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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영화 & 역사] 그날 노르망디에 神은 없었다

최만섭 2017. 5. 4. 08:00

[남정욱의 영화 & 역사] 그날 노르망디에 神은 없었다

  • 남정욱 작가

입력 : 2017.05.04 03:11

참혹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디데이 날 수만 명 죽고 다쳐
부상병 향해 포탄 쏘지 않고 포로에게 가족사진 돌려주는
人間愛 없지 않았지만 전장에 神의 가호는 없었다

남정욱 작가
남정욱 작가
밤하늘 가득 낙하산 꽃이 피었다. 자정을 막 넘긴 6월 6일 0시 15분 연합군은 800여 대의 비행기를 이용하여 1만3000여 명의 정예 요원들을 하늘에 흩뿌렸다. 독일 원수 롬멜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위협적으로 날아오는 고사포탄으로 항로를 이탈한 수송기들은 무질서하게 공정부대원들을 토해냈다. 가장 근접한 게 8㎞, 멀게는 50㎞ 이상 목표 지점에서 떨어진 곳에 착륙한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대한 물웅덩이들이었다. 하늘에서의 침공을 대비해 롬멜은 디브강(江)의 갑문을 열어 해안 지역 평야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고 그날 흙탕물에 빠져 죽은 병사의 수는 아직도 정확하지 않다. 아침 6시 30분, 노르망디 앞바다를 뒤덮은 연합군 선단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독일 해안포 대대장 플루스카트였다. 황급하게 상황을 전하는 플루스카트에게 정보참모는 물었다. "그 배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나?" 플루스카트는 포대경(砲臺鏡)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내 쪽으로 오고 있네." 잠시 후 해변은 상륙주정에서 쏟아낸 연합군 병사들과 이를 막으려는 독일군의 교전으로 모래 반, 살점 반으로 변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이하 구하기)'는 바로 그 아침의 상륙작전으로 시작된다.

20년 전 낮술을 마시고 이 영화를 봤다. 적게 마신 게 아닌데 영화 시작 오 분만에 술이 다 깼다. 이전까지의 전쟁영화를 보면 총에 맞아도 주변에 할 말 다한 뒤 "그럼 이만…" 하고 느긋하게 신체 활동을 종료하는 것이었다. 아니었다. 머리, 팔, 다리 등 몸통에서 뻗어나온 모든 가지들이 떨어져 나가고 부상당한 병사들은 "모르핀!"과 "마마!"를 외치며 죽어갔다. 오락영화 한 편 '때리러' 들어갔다가 지옥도를 보고 온 셈이다. 영화는 형제 넷 중 셋이 전사한 라이언 일가의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 어머니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노르망디를 헤매는 여덟 명의 레인저 대원 이야기다. 이 이상한 산수(算數)에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은 정밀하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연합군 사령부가 북유럽 탈환 계획인 오버로드(大君主)작전을 입안한 게 1943년이다. 그리고 그 첫 타자로 준비한 게 1944년 6월 6일 0시 15분을 디데이로 잡은 넵튠 작전이었다. 날짜와 시간에 대한 암호명 디데이는 이후 보통 명사가 된다. 대서양 방어 사령관이었던 롬멜의 손님맞이 전략은 치밀했다. 이미 히틀러가 구축해 놓은 1300㎞에 달하는 대서양 방벽에 더해 체코 고슴도치(2m의 각진 기둥을 교차시킨 것으로, 보시면 안다) 등 수중 장애물 50만 개를 설치했고 500만 개의 지뢰를 묻었다(원래 매설 목표는 6000만 개). 초승달 모양의 노르망디 해안 오른쪽부터 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라는 별도의 작전명이 붙었다. '구하기'의 주인공 밀러 대위(톰 행크스)가 상륙한 곳이 오마하다. 이곳에 주둔한 독일 정예 352사단은 동부전선을 경험한 병사들로 미군 피해가 가장 심했다. 영화에서는 독일군의 시점으로 해변을 난사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기관총 진지만 90여 개 가까이 있었다. 상륙주정의 발판이 열릴 때마다 탄환들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병사들을 짓이겼다. 디데이 하루 동안 오마하에서 죽고 다친 미군은 2500명이었다.

전투 중 오로지 야만이 판친 것은 아니다. 포로들이 지닌 문서를 모두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한 미군 병사는 그들의 가족사진을 독일군 포로들의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었다. 독일군 포로들은 "고맙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의무병이 부상당한 낙하산병을 치료하는 동안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던 독일군 야전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작은 미담으로 전쟁의 참상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이 작전으로 3000명 넘는 프랑스 주민이 죽었다. 노르망디는 프랑스 해방의 희생양이었다.

이 영화는 사실일까 허구일까. 미 육군은 형제를 같은 사단에 배치하지 않는다. 미 해군은 형제를 같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 그러나 전투의 규모가 클 경우 같은 날 죽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닐랜드 집안의 남자 넷은 2차 대전을 맞아 동시에 입대했다. 셋째와 둘째는 디데이 첫날과 다음 날에 전사했고 맏이는 미얀마 전선에서 실종되어 사망 처리된 상태였다. 막내만 살았는데 혹시 스필
버그가 영감을 얻었다면 이 집안 이야기일 것이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 연합군 병사들은 이런 기도를 올렸다. "주여, 제가 오늘 얼마나 바쁠지 당신께서는 잘 아실 겁니다. 비록 제가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더라고 주께서는 저를 잊지 마소서." 독일군도 같은 기도를 했을 것이다. 연합군 만여 명과 그 몇 배의 독일군이 죽고 다친 그날 노르망디에 신은 없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3/2017050302263.html