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태평로] 老학자 부부가 스승을 사모하는 뜻

최만섭 2017. 7. 29. 09:35

[태평로] 老학자 부부가 스승을 사모하는 뜻

입력 : 2017.07.29 03:10

米壽의 노학자 부부가 써서 보내온 공동 文集 펼치니
정인보 이희승 김성칠 등 師表 삼을 이들의 사연 가득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귀감 될 言行一致 삶에 그리움 일어

김태익 논설위원
김태익 논설위원

그제 출근하니 책 한 권이 배달돼 있었다. '사모문집'이라고 한글로 쓰인 책 안에는 하얀 종이에 정갈하게 만년필로 쓴 편지가 들어 있다. "부끄러운 책 보내드립니다. 하두 어지러운 세상이니 혼자 조용히 보십시오." 보낸 분은 국어학자 강신항(姜信沆) 성균관대 명예교수다. 그와 부인 정양완(鄭良婉) 전(前)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과거에 썼던 글을 모은 책이었다. 두 분은 올해 미수(米壽·88세)다. 서울대 국문과 최초의 과(科) 커플로 연을 맺어 60년 넘게 해로(偕老)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다가 혼자만 볼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사모(思慕)는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문집에는 부부가 스승·선배·집안 어른들에 대해 썼던 조사(弔辭)와 행장(行狀)들이 담겨 있다.

부부에게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은 우뚝한 학자이자 삶의 사표이기도 했다. 일석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안 한다. 공짜로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일석은 일흔 넘어까지 만원 버스를 타고 다녔다. 부인 상(喪) 때 일체의 조화와 부의금을 사절했다. 그러다 만년에 재산을 후학들의 국어학 연구를 위한 장학금으로 희사했다. 일석은 6·25 발발 직후 서울에 남았다가 '잔류파'로 몰려 수모를 겪은 후 1·4후퇴 때는 부산까지 걸어서 가는 결기를 보였다. 그는 "인생은 길게 보면 결과는 마찬가지야"라며 후배들에게 소리(小利)를 탐해 자주 직장 옮기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김원규 선생은 1946년 강 교수가 서울고 1회로 입학했을 때 교장이었다. 당시 서울고는 학생들이 자진해서 새벽 청소와 야간 숙직이라는 걸 했다. 교장이 직접 새벽에 나와 학교 먼지를 털고 다니니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돼라." 김 교장은 조회 시간에 나라와 인생을 주제로 훈화하다가 격해지면 우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 학생들도 고개를 떨구고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교장이 지각생을 잡으려 뛰다가 일어난 '실족절골(失足切骨) 사건'은 당시 서울고의 유명한 일화였다. 김 교장은 공부 잘하는 사람을 대접하고 부정과 게으름을 증오했다. 독선(獨善)과 독존(獨尊)으로 비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교장의 진심을 이해했다.

'역사 앞에서' 저자 김성칠 교수는 6·25 때 강 교수와 전사편찬실에서 함께 근무했다. 그는 강 교수에게 홍명희 소설 '임꺽정'을 권하며 "우리말 어휘 공부는 이보다 좋은 교재가 없소"라고 했다. 그가 67년 전 어느 날 점심을 사주며 한 얘기를 강 교수는 지금도 새기고 있었다. "돈암동 전차 종점에서 미아리 고개까지 뻗은 줄의 끝에 가 서더라도 기다리면 언젠가는 전차를 타게 될 것이오. 급하다고 새치기하거나 남을 밀칠 필요가 없소. 꾸준히 실력을 기르면 차례가 올 것이오."

정양완 교수는 아버지인 위당 정인보 선생 얘기를 썼다. 정 교수가 어렸을 때 아버지 앞에서 투정을 부렸다. "저는 슬퍼요. 다른 애들처럼 예쁘길 해요,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기를 해요." 그러자 위당이 말했다. "나는 왜 햇빛이나 달빛처럼 남들을 골고루 사랑하지 못할까, 그게 슬프단다. 내 어머니와 이웃 할머니가 물에 빠졌다고 하자. 나는 우선 내 어머니 구하기에 정신없을 것이다. 이웃 할머니는 결국 못 살릴지 모른다. 왜 사람의 사랑은 달빛이나 햇빛 같지 못할까. 이 애비는 그게 슬프단다." 위당은 "자신을 심판할 땐 매섭게, 남을 책망할 땐 너그럽게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책을 덮자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리움 같은 것이 일었다. 이 밖에 방종현 이숭녕 남광우
고병익 이기문 안병희…. 책에 실린 분들은 멀게는 70년, 가깝게는 몇 년 전 세상을 떴다. 책이 도덕 교과서처럼 읽히지 않는 것은 말과 행동을 하나로 알고 살았던 분들의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는 어려웠지만 이런 분들이 있었다. 미수의 부부가 스승을 사모하는 책을 낸 뜻과 강 교수가 편지에 쓴 '어지러운 세상'이란 말이 겹쳐 떠올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8/20170728027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