "절창도 아니고, 놀라운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던 조동진의 음악이 그토록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건 왠지 모를 슬픔이 서려 있는 아름다운 가사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들국화나 조동익, 김현식, 장필순 등 조동진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의 가사가 시(詩)나 다름없었던 이유다. 조동희는 "집에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고 며칠을 두문불출하며 읽었다"고 회상했다.

"형님 하면 생각나는 건 그 집이죠. 항상 음악인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곳이었어요." 1980년대 서울 반포의 한 아파트 1층에 있던 조동진의 집은 한국의 대중음악인들을 위한 '살롱'이었다. 전인권, 최성원, 김현식, 이병우, 김광석, 김현철 등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음악인들 대부분이 그의 집에서 먹고 자며 음악적 성장을 경험했다. 조동진 생일에 후배 음악인 100여 명이 몰려와 아파트 화단에 돗자리까지 펴고 잔치를 벌인 일도 있었다. 그 많은 후배를 거둬 먹인 것은 조동진의 아내였다. 아침이면 오래된 앞치마를 두르고 숙취에 헤매던 후배들을 위한 밥상을 차렸다. 장필순의 명곡 '낡은 앞치마'가 그 풍경 속에서 태어났다.

"형님은 '우리까지 TV에 나가 휩쓸릴 건 없지 않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이른바 '조동진 사단'이라 불렸던 음악가들의 공통점은 TV 출연 같은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했다는 점이다. 조동진은 지난해 20년 만에 새 앨범을 냈지만, 한 차례의 음악감상회만 열었다.

조동희는 "오빠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갑자기 기타를 찾더니 혼자 연주하며 노래를 만들더라"며 "알고 보니 (한)동준 오빠가 한 달쯤 전에 '노래 한 곡 만들어달라'고 한 걸 기억하고 곡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동안 장필순과 조동희도 말이 없었다. 셋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7/20170907002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